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향한 내 마음이 네가 받는 가장 작은 사랑이길
널 향한 내 마음이 네가 받는 가장 작은 사랑이길

포켓몬과 인간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세계 속 실력을 인정받은 트레이너 요슈아와 그냥 평범한 여자애에 불과한 나
침대맡에 엎드려 지도를 펼쳐놓고 방문하고 싶은 지방과 만나보고 싶은 다양한 포켓몬을 이야기하는 요슈아를 보며 나는 소꿉친구가 커서 드넓은 세상을 탐험하는 모험가가 될 거라 직감해 가본 적 없는 곳을 이토록 그리워하기도 쉽지 않을 텐데 꿈을 이야기할 때면 달을 닮은 눈이 윤슬처럼 반짝거리는 그 애를 어떻게 가지 말라고 말릴 수 있을까…. 다만 그만큼 걱정돼서 13살이 되기 전까지는 곁에 있어달라고 새끼손가락을 걸며 약속했어
요슈아가 모험의 첫걸음을 딛는 날, 그 애를 격려하러 나온 수많은 마을 사람 사이에서 나는 머뭇거리며 말을 고르다 그동안 조금씩 어른들의 심부름을 하며 모은 용돈으로 구매한 전화기를 쥐여줘 언제든 연락해도 된다고 그리고 나는 언제나 너를 기다릴 거라고. 그때 할 수 있었던 최선의 고백을 덧붙이며
요슈아의 파트너 포켓몬은 에몽가 의도치 않았지만 유달리 전기 타입의 친구가 많을 것 같고 온정이 넘치는 아이니까 분명 자신의 포켓몬과 동료들에게도 사랑을 많이 받겠지 전화 너머 오늘도 새로운 포켓몬을 만났다고, 얼마 전 캠핑장에서 모두와 함께 햄버그 카레를 만들었는데 매우 맛있었다고 텐션 오른 목소리로 안부를 전하면 그걸 들으며 앞으로도 소꿉친구의 여행에 행운과 좋은 인연만이 가득하기를 바라
이곳저곳에 발자취를 남기는 요슈아와 다르게 나는 성인이 될 때까지 그 애와 함께 자란 마을에서 쭈욱 살아 소꿉친구가 떠난 이후로 익숙함은 곧 지루함이 되고 해가 지날수록 색채를 잃어버려서 세상이 모노크롬으로 보여 회색빛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건 매주마다 오는 요슈아의 편지야 새로운 마을에 도달할 때마다 꼬박꼬박 기념엽서와 즉석 인화한 사진을 편지에 동봉하는데 처음에는 책상 위 메쉬망에 하나둘씩 붙이던 게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서 나중에는 두꺼운 앨범 서너 개를 꽉꽉 채울 정도가 돼
요슈아의 얼굴을 손으로 덧그리며 우울함을 달래던 나날 어느 안개 낀 날 나는 산책길 옆 풀숲에서 우연히 이로치 따라큐를 마주쳐 호기심이 많은 소꿉친구와 다르게 나는 포켓몬을 들일 생각도 트레이너가 될 예정도 없었지만 나도 모르게 따라큐를 안아 들고 집으로 데려가는데 몬스터볼도 없고 쓰다듬는 손길이 서툰 내게 순순히 안긴 건 같은 외로움을 품고 있다는 걸 알아채서겠지
고독도 질투도 많이 타는 따라큐지만 종종 마을로 요슈아가 찾아오면 그 애가 데리고 다니는 포켓몬에겐 못되게 구는 대신 사이좋게 지낼 것 같아 따라큐도 아는 거지 모든 것이 재미없고 질릴 대로 질린 이 마을을 내가 떠나지 않고 계속 머무는 이유는 누군가의 돌아올 곳이 되기 위해서라는 걸 그리고 그 상대는 눈앞에 있는 사람이란 걸 그래서 요슈아와 요슈아의 포켓몬에게만큼은 우호적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