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stayus
"그러면, 잘 먹겠습니다!"
짝. 경쾌한 박수 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졌다. 모두의 소리가 겹쳐서 흡사 폭죽 터지는 것과 비슷하게 들렸다. 소리가 메아리친 방 안에 벌써 뜨거운 열기가 공기 중을 유랑하고 있었다. 그러잖아도 뜨거운 공기가 올라오는 흰쌀밥을 각자 한 그릇씩 앞에 둔 상태였다. 유키가 젓가락을 들자 다른 이들도 일제히 수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라 할 새도 없이 각자 자신 앞에 제일 가까운 부위를 뜯어 갔다. 뜯어질 때 거대한 오코노미야키의 포슬포슬한 겉면이 유독 도드라졌다. 반죽 사이사이로 얇게 채를 썬 양배추와 고르게 갈아 넣은 마가 보였다. 제리는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오코노미야키를 바라보면서 어쩌다가 이 자리에 끼게 된 것일까, 잠시 생각했다.
계기는 간단했다. 매번 좋아하는 재료를 가지고 요슈아의 집에 모여 식사하는 브레챠만의 정기 모임이 있었는데, 요슈아가 그 전날 제리에게 함께하는 것은 어떠하냐며 제안한 덕분이었다. 그래도 돼? 그렇게 묻는 제리에게 요슈아는 당연하지, 하고 또박또박 발음하며 기대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여러 번 집을 오갈 정도로 익숙해진 이들이었지만 그러한 정기 모임에 끼는 것은 처음이었다. 오래간만에 제리는 약간의 긴장을 느꼈다.
그러나 긴장했던 것이 무색하게 분위기는 최고조를 달렸다. 유키는 준마이긴죠 청주를 들고 왔고 소타와 마츠는 각각 돼지고기와 특제 스파이시 소스, 그리고 베이컨과 달걀 등을 가지고 왔다. 요슈아와 제리가 함께 구매한 최고급 오징어도 물론 곁들여졌다. 요리하는 동안 부엌은 계속 시끄러웠다. 칼을 들고 있으니 얌전히 있어야 한다는 유키의 말에도 불구하고 요슈아가 음을 흥얼거리자 다 같이 브레이브 차일드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기어코 마지막에는 소타가 고음을 내지르기까지 했다. 요란법석 하게 준비하다 보니 여기저기에 가루나 가쓰오부시가 묻어났다. 다섯 사람은 각기 다른 부 위에 가루를 묻힌 채 거대한 오코노미야키를 완성했다. 제리는 자연스럽게 그 크기에 감탄했다. 아무리 다섯 명이라지만 다 먹을 수 있나 싶은 크기였다. 물론, 그것은 괜한 걱정이었다.
요슈아는 입을 크게 벌리고 첫입으로 오징어가 든 부위를 맛보았다. 물컹한 오징어를 둘러싸고 부드러운 반죽이 씹혔다. 겉면 가장자리는 약간 아슬아슬할 정도로 태워져 있었는데, 부드러운 안쪽과 대비되어 오히려 더 식감이 살았다. 그는 공깃밥 한 숟갈을 떠서 한입에 넣었다. 밥알에 밴 소금기가 고소한 가쓰오부시와 절묘하게 섞여 감칠맛을 만들어 냈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열기와 입 안을 가득 채우는 뜨거움도 첫입의 즐거움을 빼앗을 수는 없었다. 입천장이 조금 따갑기까지 할 정도였는데도. 요슈아는 달아오른 두 뺨을 눈치채지 못한 채 그릇을 들고 으음, 소리 내며 만족스럽다는 듯이 눈을 잠깐 깜박였다. 다른 멤버들 또한 엇비슷하게 오코노미야키를 즐기고 있었다. 소타는 자신이 가져온 돼지고기가 있는 부위를 골라 미소 된장국과 함께 맛보았는데, 곧바로 감탄사를 터트렸다.
"잠깐만, 이렇게 맛있어도 돼? 불독 소스하고 조합 장난 아니잖아."
"그렇지, 그렇다니까? 소스 만들 때 케첩 대신 좀 더 매운 걸 넣어 보길 잘했어!"
요슈아는 오른편에 앉은 소타에게 맞장구를 치며 젓가락을 고쳐 잡았다. 그사이 몇 입을 더 급하게 씹어 삼킨 소타가 요슈아에게 이쪽 부위를 먹어 보라며 자신 앞을 가리켰다. 요슈아는 순순히 그의 말을 따랐다. 반죽 안에는 매콤한 소스 사이로 담백한 달걀과 베이컨이 기름내를 풍기고 있었다. 요슈아는 잘근잘근 씹히는 베이컨을 한쪽으로만 씹었다. 저절로 오른쪽 볼이 부풀어진 것처럼 보였다. 제리는 야금야금 가쓰오부시와 파래 가루가 상당하게 몰려 있는 가장자리를 맛보면서 요슈아를 관찰했다. 입 안으로 퍼지는 열기가 식도를 넘어가는 순간까지도 지속되는 듯했다. 단정한 블라우스 아래로 가슴이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오코노미야키보다도 잔을 비우기 바빴던 마츠가 그제야 젓가락을 집었다.
"그 정도? 어디, 나도 한 입."
이미 첫입을 맛본 유키는 준마이긴죠를 홀짝였다. 그는 다른 이들과 함께 마츠가 손을 뻗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돼지고기가 유독 많이 들어간 부위를 골라 갔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참을 씹던 그의 눈매가 잠시 날렵해졌다. 그리고 한껏 웃음기를 띄우면서 호탕하게 미소지었다.
"어, 뭐야! 바꾼 소스도 맛있잖아?"
마츠의 목소리도 한껏 기분이 들뜬 것처럼 변했다. 잘게 썬 돼지고기가 그의 입 안에서 부드럽게 씹혔다. 그 모습을 본 멤버들과 제리가 가볍게 웃었다. 소타와 요슈아가 제안한 특제 소스는 아무래도 모두의 입맛에 들어맞았던 모양이다. 제리 또한 무난하게 오코노미야키를 씹어 삼켰다. 약간 기름기가 있는 부침에 적절히 매운맛이 가미되니 가리는 재료들도 예상보다는 먹을 만했다. 모두 한 입씩 맛을 보고 나서 분위기가 더욱 시끌벅적해졌다. 제리는 한 입 한 입 씹을 때마다 조심스럽게 손을 올려 입을 가리면서 먹었다. 씹는 소리 또한 거의 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이것은 엄연히 브레이브 차일드만의 정기 모임이었다. 우연한 계기로 참석하게 된 제리로서는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제리와 요슈아는 서로 짜맞추기라도 한 듯 계속 오코노미야키 조각을 가져오는 타이밍이 맞았다. 그때마다 두 사람은 서로 먼저 하라며 젓가락을 물렸다. 얼떨결에 팔을 주춤거리던 둘이 마주 보며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떠들썩한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때쯤 소타가 돌연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를 모두가 올려다보았다. 그는 마이크 대신 숟가락을 가까이하고 흠흠, 하고 헛기침했다. 그는 별안간 토크쇼 사회자처럼 자세를 취했다.
"오늘 모여 주신 브레챠와 제리 씨에게, 우선 감사의 말씀 올리면서…….”
"뭐 하는 거야?"
마츠가 테이블을 훑어보며 빈 잔을 찾아 채웠다. 준마이긴죠는 청명한 소리를 내면서 작은 잔에 가득 담겼다. 아슬아슬할 때까지 청주를 따르는 그를 보며 유키가 손짓하며 말했다.
"늘 하는 거잖니. 즐거워 보이니까 놔두자."
그리고 청주가 넘쳐흐르려는 자신의 잔을 본 제리가 앗, 소리를 내는 것과 동시에 소타가 이미 비운 청주 병을 높이 들어 숟가락으로 두드렸다.
"자, 자! 브레챠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할 때잖아!"
"아하하. 어쩐지 오늘은 안 하나 했어!"
"또?"
"아아, 제리는 모르겠구나."
요슈아가 어느새 제리의 어깨에 고개를 기댄 채로 제 잔을 툭툭 두드렸다. 제리도 잔 들어.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빛은 장난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 익살스러운 눈빛이 영 낯설지 않았다. 제리는 약간은 반신반의한 채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찰랑찰랑 표면이 흔들리는 잔을 조심스럽게 들었다. 그러자 소타가 기다렸다는 듯이 허리를 숙여 잔을 집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가 크게 숨을 들이켜더니 단숨에 일 분간 건배사를 쏟아냈다. 다들 이번에도 수고했다는 말부터 시작해서 이번에는 제리도 꼈으니 색다른 기분이라든지, 다음에는 오코노미야키 대신 전골을 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 등등 거진 수다에 가까운 내용들이 마구 쏟아졌다. 그가 열변을 토해내는 동안 마츠는 오코노미야키를 한 입 더 먹었다. 제리가 속으로 폐활량이 엄청 좋구나, 생각할 즈음에 소타가 마지막으로 힘껏 외쳤다.
"여기 없는 데빌즈들을 향해, 건배~!"
그러면서 잔을 높게 치켜들었다. 찰랑거리던 청주가 결국 한 방울 툭 떨어졌다. 그것을 신호라도 삼은 듯 나머지 멤버들이 건배를 외쳤다. 제리 또한 반 박자 늦게 건배, 하고 잔을 높게 들었다. 그리고 모두가 한꺼번에 술을 들이켰다. 좀 전부터 빠른 페이스로 마시고 있던 탓인지 알딸딸한 기운이 확 몰려올 정도였다. 제리는 빈 잔을 뚫어져라 보다가 요슈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매번 이렇게 요란하게 건배하는 거야?"
"응, 매번 돌아가면서 한 명씩 건배사를 준비해 오는 거야. 저번에는 생맥주로 했었지? 다 같이 한 잔을 가득 채워서 원 샷 했는데, 그때는 배불러 죽는 줄 알았어─"
"엄살 부리기는. 그래봤자 맥주잖아!"
"후후. 저번에는 나도 꽤 고생했어? 신이 나서 건배사만 다섯 번은 외친 것 같은데."
"다섯 번!"
제리가 감탄스럽게 외쳤다. 소타가 씩 웃으며 자리에 시원스럽게 앉았다. 바닥과 그의 다리가 마찰하는 소리가 크게 났다. 줄곧 턱을 괴고 있는 유키를 따라 하듯 소타 또한 턱을 괴면서 제리에게 말했다.
"앞으로는 제리 씨도 함께할 테니까! 각오 단단히 하고 준비해 오는 게 좋을 거야~?"
제리가 잠시 짧게 멍한 소리를 냈다. 그는 제대로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재차 되물었다.
"이번만 참석하는 게 아니었어? 브레챠의 정기 모임이니까, 나는 해당 안 되는 줄 알았는데."
유키가 요슈아와 제리를 보며 작게 웃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제리가 의문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자 그가 대답했다.
"제리는 요슈아의 소중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도 소중한 친구잖아. 그리고…… 제리가 함께했으니 요슈아도, 우리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브레챠 모임에 제리가 못 낄 이유는 전혀 없지. 마지막 문장으로 말을 마친 그가 입을 가리며 미소 지었다. 제리는 그 말에 잠시 눈을 깜박거리다가 고개를 숙였다. 청주가 한 방울도 남지 않은 빈 잔이 보였다. 반투명한 잔에는 그의 얼굴이 일그러진 채로 흐리멍덩하게 비추어졌다. 그는 지금 자신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직접 보지 않았지만 알 것 같았다. 분명, 조금은 바보 같고 또 조금은 설렘을 담은 표정일 것이다. 그가 요슈아를 바라보았다. 요슈아는 언제나 그랬듯 그의 곁에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두 손등으로 턱을 받친 채 고개를 기울이며 웃었다. 그가 부드럽게—어쩌면 반쯤은 취기가 섞인 것 같기도 했다—말했다.
"응, 그 말대로야."
그러면서 제리의 어깨를 확 끌어당겼다. 제리는 그대로 이끌린 채 어영부영한 자세로 요슈아와 볼이 맞닿았다. 요슈아가 예의 익살스러운 태도를 유지하며 멤버들을 쳐다보았다.
"앞으로도, 제리도 브레챠도 쭉 함께하고 싶은 소중한 사람들이니까!"
그렇게 말한 그의 눈동자가 전등 불빛에 반사되어 반짝 빛났다. 잿빛 눈동자가 언뜻 그의 머리카락보다 좀 더 밝은 흰색을 띄우는 듯했다. 제리가 그와 멤버들을 번갈아 보며 아,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그는 소타가 외친 순간부터 쿵쿵 뛰는 심장 소리를 감추기 어려웠다. 지금 와 생각해 보니 그것은 있을 곳을 찾았다는 기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다정한 이들과 별것 아닌 시간으로 나누는 즐거움을 새삼스레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깨달음에 제리가 입술을 떼지 못하고 있을 참이었다. 눈앞에 갑자기 불쑥 준마이긴죠 병이 내밀어졌다. 마츠였다.
"자자, 그런 말 할 여유 있으면 한 잔 더!"
"잠깐잠깐, 소타 군~?! 왜 맥주잔을 들고 오는 거야?"
"후후, 술은 많으니까 다들 걱정하지 마?"
"다행이네! 자, 제리, 받아!"
"지—진짜로? 사이즈가……."
제리는 아마도 오늘 밤에는 요슈아의 집에서 자고 가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을 직감적으로 받으며, 마츠가 청주를 따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술잔에 차오르는 청주의 빛깔을 바라보니 어쩐지 모든 것이 마냥 즐겁게만 느껴졌다. 그는 키득키득 웃음을 터뜨렸다. 밤이 아직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