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출발한 눈길은 돌아오지 못하고 다른 이의 외계를 떠도니
한번 출발한 눈길은 돌아오지 못하고 다른 이의 외계를 떠도니

소꿉친구가 집으로 놀러 왔던 언젠가의 밤 동네 전체가 정전된 적이 있어 팟 하고 갑작스레 꺼진 플로어 스탠드 때문에 순간 당황했지만 둘 다 저녁을 먹고 샤워도 마친 후라 다행이었지 양파를 썰거나 파스타라도 삶고 있는 도중이었다면 난감했을 거야
부엌에서 급히 나오려다 식탁 모서리에 옆구리를 부딪치는 나를 대신해 소파에 앉아있던 그 애가 사물의 윤곽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더듬어가며 커튼을 젖히면 거실 창으로 흑색 잉크를 엎지른 듯 암막한 동네의 모습과 드문드문 비치는 작은 섬광 위로 내려앉은 옅고 흰 달빛이 침입하는데 그 광경이 우주선의 창문 너머로 바라보는 아득한 우주처럼 보여서 짝꿍과 나 둘 다 탄성이 새어 나왔어
달님에게 홀린 듯 한 발짝씩 다가가는 소꿉친구 그의 촘촘하고도 반짝이는 은색 속눈썹에 월광이 드는 걸 보며 나는 이 아름다움을 잊을 수 없이 평생 기억한 채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