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defg11
눈이 아릴 정도의 하양이 시야 가득 들어찼다. 가쁜 숨을 하얗게 내쉬자 들이마실 공기가 희박한 것이 느껴졌다.
어떤 포켓몬도, 어떤 식물도 살기 어려운 극지대. 그 이름답게 이곳은 돌아봐도 돌아봐도 오로지 눈, 눈이 만든 새하얀 언덕, 그리고 우리가 그 언덕길을 오르며 함께 만든 발자국 뿐이었다. 자신은 평소 포켓몬들과 함께 많은 곳을 다녀왔지만 제리는 어떨까, 돌아본 제리는 아니나 다를까 조금 벅찬 듯 숨이 가빴지만 시선이 마주치자 응? 하는 시선을 던지면서도 엷게 미소지었다. 잡아도 괜찮다며 손을 건넨 건 그래서였다.
가슴이 미어지는 표정이었다. 제리의 얼굴은 늘.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마음을 정했다. 세상의 이름이 적힌 글자들과 생김새, 너비, 지형에 대한 그림을 볼 때마다 심장 한 켠이 고요히 박동을 전했다. 저곳으로 가 보고 싶다, 지도 속 실제의 장소에는 무엇이 있는지 두 눈으로 보고 싶다, 타인이 전하는 말과 묘사가 아니라 내가 듣고 느끼는 경험을 원한다. 마음 속 목소리는 분명했고 따르는 것은 어렵 지 않았다. 든든한 동료들도 함께였으니까.
어려운 것은 하나뿐인 소꿉친구를 두고 가는 일이었다.
어쩌면 말로나마 권해볼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함께 가지 않을래, 나는 너랑 함께하고 싶어. 하지만 거절당한다면? 제리는 가고 싶은 곳 같은 건 그다지 없는 듯했고 그래서 그 애의 일상은 평온함에 둘러싸여 있었다. 머무르는 장소에서 아무 일 없더라도 스스로 불안을 감지하고 느껴버리는 나와 달리 색채에 둘러싸인 환경, 풍경. 내가 제리에게서 듣고 싶지 않은 말은 "미안해" 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왜?", "꼭 그래야만 해?" 같은 답이 나와 버린다면 나는 견딜 수 없을 터였다.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듣는 의문이나 거절을. 이건 오로지 내 문제였다. 나라는 인간의 속성의 문제.
그 사실이 견딜 수 없어서 마을에서 나오는 시간을 더 앞당겨 버렸다. 도망치듯 뒤로한 마을에서 제리가 말한 "기다릴게"도 잊으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비겁하게.
그렇지만 돌아오는 것도 결국 나였지. 당연했다. 나는 이 애를….
나는 이 애와….
함께 가주지 않겠느냐고 말한 직후 향한 곳이 어떤 색채도 없는 극지방인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묻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우리를. 그리하여 믿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어떤 색채도 없고, 추위 뿐인 곳에서도 정말로 괜찮겠냐고, 나와 함께해 줄 거란 게 맞냐고.
그리고 내가 내민 손을 제리는 그 어떤 의문도 거절도 내밀지 않고 잡는다. 단단하게. 그 어떤 색과 풍경이 펼쳐지더라도 자신의 마음은 진실로 한결같은 거라는 의지를 담아.
미어진 마음에 충만이 눈보라처럼 불어온다. 하얗지만 반짝거리며, 서늘하지만 홀릴 수밖에 없게.
잡은 손을 단단히 마주 잡고 제리와 나란히 서 꿈에 그리던 말을 담아 본다.
"나와 함께해 줘서 고마워."
여기에 얼마나 많은 용기가 담겼는지 너라면 알아줄까.
"너와 함께하고 있어서 기뻐."
통상적인 말 하나를 뱉지 못해서 수많은 지역을 헤메고 그곳에서 다른 기쁨을 찾으려 해보고 짧은 기쁨 속에서 나의 문제를 잊으려고 했던 비열함을 용서해 줄까.
아마…… 이 애라면 그래줄 것이다.
하여 잡은 손을 놓치는 법 없이, 놓치는 상상 따위는 결단코 하지 않으며, 끝없이 펼쳐진 이 하양처럼 끝없이 함께하는 미래를 손 안에 함께 쥐고서 걸어간다.
걸어가는 눈앞에 언덕길이 내리막길로 변하며 엷은 주홍빛 해가 하늘 높이 떠오르는 것이 보인다.
이 풍경은, 틀림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