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비가 내리고 매일 조금씩 떠내려가는 방 안으로
땅 위를 걸어 다니는 것보다 수조 속을 헤엄치는 게 어울릴 듯한 날씨인 요즘은 소꿉친구를 만나면 먹구름의 색을 입은 머리카락이 평소보다 몇 배로 부푼 모습을 볼 수 있는 걸까
빗방울을 피하고자 자그마한 접이식 우산을 펼치면 그 애는 기다렸다는 듯 자연스레 아래로 들어오는데 제 손에도 큼지막한 우산 하나를 들고 있어 요슈아…. 우산 있잖아? 황망한 표정으로 바라보면 이래야 너와 가까이 붙어있을 수 있다고 당당히 답하면서도 애교스러운 얼굴로 시선을 맞추는 남자친구
반달을 닮아 휘어지는 눈꼬리와 나비의 날개처럼 팔랑이는 속눈썹으로 부리는 미인계를 누가 거절할 수 있을까 진심으로 밀어낼 생각은 없었지만 이건 반칙이야,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속절없이 넘어간 나는 결국 요슈아 쪽으로 우산을 기울여 줘
갑작스레 폭우가 쏟아져 내려 우산을 쓰는 의미도 없이 우리 둘 다 강에 빠진 강아지와 쥐처럼 쫄딱 젖어버린 것은 그로부터 고작 몇 분 뒤의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