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defg11
성탄 전후, 연말은 어려운 계절이다. 사람들의 행복을 바라고, 그들이 특별하고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길 바라며 곡을 쓰고 노래를 부를수록 내 안에서 이중적인 감정이 커지기 때문이다.
모두가 미소짓고 모두가 소중한 사람과 행복 속에서 특별한 나날임을 만끽한다. 나또한 그런 사람들의 일원이 되어 이야기하고, 웃는다. 조심스럽게. 최대한 들키지 않게.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환호받고 환영받는 내가 사실은 그들의 기분을 망칠 만한 사람이라는 게 드러나지 않게. 축제를 망치고 싶지 않은 간절함이 클수록 나는 더 위축되고 더 대범해지며 더 위태로운 하는 기분 속에 놓인다. 어디까지 나아가야 하고 어디까지 잘 숨기고 있는지 숨 막히는 외줄타기.
"요슈아, 고생했어! 와 줘서 고마워. 메리 크리스마스!"
"응, 나야말로 초대해 줘서 고마웠어. 메리 크리스마스."
그러나 다행히 올해 연말도 무사히 보낸 것 같다.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활기로 가득차 있고, 조명과 불빛이 만드는 빛 아래서 환히 반짝인다. 아무 일 없어서 다행이다. 그들이 눈치채지 않아서 다행이다. 내 안에 있는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들이 드러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안도 속에서 나도 비로소 진심으로 미소짓는다. 그리고 배웅 나온 사람이 집 안으로 도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문이 단단히 잠기는 소리를 확인한 뒤에야 천천히 몸을 돌린다. 차를 타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거리를 걸어다니는 건 더 고역이라 순순히 하얀 택시에 몸을 맡긴다.
차창 밖으로 흰 눈이 엄지손톱만치 커다랗게 펑펑 쏟아진다.
그리워할 사람이 없어야 정상일 텐데, 존재하고 마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어떻게 그런 사람이 내 곁에 오게 됐을까, 나에게는 분에 넘치고 자격도 없는 일일 텐데.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져서는 안 될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꾹꾹 누르기만 하는 나에게 이해자… 신뢰자 같은건 없어야 마땅할 터다. 그런데도 마치 괜찮다는 것처럼, 그 이상의 이유를 상상할 수도 없게끔 그런 사람이 곁에 있어 왔다. 그것도 아주 오래 전부터 줄곧.
이 일이 주는 기적을 생각한다. 성탄(聖誕)도 거룩도 믿지는 않지만 그런 게 존재하는 이유를 알게 해 주는 우리의 사건을, 만남을 생각한다. 생각은 흐르고 흐르다 보면 다시 그리움으로 가 닿는다. 그 그리움은 바다 같은 것이라 끝이 없다. 나는 바다처럼 그 아이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하여 그리움에 수몰된 채 스마트폰을 꺼내든다. 투박한 문자 창 위로 보잘것 없는 단어들을 써 내린다.
「제리.」
…사랑하는 이름을 오랫동안 바라본다.
그 옆으로 단어들을 덧붙인다.
「메리 크리스마스.」
「오늘은 스노우 크리스마스야. 너랑 같이 눈길을 걸으면 좋을 텐데 생각해. 생각으로 끝내야만 한다는 점에 안심하는 나를…」
글로도, 손가락으로도, 마음으로도 망설이고 마는 나. 여전히 이래도 괜찮은가 의문하지 않을 수 없는 나.
그런 나를 상대는 '알고 있다.' 알고 있기에 믿어 준다.
「네가 용서해주리라 믿어서, 많은 간절함 끝에 그럴 수 있게 돼서, 기뻐.」
그렇다면 나는 고마워와 좋아해 중에 어떤 것을 말해야 올바를까? 나는 아직도 나의 감정에 제대로 이름붙이는 법을 모른다.
그렇지만, 제리라면 내가 둘 중 어떤 단어를 고르더라도, 혹은 둘 중 어떤 단어도 고르지 못하더라도, 이 문장들 속에서, 핸드폰 화면 너머 조금 먼 곳에서 내가 어떤 마음을 전하고 싶은지 알아줄 걸 알기에….
앎과 믿음이 주는 평온함 속에서 나는 짧게 세 단어를 더한다.
「좋아해.」
둘 중 어느 쪽일지 정하지 못하겠다면, 더 강한 감정을 드러내는 걸로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들어서.
이 욕심 또한 부디 용서해 주기를.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한참 지나 쌓인 눈들이 녹아내리기 시작할 때여도, 내가 조심스럽게 "오늘은 다른 사람들에겐 무엇도 아닌 날일 테니까, 그 거리 사이를 함께 걸어주지 않을래," 라고 손 내밀었을 때에 그또한 용서하고 받아들여 주기를.
그래서 우리가 모두가 축복하는 날에서 조금 동떨어진 하루일지라도 다른 여느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웃고, 행복해하고, 특별한 나날을 만끽해도 되기를.
간절히 바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