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사람으로서 우린 겨울밤 서로의 체온을 앓으며
순백의 사람으로서 우린 겨울밤 서로의 체온을 앓으며

널 향한 내 마음이 네가 받는 가장 작은 사랑이길

 

성인이 된 다음 해의 내 생일날 편지도 전화도 어떤 예고도 없이 마을로 찾아온 요슈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분명 얼마 전 중요한 배틀 참가를 앞두고 있다고 했었지 거기서 다친 걸까 아니면 마음이 꺾인 걸까 걱정되는 마음에 따라큐의 머핀에 넣기 위해 잘게 다지고 있던 라즈열매를 내팽개쳐두고 신발 신는 것마저 잊어버린 채로 그 애가 있다는 공터로 달려가 포켓볼에서 나온 에몽가, 펄스멍과 놀아주고 있던 소꿉친구가 기겁할 정도로 머리는 풀어헤쳐져 산발이고 흙길을 달려온 발바닥은 잎사귀와 나뭇가지가 붙어서 엉망진창인데 그런 건 중요하지 않잖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호흡을 고를 새도 없이 헉헉거리며 질문을 던지면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그 애가 손을 맞잡고 말해 배틀에서 우승했어 유명한 기업에서 파트너십 계약을 맺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고 실력을 인정받은 트레이너로서 공식적으론 출입이 금지된 구역에도 약간의 절차만 거치면 통행할 수 있다고
다쳐서 돌아온 건 아니었구나. 불안 대신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려다 이어지는 말에 굳어버려 그러니 제리, 이제부터는 함께하지 않을래?
망상이라기엔 긴장한 상태로 내 눈을 바라보는 네 눈 조금 떨리는 손 네가 모험의 첫걸음을 디딘 그날부터 지금까지 꿈에서도 감히 떠올려본 적 없는 한 마디를 곱씹다가 그 순간 미지근한 온기가 올라와 두 뺨을 덥히고 내가 소리 없이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그때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말했잖아 나는 언제나 너를 기다릴 거라고, 그게 내 진심이었어…. 하릴없이 떠날 수밖에 없는 너를 기다리며 함께 보낸 시간을 되감는 게 내가 걷는 미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화기를 건네받은 순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너는 그때부터 둘이 있는 미래를 그리고 있었던 거구나 대답 대신 따뜻한 요슈아의 손등에 내 손을 올리면 긴장이 풀렸다는 듯 얼굴에 꽃처럼 환히 피어나는 미소
수 년의 기다림의 끝 프러포즈 같기도 한 소꿉친구의 진심을 받아본 뒤 며칠 지나지 않아 나도 가진 짐을 정리하고 그동안 신세졌던 마을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나눈 뒤 그 애와 모험을 향한 첫 발걸음을 내디뎌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뒤돌아본 집은 초록 가득한 어릴 때의 기억과 다르게 여전히 내게 색을 잃고 흑백으로 보이는데 예전처럼 지루한 느낌은 들지 않아 다시 돌아오지 않을 테니 안녕 잘 있어 
요슈아가 나를 데리고 맨 처음으로 간 곳은 너무나도 추워서 사람은커녕 포켓몬도 몇 살지 않는다는 극지의 설원 눈보라가 하늘을 뒤덮고 왕관처럼 눈을 얹은 침엽수가 가득한 세상 붙잡은 손 외에는 전부 얼어버릴 정도로 추운 곳이야

흰색과 회색 검정밖에 없는 드넓고 공허한 공간인데도 몇 년 동안 내가 본 광경 중 가장 다채로운 풍경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