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아직 흑백영화처럼 사랑하고
우린 아직 흑백영화처럼 사랑하고

시내를 헤매다 들어간 길목에서 우연한 계기로 발견하게 된 수수께끼 레코드샵 수십 년을 고보한 것처럼 보이는 간판에선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고 규모도 가히 작아 보이지만 어쩐지 홀린 듯 유리문을 젖혀 들어가면,

그곳은 마치 반세기 전에 시간이 머물러 있는 듯이 수백 가지 바이닐과 CD와 카세트 테이프가 선반에 빈 칸 없이 빼곡히 꽂혀있어서 코트로 가득 찬 옷장 깊숙이 들어갈 때에서야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신비의 나라 나니아를 연상케 해 카운터에 엎드려 휴식을 청하던 직원분은 우리의 방문을 눈치채자 축음기 위에 LP를 올려두셔서 고요했던 가게 안에는 침묵 대신 이름 모를 가수의 노래가 실내를 유유히 채우네

여전히 이런 가게가 남아있었다니 과거에 불시착한 요슈아와 제리가 된 기분이야 음악에 대해 하등 아는 것 없는 나조차도 어쩐지 들뜬 기분으로 레코드판 커버 뒷면에 쓰인 설명을 들여다보게 되는데 노래를 사랑하는 소꿉친구에겐 이 순간이 얼마나 기쁠까 이 앨범은 이십 년 전 폐반되었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발견할 줄은 몰랐어, 중얼거리는 그 애의 심장박동이 시계 방향으로 빙글 돌아가는 바이닐 속 반주보다 선명하게 울릴 정도로 신난 게 느껴져서…. 즐거움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선율을 관조하는 요슈아의 곁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와 가게를 둘러보던 중 내 눈에 들어온 건 요슈아가 발표한 싱글 음반들

한 시간 뒤 결국엔 각자 묵직한 봉투를 품에 안고 열렬한 환대를 받으며 나와 방문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점원분의 인사에 다음에도 꼭 올게요 라고 대답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