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연결

@daso_somi

 

 

그해의 여름은 유화 같았다.
녹음은 쏟아지는 볕에 따라 덧칠되듯 사방으로 연해지고 짙어지기를 반복하며 시야를 채웠다. 볕뉘 아래에 서 있을 때면 사이로 비쳐 들어오는 빛이 그늘 위로 내 손을 밝게 덧그렸고, 거리는 불투명하고 거친 붓놀림으로 세워져 있었다. 모네의 유화처럼 인상에 강하게 남겨진 순간들은 때로 화창했고 때로 비가 올 듯 흐렸으며 때로는 안개로 묽게 번졌다. 나는 순간을 사진처럼 기억에 남기는 법을 배우지 못했으되 귀로 기억하는 법은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러한 광경은 풍경보다도 먼저 소리로 남았다. 그리하여 같은 빛깔 아래 유달리 기억에 남은 순간들에는 전부 같은 소리가 있다. 쉴 새 없이 두근거리는 소리. 멈추지 않고 속력을 높이는, 나를 잃을 것만 같은 심장박동이.

 

 

또 엉켰어.
나는 주머니를 뒤적인 끝에 끈 뭉치 같은 것을 집는다. 찾던 물건이었으나 달가운 형태는 아니었다. 더위에 젖어 미끈거리는 손으로 이어폰을 꺼내보면, 볼 것도 없이 줄은 양 끝을 서로에게 녹여놓은 듯 달라붙은 채다. 그것은 마치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끝없는 난제를 품고 영원히 제 모습을 되찾지 않겠다는 양 몸을 뒤틀고 있었다. 이러지 마…. 손끝으로 줄을 더듬으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소용없다. 나는 별다른 도리 없이 줄의 처음과 끝을 찾았다. 그러나 한 갈래의 선을 아무리 따라가 보았자 미궁에 빠진 것만 같은 혼선 속에서 꼬리는 모습을 감춘다.

 

그러면 결국 한숨을 내쉬고 만다. 올려다본 하늘은 쨍쨍하게 빛을 내리쬐며 답답한 마음을 한층 더 후덥지근하게 만들고 있었다. 온 세상이 이렇게나 새파란데도 덥다는 건 정말 이상한 일이야. 괜한 사실에 투정을 부려보고 있노라면 여전히 손에는 엉망진창으로 꼬인 이어폰이 걸린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처럼 모든 걸 칼로 잘라내듯 결단할 수 없다는 건 아쉬운 일이었다…. 고작 이어폰 하나인데도 더위 탓인지 기운이 빠졌다. 아마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어폰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잘라낼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고르디우스의 매듭이 이어폰 줄이었다면 그걸 잘라내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며, 애써 마음을 다잡은 나는 다시 긴 줄을 살살 풀어나갔다.

 

마침내 성가심을 이겨내고 처음과 끝을 찾았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부른다. 제리. 응? 당황해 뒤를 돌아보면 그곳에는 요슈아가 있다. 회색 머리칼이 반짝이며 은빛 하이라이트를 두른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머리칼과 같은 색의 눈은 나를 보더니 가만히 눈매를 내려 웃는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어? 제리가 이어폰을 마구 괴롭히기 시작했을 때부터려나. 한참 보고 있었다는 거잖아. 응, 열중하고 있는 것 같아서.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곧 할 말을 잃는다. 왔으면 말해달란 말이야. 중얼거리는 말에 큰 의미는 없다. 요슈아에게는 결국 지고 마니까. 햇살 때문인지 오늘따라 유난히 반짝이는 낯에서 시선을 돌릴 핑계를 댈 뿐이다.

 

오늘은 무슨 노래야?
아직 안 정했는데… 요슈아가 고를래?

 

아이팟을 건네면 요슈아는 기꺼이 그것을 넘겨받는다. 손끝이 스친 자리에는 더위 아닌 다른 열기가 번진다. 나는 열기를 식히기 위해 요슈아 몰래 짧게 주먹을 쥐었다 폈다. 팔을 뻗어야 닿을 정도로 먼 거리를 실감하면서.

 

자, 이어폰 줘.

 

노래를 고른 요슈아가 손을 내민다. 얼추 풀어놓았던 이어폰은 요슈아의 손안에서 꼬인 적 따위 없었던 것처럼 가지런해진다. 이어폰 한 짝을 제외한 나머지는 곧 내 손으로 돌아오고, 나는 이어폰을 꽂은 요슈아를 보았다가, 그에게 다가가는 것보다 먼저 시작 버튼을 누른다.

 

요슈아.

 

작게 부르는 목소리는 잔잔한 음악에 가려진다. 눈을 감은 요슈아를 보고 있으면 여름의 소리가 들렸다. 더운 바람결에 흩어지는 나뭇잎의 소리. 멀리서 울리는 버스의 경적 소리. 매미의 울음소리와 어디선가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끝내 숨을 들이마시고 간격을 줄이면 들려오는, 누군가의 빠른 심장 박동 소리. 나는 요슈아와 한 뼘을 두고 나란히 섰다. 이어폰의 줄은 기억보다 짧은 편이었으므로 어쩌면 그보다 더 가까이. 느리게 이어폰을 귀에 꽂고, 모든 게 음악에 가려지는 이 순간을 매번 기대하게 되리라 생각하면서….

 

박동과 섞인 음악은 그 자체로 후덥지근한 여름의 풍경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