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yodornohime
제리에게 지구는 차라리 무중력 상태에 가까웠다. 교실에 앉아 만유인력의 공식을 받아적으면서도 열여섯 제리는 도저히 중력의 존재를 믿을 수 없었다. 질량을 가진 물체들 사이에 반드시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이 존재한다는 교과서의 주장은 그야말로 터무니없었다. 햇볕이 유난히 희던 한낮, 선생님의 목소리가 영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제리는 그저 창밖을 바라보았을 뿐이다. 새 몇 마리가 눈이 시리도록 파란 산 호세의 하늘을 일제히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보란 듯이 중력을 거슬렀다. 그러다 두 날개가 지치면 다시금 저들을 끌어당기는 지구의 양팔에 이끌려 지상으로 돌아왔다. 제리는 그들을 부러워했다. 허나 새로 태어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새였다면 한 번 날아오르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을 거야. 하염없이 날아가기만 하는 풍선처럼. 이곳에 나를 끌어당기는 힘 같은 것은 없어. 깊은 외로움의 고해 같은 문장이 마침내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녕 만유인력이 실존한다면 모든 것은 단지 자신의 문제이리라. 질량이 없는 영혼. 질량이 없는 마음. 정확히는 모든 질량을 지구가 끌어당길 수 없을 만큼 머나먼 달에 두고 와 버린 사람처럼 발끝이 하염없이 가벼웠다. 생각이 이만큼 다다랐을 때 제리는 또 한 번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제리는 언제나 달을 그리워하는 사람 같았다.
요슈아는 지구의 중력을 도무지 견딜 수 없었다. 그것이 끝내는 살점에 흠집을 내고 피를 보였다. 그의 창백한 손목에는 언제나 두어 개의 혐오와 대여섯 개의 강박이 자리해 있었다. 흉터는 좀처럼 지울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멈출 수 없었다. 사랑하는 것들의 무게에 짓눌리는 일은 좀처럼 감당하기 어려웠다. 요슈아는 거울에 비친 자잘한 상처들을 마주할 때마다 아주 노후한 조각상이 된 기분을 느꼈다. 갈라진 틈으로 부스러기를 쏟으며 깨어질 듯 말 듯 위태한 석고상. 위태로움을 들킨다면 더 이상 누구도 자신을 찾아주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그의 오랜 두려움이었다. 그는 금이 간 손목을 억지로 여밀 때마다 두려움을 느꼈다. 이따금씩 해방을 바라기도 했다. 허나 그에게 자학으로부터의 해방이란 길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기꺼이 나침반이 되어 줄 별이 오래도록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이 땅에 살기엔 부적격한 두 사람이 지구를 벗어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제리의 선택지에는 언제나 가장 극단적인 방법이 있었고, 때때로 높다란 건물 위에서 아득한 아스팔트 바닥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는 습관도 여기에서 기인했다. 하지만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제리가 처음으로 까마득한 바닥을 내려다보지 않은 날, 눈앞의 달을 보고 어떠한 영감을 얻은 듯이 그는 읊조렸다. 밤의 천체를 닮은 은색 눈동자 두 쌍이 맞물리고 있었다. 요슈아, 우리가 이곳의 중력을 견딜 수 없다면……. 제리는 말끝을 흐렸지만 요슈아는 미완의 문장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감감히 웃으며 화답했다. 알고 있어. 달의 중력은 지구의 육 분의 일이지? 쏟아지는 달빛처럼 마침내 제리의 낯에도 미소가 번졌다. 응. 달에서라도 좋으니, 같이 살아가는 거야. 두 사람의 계획에 우주선 따위는 필요 없었다. 바로 다음 순간 망설임 없이 눈앞의 달을 껴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