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chacreamsoda
멸망을 멈춰세우는 가장 연약한 것
호흡을 따라 세계가 전율한다. 몸을 움츠리는 난류. 비틀대며 걸음을 뗀 남자가 머지않아 고개를 떨어뜨렸다. 건물의 파편들이 남자의 주변을 감싼 채 부유하고 있었다. 터지기 직전의 시한폭탄이 초읽기에 들어간다.
수치는 이미 블랙 라이트를 지나쳤다. 지금 당장 폭주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비상등이 점멸하고 요원들은 적정 거리를 지킨 채 그를 숨죽여 바라보았다. 일본 내 가장 강력한 잠재력을 지닌 남자. 범위를 넓혀 지구상에서 그와 견줄 법한 인물을 찾는대도 열 손가락이 미처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그가 마지막 끈을 놓아 버린다면…….
그럼에도 여즉 긴급 대피 지시가 떨어지지 않은 까닭이란 단 하나뿐이다. 아직이야? 오고 있대요. 빌어먹을, 하필 오늘 테스트가 있을 게 뭐냔 말이야. 나누어지는 속삭임이 초조했다. 흐린 시선이 주변을 헤엄친다. 무언가를 찾는 듯한 기색이었다. 블랙아웃을 하염없이 헤매던 미아가 어떠한 단어를 중얼거렸을 적.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많은 잔해를 남긴 폐허에 걸려 넘어질 듯 휘청이면서도 멈추지 않는 달음박질. 마침내 절박한 음성이 외친다.
"요슈아!"
창공의 공회전이 일순 정지했다.
어느 변화는 세상을 뒤집어놓기도 한다. 이능력의 발현과 소위 '센티넬'들의 등장은 사회의 혼란을 야기하며 언론을 뜨겁게 달궈 놓았다. 정부의 통제 아래 위험 분자로 취급되던 그들은 던전 브레이크와 크리처 웨이브를 겪은 사람들에 의해 180도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대중은 그들을 영웅이라 불렀다. 아무나 가지지 못하는 힘을 가진 이인異人. 인류의 위협에 맞서 싸우는 용감한 히어로! 일부는 그 라벨링에 기쁘게 순응하였고, 일부는 감탄고토의 태도를 지리멸렬하게 생각하였지만 눈앞에는 피하지 못할 위기가 존재하였다. 그렇게 대부분의 센티넬들은 정부의 철저한 관리 아래 대對크리처 기구 <프라스타나 prasthana>를 창설하기에 이른다.
요슈아는 프라스타나 입단 당시부터 선풍적인 인기와 관심을 끈 인물이었다. 이제 갓 성인이 된 나이임에도 감히 측정하지 못할 만큼의 힘을 가진 존재. 이능력을 측정하는 방법이란 으레 단순하다. 타인이 가진 능력의 수준을 가늠하는 이능력자에 의해 1차 검사를 받은 뒤, 2차적으로 실사용에 돌입한다. 잠재력과 별개로 얼마만큼을 직접 운용할 수 있는지 테스트하는 것이다. 1차 검사관, 블랑은 말했다. '그의 끝을 가늠하지 못하겠어요. 한계가 보이지 않아요.' 이후 돌입한 2차 검사에서 요슈아는 테스트용 건물과 그 일대를 모조리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형언하자면 그는 프라스타나 유일의 등급 불명 센티넬이 된 셈이다.
일본 전역을 통틀어 최초의 사건. 모두가 탐낼 법한 옆자리에는 이미 그가 지정해둔 가이드가 존재했다. 바란다면 더 능력 좋은 가이드를 붙여주겠다는 매니저의 말에도 요슈아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저기, 가이딩이란 센티넬과 가이드의 정신적 유대에도 영향을 받잖아?'
'음, 그렇죠.'
'그러니까 난 제리가 아니면 안 돼. 다른 가이드한테서 이만큼의 안정감은 어차피 못 느껴.'
과연, 그의 말대로 두 사람의 파장은 완벽하리만치 잘 맞았다. 당장 S급 센티넬만 해도 좋은 관계의 S급 가이드가 아닌 이상 두세 명, 많으면 대여섯 명의 가이드들에게 둘러싸여 가이딩을 받는 판국이었다. 그럼에도 제리는 요슈아를 홀로 모두 감당해내었다. 요슈아가 범람하는 파도라면, 제리는 바닷물 스밀 별이었다. 요슈아가 폭풍이라면…… 제리는 그를 그러안을 하늘이었다. 아무도 두 사람의 파트너십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요슈아의 곁에는 늘 제리가 있었다.
센티넬과 가이드, 그런 관계를 떠나서.
너와 나는 우리이기 때문이라는 것처럼.
우르릉, 지나친 에너지에 반응한 허공이 우레와 같은 고함을 내질렀다. 느릿한 속도로 눈을 깜박인다. 안개가 낀 것만 같아. 시야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네 목소리가 들렸는데. 네가 온 것 같았는데……. 혹여나 자신이 그를 상처 입힐까 봐, 요슈아는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만약 나로 인해 네가 다친다면 나는 영원토록 나를 용서할 수 없을 거야. 언젠가 건네었던 말에 제리는 그런 얘기 하지 마, 짐짓 혼을 내었으나 진심이었다.
제리를 지키기 위해 프라스타나에 들어왔다. 그가 안전한 세계에서 살아가길 바랐다.
그에게 위험이 될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나았다.
부름이 닿았음에도 요슈아에게서 답이 돌아오지 않자, 제리는 입술을 설핏 깨물었다. 이윽고 망설임이 부재하는 발걸음이 이어진다. 삼십 미터, 이십오 미터, 이십 미터. 자칫하다간 요슈아의 호흡 하나로도 몸이 갈기갈기 찢길 텐데. 무모한 아집이었다. 제리……! 누군가 그를 불렀다. 차마 언성을 높이지 못한 속삭임. 곁을 지키던 소장이 손을 들어 그런 염려를 저지했다. 이제부터는 센티넬과 가이드, 두 사람만의 영역이다. 누구도 침범하지 못할 무형의 장막…….
제리는 다치는 일 없이 요슈아에게 도착한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둘을 응시했다. 무엇인가 말하는지 입술을 달싹이던 제리가 이내 요슈아를 끌어안았다. 작은 비명과 탄성이 울려 퍼진다. 폭주 직전, 센티넬이 인식하지 못한 외부적 자극은 촉매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았다. 때문에 센티넬에게 가이드의 존재를 제대로 알린 후 자그마한 스킨십부터 시작하는 일이 일반적이었음에도.
요슈아, 괜찮아. 제리가 단언했다. 요슈아는 스스로에게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손목의 흉터가 그 증거였다. 하루아침에 흘러넘치는 힘을 떠안아 버리는 건 어떤 기분일까. 제리는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느꼈다.
그러나 어느 하루, 자신을 끌어안은 채 허공을 거닐던 요슈아를 떠올린다. 티끌 하나 없이 말간 얼굴. 잘게 떨리는 웃음.
'날씨 좋지, 제리? 즐거운 기분이야……!' 두근, 두근, 두근. 한껏 격앙된 심박음이 선연했다.
상처 입히고 싶지 않은 것은 제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제리는 용기를 내었다.
얇고 부드러운 입술 사이로 운율이 흐른다. 음이 붙여지지 않은 가사는 어떠한 시詩와도 같았다.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한다면, 꼭 노래가 아니어도 돼. 내 언어에 음악을 부여해주는 건 언제나 요슈아 너였으니까. 나의 문장이 너에게 소리가 되어 가 닿을 것을 알았다.
네가 나를 믿는 만큼, 나도 너를 믿을게.
기록되지 않을 사랑이 마침표를 찍으면,
요슈아는 눈을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