각진 문장
각진 문장

@juststayus

 

 

ジェリー

야호, 제리. 첫 마디를 뭐로 할까 무지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가벼운 시작이 좋을까 싶네. 부담되지 않는 말을 전하고 싶어. 첫 마디 때문에 다섯 번, 편지지 배경 때문에 세 번, 여기까지 쓰는데 총 여덟 번이나 편지지를 할애했다는 사실! 놀랍지 않아? 일본에 돌아가면 클라이맥스 레코드의 모두를 설득해서 나무 심기라도 해야 할까 봐. 심는다면 역시 단풍나무이려나……. 계절이 넘어가는 시기니까, 편지지 배경도 단풍이 그려진 것으로 할지 불가사리가 그려진 것으로 할지 나름 신경 썼어. 최종적으로는 단풍으로 낙찰되었지만. 아래에 그린 강아지와 쥐가 누구인지는 제리라면 바로 알아차려 줄 거라고 생각해♪

편지 봉투도 나름대로 고심해서 골랐는데 어때? 심플한 화이트지만 자세히 보면 구석에 자그마한 뿔이 그려져 있어. 우연히 찾았는데 엄청 신기했던 것 있지! 맞춤형 편지지가 나온 건 아닌가 한참 고민했다니까. 보자마자 인연이라고 생각해서 바로 구매해 버렸어. 물론 스케쥴이 너무 바빠서 기념품샵에 들른 건 삼 일차였지만. 지금 편지를 쓰고 있을 때는 일주일이 지났네. 앞으로 똑같이 일주일을 더 버텨야 너를 볼 수 있다니.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 싶다고 말은 했지만, 막상 투어를 가게 되니까 실감이 나지 않으면서도 노스탤지어까지 생겨 버렸어. 마츠는 벌써 라멘이 그립다고 하지 뭐야. 유키가 겨우 달랬어. 나는 물론 음식 자체에는 대만족, 무척 맛있어! 크림을 곁들인 음식이 엄청 많아서 고급스러운 느낌이 강하다고나 할까. 제리와도 꼭 와 보고 싶네.

이러니저러니 해도 파리하고 도쿄는 7시간이나 차이 나는 시차니까 말이야, 저녁에 스케쥴이 끝나고 연락하려고 해도 제리는 한창 자고 있을 시간이니까. 바쁜 것을 차치하더라도 통화 빈도가 적어진 게 아쉽다고 해야 할까. 물론 이메일도 먼저 생각해 봤는데, 네게 실물로 보여 주고 싶은 것들이 잔뜩인걸. 그걸 전할 수 없다니 너무 아쉬워. 편지 봉투를 밀봉한 실링 왁스 말이야, 자세히 보면 세 줄로 All for J라고 적혀 있어. 파리에 오고 나서 우연히 들린 핸드메이드 샵이 있었는데, 실링 왁스 디자인을 맡길 수 있더라고. 처음부터 편지를 쓸 생각으로 맡긴 건 아니었지만, 유키가 주문을 맡 기는 것을 보고 어쩐지 마츠도 소타도 들떠버려서. 기껏 파리까지 왔는데 고급스러운 선물을 하나쯤은 마련해야 하지 않겠냐고 마츠가 오키나와 이야기에 이어서 한 번 더 데시벨 높게 주장하니까. 어느새 나도 모르게 이렇게 해 주세요, 라고 말하고 있었어. (笑) 결과적으로 네게 전하는 여러 말들의 입구가 되었으니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지만.

혹시 눈치챘어? 혹시 실수할까 봐, 연필로 먼저 쓴 다음에 그 위에 볼펜으로 눌러 썼어. 연필 부분은 보이지 않도록 꼼꼼히 지웠는데, 들켰을지도 모르니 미리 선수 치는 거야. 너무 품을 들인다고 생각하지 말아 줘. 그야 오랜만에 쓰는 편지인걸. 잘 보이고 싶은 게 당연하잖아. 팬레터에 가볍게 답장하거나 인터뷰식으로 응답하는 경우는 많았어도, 손편지, 게다가 너에게로의 레터라니……. 이렇게 쓰면서도 믿기지 않는걸. 처음에 파리로 떠날 때는 너와 떨어지게 되는 게 아쉬워서 공항을 떠나는 내내 몇 번이고 뒤편을 돌아봤는데,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어. 모처럼 이런 기회가 찾아왔잖아. 처음 글씨를 배우는 아이처럼 노력하고 있는 기분이야. 조금 수줍어지기도 하네. 나름 읽기 쉬운 서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그저 제리에게 오래간만에 편지를 써서일까? 아니면 그 글씨에 너를 그리워하는 생각과 마음이 깃들어져 있다고 생각해서일까? 가사를 적어내려 갈 때의 두근거림은 어쩐지 편지를 적어내려 갈 때의 두근거림과 닮아 있어. 그 고동을 직접 손을 대서 느끼게 해 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쉽게도 그건 동봉할 수 없네. 이건 돌아가자마자 전해 줄 테니까 기다려 줘.

가사를 쓸 때 느끼는 그리움과 편지를 쓸 때 느끼는 그리움은 비슷한 듯 다른 것 같아. 말과 글의 차이를 넘어선 무언가 말이야. 간략하게 정리하기에는 재주가 없으니 풀어서 말해 보자면, 이런 기분이 들어. 가사를 쓸 때는 네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땋아 주는 듯한 마음으로 쓰게 돼. 하지만 어느 순간 머리카락을 다 땋아 주는 때가 찾아오잖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시큰거려서, 싫다와 좋다의 감정이 부딪혀 버려. 일부러 손을 놓고 잠시 멍하니 있고 싶어지는 기분이 들어. 공연할 때 공연장 저편에서 멀찍이 서 있을 제리와 나의 거리를 생각하면서.

하지만 편지는 뭐랄까, 조금 더…… 제리와의 거리를 인지하고 있다고 해야 하나. 응, 쓰게 되는 상황이 아무래도 한정적이니까. 그래서 그런지 써내려 가는 글자에게 엄청나게 영향을 받아 버려. 나도 모르게 본심 너머의 무의식까지 털어 놓게 돼. 그것을 마주하고 나면 스스로도 놀라서 눈이 동그랗게 커지곤 해. 하지만 한 번도 네게 편지를 쓰면서, 그런 무의식의 문장들을 수정하거나 지운 적은 없어. 그것마저도 네게 닿는 일종의 마음이라고 여기니까. 조금 날카롭고 둥글지는 못해도, 분명 각진 채로 뚜렷하게 남아있는 마음. (자꾸만 형태가 없는 것에 이런 말을 하는 건 버릇이려나? 이 부분은 제리 네게 충고를 들어 보고 싶네♪)

편지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분명 제리에게 이것저것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모르게 내 이야기만 우르르 쏟아낸 기분이네. 별것 아니지만 궁금한 것들이 있잖아. 비가 왔다는데 우산을 깜빡하진 않았어? 주말에 청소를 도와주기로 했었는데 혼자 한 건 아니지? 새로 산 화이트보드는 좀 꾸며 봤어? 그런 사소한 것들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어. 메시지로 충분히 주고받을 수 있는 이야기지만, 내가 원하는 건 제리의 A to Z란 말이지. 이왕 이렇게 된 김에 편지지를 꽉꽉 채워서 답장해 줘야 해. (물론 농담이야, 적당히 답장해 줘!) 물론 이런 사소한 것 말고도 묻고 싶은 것들이 있어. 평소에는 나누기 어려운 말들, 입 밖으로 새어 나올 수는 있지만 뱉어내기에는 다소 조급한 말로밖에 나오지 않는 것들.

너는 늘 본인이 답신하는 쪽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내가 먼저 말하고 제리가 답하는 경우가 많지만…… 나는 오히려 반대라고 생각해. 너와 함께 있으면 맞닿고 있는 어깨로부터, 선잠을 자는 나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는 것으로부터, 담요를 덮어 주는 것으로부터 이미 먼저 전달해 준 것이나 다름없거든. 무엇을 전달한 거냐고? 음, 답은 제리 네가 제일 잘 알걸.

그래서 가끔은 제리 네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나를 침묵 속에서 바라보는지 알고 싶기도 해. 둘이서 조용히 시간을 보낼 때, 손을 잡고 있으면 손바닥이 저릿거리고 두근거리는 게 느껴져. 약간의 긴장으로 인한 땀도 느껴져. 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느껴지는 건 너의 부드럽고 안정된 호흡과 날 바라보는 부드러운 눈빛이야. 그 눈동자에 내가 담겨 있어. 나는 그 안에 담긴 나를 가끔 질투하기도 해. 그렇게나 사랑받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니.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 말이야. 자기 자신을 질투한다니, 웃기지? 하지만 진심이야.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그 순간의 요슈아만이 간직할 수 있는 제리의 마음까지도 전부 내 것으로 하고 싶어. 조금 욕심쟁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네. 지금 이 부분 엄청 빠르게 써 버렸으니까 글씨가 엉망이라고 하지 마.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새삼스레 실감이 나. 나는 네가 곁에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만 편안히 잠들 수 있다고. 앗, 지금 이 발언 엄청 오해의 소지가 있었나? 불면까지 가는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밥도 제대로 먹고 있고 모두와 함께 잘 자고 있어. 다만 밤이 되고 숙소의 통유리창을 바라보며 잠이 들 때면 생각해. 이 풍경을 너와 함께 공유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고. 너와의 추억을 회고하는 건 언제나 즐거워. 계속해서 되짚고 싶고 몇 번이고 떠들고 싶어.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새로운 기억도 끊임없이 쌓아야 하잖아. 그걸 위해선 내 곁에 네가 있지 않으면 곤란하니까. 음. 뭔가 투정 같았나? 그래도—투정이라도 좋아. 너를 전 세계에 데리고 다닐 거라고 이미 선전포고했으니까, 너라면 이미 각오했어야 하는 일.

여기에서 보는 밤의 마천루의 불빛과 그곳에서 보는 불빛은 확연히 달라. 짧게 머무르는 거라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째서인지 모든 게 움직이는 선처럼 보여.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고개를 내리면 도로가 보이는데, 수없이 많은 붉은 헤드라이트가 저들끼리 뭉쳐서 그 속도 때문에 붉은 눈밭처럼 보이기도 해.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빙글빙글 맴돌아. 발을 한 걸음 디디면 어떻게 될까, 하는.

……역시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을 많이 하는 것 같지?! 미안해, 시정할게. 그런 의미가 전혀 아니야. 오히려 우리가 함께했던 스카이다이빙을 떠올리면서 하는 말이었어. 그때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분이었거든. 텅 빈 하늘을 보면서 낙하하는 건 모든 게 너와 나로 정리되는 기분이었어. 마천루의 한복판에서 너와 내가 아무런 제약 없이 낙하한다면, 중력을 거스르고 뛰어든다면, 우리는 불빛 속에 녹아들까? 그건 우리의 추억이 될까, 풍경의 하나가 될까. 그 해답이 궁금해져서 해가 뜰 때까지 가사를 쓰고, 고치고, 지우고, 쓰기를 반복했어. 유키가 어깨를 두드려서 겨우 정신을 차렸지 뭐야.

그래서…… 그 가사를 완성했을 거라고 생각해, 아니면 미완으로 뒀을 거라고 생각해? 이것만큼은 정답을 알려 주지 않을 거야. 직접 가서 네 답을 들어 보고 싶거든. 어쨌거나 보여 줄 거야, 제대로 각오하고 있어, 약속.

거창하게 늘어 놓았던 것도 아닌데 벌써 편지지를 다 써 가네. 제리 네가 이 편지를 보면서 뭔가를 느껴 주면 좋겠다고 기대하는 건 없어. 다만 꼼꼼히, 한 획씩 정성 들여 쓴 만큼 제리 너도 하나씩 곱씹어 읽어 주었길 바라. 이 편지는 분명 우리 둘의 또 다른 새로운 추억이 될 테니까 말이야. 그리고 여러 번 되돌아 보면서 떠들고 웃겠지.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은 분명 여러 가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하나야. 너의 눈과 코와 입을 마주 보고서, 부끄러운 말을 전할 때 살짝 떨리는 숨결까지도 전부 마주하고서 전하는 것.

곧 만나러 갈게. 그때까지 기다려 줘.

 

All for you,

ヨシュ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