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오 드 뚜왈렛
[5.0] 오 드 뚜왈렛

 

포근하게 감싸주는 남자친구의 향은 시트러스와 아로마틱 우디
베이스 노트에 우디나 그린이 강하게 들어가면 멀리서 맡는 것조차 힘들어하는데 기분 좋고 은은하게 즐길 수 있는 향이라서 좋아 손목에 뿌리면 향이 금방 날아가는 게 아쉬워서 시향지에 분사해뒀어

아래로는 받자마자 적었던 시향 후기와 일 년 뒤 같은 향을 맡으며 느꼈던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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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 JOSHUA オードトワレ

刺激を抑えた優しいシトラスの香りに、ウッディ系のアロマティックな要素を加え、さりげなく心地の良いフレグランスを再現。 そばで包み込むような、ヨシュアの香り。

 

DEAR ♡ devils ファブリックスプレー

リーフグリーンにフローラルな要素を交えた爽やかなトップ。 優しく甘い印象の中に、バイオレットやジャスミン、ラベンダーなどがエレガントさを感じさせ るdevilsの香り。

 

향수에 우디 스파이스 그린 노트가 진하게 들어가면 멀리서 맡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울렁이고 헛구역질을 하는 사람이라 요슈아 향 설명을 읽고 많이 걱정했는데, 실제로 맡아보니 우디 향이 가진 중후함보다는 아로마가 가진 편안함과 향기로움이 메인이 되어 다행히도 시향하는 게 고역스럽지 않았어 테마 컬러가 노랑이니까 레몬 향이 날 것 같다고 납작하게 짐작했지만 레몬이나 라임 특유의 톡 쏘는 향은 들어가지 않은 것 같고… 자스민이나 라벤더처럼 남자 향수에 종종 들어가는 꽃향기도 크게 못 느꼈어 스파이스나 민트, 발사믹 계열의 노트도 들어가지 않은 것 같다 생각해 탑 노트에 시트러스가 들어갔기 때문인지 상자를 열기 전과 첫 분사에서는 귤의 새콤한 냄새가 났고 시향지에 뿌리고 몇십 분 지난 후에는 시트러스 20% / 탑 노트가 휘발된 뒤 아로마 80% 정도가 맡아지는 느낌이야

그 애에게선 코튼향 그리고 햇빛 아래 뽀송하게 말린 빨래에서 은은하게 풍기는 섬유유연제 향이 묻어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해석했던 것과는 다르지만 옆에서 포근히 감싸는 듯한 요슈아의 향기라는 공식 설명의 느낌 그대로를 받았기 때문에 여전히 만족하는 중!

 

그리고 데빌즈 향은 플로럴 노트가 들어갔지만 달콤함보다는 상쾌하단 감상이 드는 향. 이쪽은 시트러스 노트가 전혀 들어가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느낌이 날 수 있는지, 어코드가 정말 잘 이루어졌다고 생각해 룸스프레이인 만큼 오 드 뚜왈렛처럼 지속력이 높진 않았지만 그래서 더 무난하게 뿌리고 다닐 수 있겠다 싶었는데… 집에 디퓨저를 두다 보니 사용할 일이 없게 된 것 같아 베드타임 향수가 나온 지금은 이 둘을 섞어서 맡아보고 싶네

Prism
Prism

@xngkgkB

 

 

제리가 요슈아의 저택에서 돌아왔을 때, 제리는 스스로 황제 폐하나 황후며 후궁들이 자신을 찾느라 난리가 나 있으면 어떡하지 싶은 걱정을 뒤늦게 했으나 염려가 무색하게 황궁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정확히는 다른 소동으로 인해 제리의 행방에 대해 신경을 쓸 여가가 없었다는 것이 더 들어맞겠다. 제리가 겸연쩍게 황궁으로 들어서면 하인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마법의 범위에 대해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자가 왔대. 은둔해 있던 저명한 음악가라도 되나? 아니 음악가보다는 '평론'을 하는 쪽에 더 가깝다나봐. 제리는 불가항력적으로 하이델을 떠올렸다. 투르니에 콩쿠르에서 요슈아에게 그의 음악이 백색이어 아무 색도 보이지 않는다고 평했던 노인. 요슈아의 절망을 가장 먼저 발견한. 제리는 조심스럽게 하인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아, 황녀님. ……폐하께서 아침식사 자리에 나오지 않았다며 몹시 염려하셨습니다."
"그렇잖아도… 그에 대해서는 폐하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리려구요. 그나저나, 말씀하시던 것이 있던 듯한데……."
"아, '평론가'에 대해서 말입니까? 방금 입궁하셨습니다. 언질도 없이 들러 황실마마님들께서 모두 놀라워하는 중입니다."

평론가. 기실 안단테에 마력을 조금이라도 가진 음악가는 수두룩했지만―그러므로 요슈아조차 뛰어난 실력이 아니었다면 이 시대에 한 줄조차 긋지 못하고 '그런대로 먹고 사는 음악가' 정도로 남았을 것이었다― 아그네스 투르니에 여신의 가호를 받은 음악이 자아내는 마법의 범위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세간은 음악을 평가한다 하여 이들을 '평론가'라고 불렀는데, 칭명이 있는 것조차 무색하게끔 거의 존재를 내보이지 않는 그들은 그러므로 마법과 음악의 효용을 위하여 안단테 제국에 매우 귀한 존재였다. 투르니에 콩쿠르에 초청받은 심사위원들도 거의 평론가가 되기 위해 다른 길로 음악과 마법을 공부하는 데 매진해 있는 사람들인 것을 보면 말 다 한 것이다.
어째서 하이델,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가 평론가라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제리는 스스로 의문한다. 음악을 듣고 이를 심상으로 표현해내는 기이한 노인. 다만 요슈아를 위로했던 것과는 별개로 하이델이 왜 그런 식으로 요슈아의 음악을 평했는지 음악에 대해 알지 못하는 제리는 차마 짚어낼 수 없었다. 더 솔직하게는, 하이델에게 원망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었으나…….

"그래서 지금은 어디에 있다나요?"

궁금증이 요슈아를 대신하는 원망을 이겼다. 제리가 묻자 하인들은 일제히 알현실 쪽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지금쯤 폐하를 알현하고 계실 것입니다."
"요슈아님을 찾는 듯도 하던데……."

제리는 황궁 한쪽에 마련된 알현실로 가는 백금으로 빛나는 복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해주셔서 고마워요." 그는 몰랐지만 하인들 사이에서 소문 자자한 '아랫사람에게도 지나치리만큼 겸손한 막내 황녀'답게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알현실로 향하는 복도를 걸어가던 제리는 마침 그곳에서 나오던 황제와 하이델을 마주쳤다. 제리는 얼른 고개를 숙여 인사를 대신했다. "폐하, 오전에는 잠시 황궁 바깥을 둘러보고 왔습니다. 윤허 없이 출궁한 점을 용서해주시옵소서."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면 황제는 자비로운 목소리로 "고개를 들거라. 정찬에 참석하지 않아 걱정하였단다." 하며 막내딸의 어깨를 쓰다듬는다. 그러는 동안 노인은 둘의 옆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지킨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어쨌든 황제와 외부인의 앞이었으므로 제리는 요슈아에 대해 당장 묻고 싶은 것을 꾹 참고 격식 차린 대화를 마쳤다. 황제는 하이델을 돌아보며 "이리 서 계시도록 기다리게 하여 송구합니다." 궁내에서 거의 보지 못한 공손한 태도로 노인을 대했다. 하이델은 나직한 목소리로 "괜찮습니다." 말하더니 지팡이로 툭 다시 바닥을 짚었다. 제리가 황제의 앞에서 노인을 슬그머니 눈짓하자 황제가 그제야 하이델에 대해 소개했다.

 

"아, 이분은 하이델님. 이국에서 온 '평론가'시란다. 이번 투르니에 콩쿠르에서 심사를 맡기도 하셨지."

"그렇군요……." 이미 아는 내용이었지만 제리는 인내심 있게 그 말을 듣는다.

"요슈, …궁정의 대음악가를 찾아오셨으나 너도 알다시피 헛걸음이 되셨어."

"헛걸음까진 아니지요." 하이델이 황제의 말에 인자하게 웃었다. "이리 황녀님도 뵈옵고."

 

제리는 그 말이 인사를 요하는 것인 줄로 알고 눈 보이지 않을 것이나 일단 고개를 꾸벅 숙였다. 하이델은 제리가 인사한 것이 마치 보이는 것처럼 한 손을 허공에 두고 달래는 듯이 손을 낮게 휘적거렸다. "황녀님." 노인이 말했다.

 

"요슈아님을 만나고 오셨습니까?"

 

말하지 않았는데 그것을 어떻게. 제리의 눈이 커졌다. "맞나보군요." 제리가 말이 없자 하이델이 미미하게 웃었다. 제리는 불현듯 하얀 하프시코드를 편안하게 연주하며 지금 작곡한 곡이야. 말하던 요슈아를 떠올렸다. 노인이 이어 말한다. "황녀님께 하얀 음계가 묻어 있어 알았습니다. 그분의 연주를 듣고 오셨군요." 더욱이 놀란 황제는 옆에서 "그게 정말이냐, 딸아." 물을 뿐이다. 제리는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얀 음계. 제리는 그제야 침착하게 하이델에게 물을 수 있었다.

 

"요슈아에게… 그의 음악에 아무 색도 없는 듯이 보인다고 하셨다 들었어요."

"네. 그렇습니다."

"그가 궁정 음악가의 자리에서 내려온 것이 그 영향인 듯하던데……."

"아."

 

하이델의 표정에 미묘한 변화가 생긴다. 제리는 눈을 들어 깜빡이며 그의 얼굴을 살폈다. 노인이 다음으로 낸 말은 그러나 전혀 별개의 것처럼 들렸다.

 

"혹 황녀님, 그가 황녀님께 헌정하는 곡을 연주하는 것을 듣고 오셨습니까?"

"……네?"

 

지금 작곡한 곡이야. 울음 탓에 발간 눈가로 요슈아는 그렇게만 말했을 뿐 제게 헌정하는 곡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요슈아가 바치는 곡이라니, 오로지 한 사람만을 위해 바치는 곡이 제게 있다니, 그럴 수가! 제리는 도리질을 치며 "아뇨, 아닙니다……. 그냥 연주를 듣고 왔어요," 답했다. 하이델은 고개를 기울이며 지팡이를 매만졌다.

 

"요슈아님이 제 말에 어느 정도 타격을 입을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허한 자신 음악에만 매달리기보다는 그분께서는 언젠가 그 깨달음에 닿아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스스로가 공허한 것을 깨닫고 그 다음부터 채울 수 있으니까요. 빈 채로 있다면 사람은 결국 망가질 뿐입니다. 하여 저는 요슈아님의 연주를 듣고 아름답지만 껍데기뿐이어 어느 것으로든 더럽혀질 수 있는 백색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안에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것이지요."

"……."

"황녀님, 이것을 보십시오."

 

하이델은 소매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삼각기둥 모양의 거울 혹은 유리와 비슷하게 생긴 것이었다. 제리에게 아주 주려는 듯이 그가 그 물건을 든 채로 있기에 제리는 망설이다 그것을 건네받았다. "이게 뭔가요?" 묻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노인은 인자하고 나직하게 웃었다.

 

"일종의 평론 도구입니다. 제가 평가하는 음악의 색은 이것으로부터 비롯된답니다. 저는 물론 이것 없이도 음악의 색을 볼 수 있고 감지할 수 있으나, 황녀님은 그러지 못한다 들었으므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제게요……?"

"황녀님, 요슈아님을 사랑하시지요."

 

이 말에 옆에서 황제가 헛기침을 했다. 어깨를 움찔 떨고 노인과 아버지의 눈치를 보던 제리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황제의 기침 소리는 더 커졌다. 노인의 미소는 더 짙어졌다.

 

"요슈아님께 한 번 더 연주를 해 달라고 청해보시지요. 제가 보기에, 요슈아님의 공허를 채울 방도는 황녀님께 달려 있는 모양입니다."

하이델은 그 말을 남기고 기침을 하던 황제와 제리에게 꾸벅 허리를 숙인 뒤 지팡이를 짚고 유유히 황궁을 떠나갔다. 제리는 그 자리에 남아 노인이 들려준 작은 삼각의 '평론 도구'를 들고서 이리저리 돌려보며 의아해할 뿐이다.

 

 

일주일 뒤 요슈아가 입궁을 요청했다. 황제는 어쩐지 조금 불퉁한 태도로 그의 입궁을 윤허했다. 요슈아는 황제의 영 마뜩찮은 얼굴을 보고서 의아해하다가도 허리 숙여 깊이 사죄의 인사를 했다. 요는 한사코 내려두겠다 했던 궁정 대음악가의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황제는 그 청에 기뻐했으나 그것도 잠시, 마침 알현실에 제리가 들어왔을 때에 자네 막내 황녀를 어찌 생각하나? 하는 질문을 던져 두 사람을 당황케 했다. 아바마마! 폐하, 가 아니라 어릴 때 쓰던 호칭으로 제리가 황급히 아버지를 부르자 황제는 알 수 없는 얼굴로 결국 웃으며 볼일이 끝났으면 가 보라, 찬바람 쌩쌩 부는 답을 내렸다.
요슈아는 황궁을 나가기 전 익숙하게 제리의 황녀궁에 들렀다. 일전의 저택에서의 대화 이후로 처음 마주하는 것이었다. 요슈아는 자연스럽게 행동하려 했으나 제리가 어쩐지 서먹하고 어색하게 대하는 바람에 둘의 거리는 다소 애매해졌다. 제리는 쭈뼛쭈뼛 머뭇거리다 요슈아에게 묻는다.

"오늘도 연주해줄 수 있어?"
"그럼, 당연하지."

요슈아는 요슈아대로 그때 한 입맞춤이 역시 문제였나, 생각하다가 괜히 쑥스러워져 얼른 들고 온 악기 케이스에서 바이올린을 꺼내들었다. 그가 활과 현의 상태를 보고 잠시 조율을 하느라 선 채로 머물러 있으면 제리는 품에서 슬쩍 하이델이 주었던 물건을 꺼내본다. 손바닥보다 더 작은 유리 삼각기둥. 요슈아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연주를 시작한다.

바이올린 선율이 부드럽게 흐른다.
제리는 그 흐름에 여느 때와 같이 홀린 듯 눈을 감았다가, 아차 싶어 다시 눈을 떴다. 요슈아 역시 선율에 몸을 맡기고 활을 현 위로 미끄러뜨리며 연주하고 있었다. 노래의 마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제리는 그 연주로부터 무언가가 흘러나오고 있다는 사실만은 느낄 수 있었다. 아련하고 따뜻한 곡조, 제리는 손을 뻗어 요슈아 쪽으로 하이델이 주었던 삼각기둥을 조심스럽게 가져다댔다.
그 순간 제리는 기둥 한 면의 유리 너머로 요슈아에게서 흰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본다. 유리를 투과한 환한 빛은 이윽고 다른 마주보는 면의 유리에 다시 투과되더니 온통 어지러울 만큼 달콤한 천연색의 환상으로 변한다. 거기에는 제리가 있다. 웃음 짓는 제리, 즐겁게 이야기하는 제리, 소파에 앉은 요슈아의 앞에 무릎 꿇듯 바닥에 앉은 제리, 눈물을 흘리는 제리, 그리고 흰 빛이 요슈아의 손으로 변하더니 울고 있는 제리의 모습에 뻗친다. 뺨을 어루만져 닦아주고 이내 끌어당기며 입을 맞춘다. 그리고 자신의 귓가에 속삭이는 소리가 있다. 제리는 너무 놀라 물건을 떨어뜨렸다.

"제리?"

음악이 끊겼다.

"제리, 왜 그래?"
"너, 너 방금 나한테……"
"응?"
"사,"

제리는 귀 끝까지 새빨개진 채 얼굴을 감쌌다.

"사랑한다고……."
"……."

 

요슈아는 고개를 내리고 한쪽 무릎을 꿇어 앉으며 제리가 떨어뜨린 것을 보았다. 제리는 이름을 몰랐으나 요슈아는 이미 음악과 마도에 대한 책에서 본 적이 있는 물건이었다. 프리즘. '막 평론을 시작한 평론가'들이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음악의 빛을 투과하여 그 연주가 어떤 힘을 가지고 어떤 마음으로 연주하고 있는 것인지 보여줄 수 있는 마법 도구였다. 저런 걸 제리가 어떻게? 어디서? 영문을 몰랐던 요슈아의 얼굴도 천천히 붉어지기 시작했다. "제, 제리,"
미끄러뜨린 활, 현과 활의 줄이 마찰하며 내는 음, 제리에게 들려주었던 연주는 모두 같은 마음을 담고 있었다. 단 하나의 고백이다.

제리가 손가락 사이로 눈을 들었다. "요슈아," 저택에서 울며 서로를 보았던 그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그러나 이번에는 요슈아가 제리의 앞에 무릎을 굽힌 채 앉아 있었다. 낮은 자세로 겸허하게 너를 올려다본다. 꼭 고해할 때의 자세 같다.

할 수 있는 말이야 많았다. 이걸 어디서 구했어, 혹시 평론가를 만났다면 하이델, 그 사람이야? 너는 이걸 보고 무슨 생각을 했어? 나는……. 그러나 수많은 물음 중에서 요슈아는 하나의 문장을 움켜쥐기로 했다.

 

"제리."

 

눈이 마주친다. 완연한 가을의 하늘이 푸르다. 흰 대리석으로 된 궁의 바닥에까지 파랗게 하늘이 비친다. 제리는 손을 느리게 미끄러지듯 무릎 위로 내렸다. 요슈아가 말했다. "저번에…… 대답을 제대로 안 한 것 같아서." 네가 좋아. 음악이 없어도. 네게서 음악이 영영 사라져버린대도. 내 옆에 남는 누군가가 되면 안 돼? 요슈아는 잊을 수 없는 말마디를 되새겨본다. 그리고 백색으로 환하게 웃으며 결론을 내렸다.

 

"사랑해."

 

내 옆에 남는 누군가가 되면 안 돼? 그 말에 답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영영 그럴 것이라고. 나는 네 오른편에 선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게 안 된다면 왼편의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떤 공허라도 사실은 함께해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영원히 빈 껍데기여도, 아무 빛도 없어도, 설령 내가 음악으로만 남는다고 해도.

제리가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이번에는 서러움이 아닌 벅찬 환희 탓이었다. 요슈아도 그것을 알아서 그는 무릎에 놓인 제리의 손을 덮고서 처음처럼, 조심스럽게, 턱을 올리고 한 손으로는 제리의 뺨을 감싸 당긴다. 제리는 기꺼이 당겨진다. 아주 가깝게.

환한 키스. 더 이상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너를 사랑했다.

 

 

안단테의 막내 황녀와 궁정의 대음악가의 국혼은 그 다음 해 봄에 성대하게 열렸다. 안단테의 악사들이 사랑, 사랑을 노래하는 가운데 제리와 요슈아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부가 된다. 안단테의 모든 음악가들이 노래했다.

 

수도원의 골방에는 바다를 향한 작은 창문이 하나 있고 녹슨 촛불이 있고 그 촛불 아래엔 내 불멸의 아내인 아그네스가 있네

나의 짧은 생은 그녀에게로 망명해가는 음악일 뿐이어서……¹ 박정대, <안녕하세요 투르니에氏> 中, 시집 『아무르 기타』 수록.

백색 음악
백색 음악

@xngkgkB

내 음악에는 색이 없대.

그날 날이 몹시 맑았다. 제리가 복기하기를, 아무 이변도 없는 날이었다. 물론 제리는 음악가가 아니었으므로 안단테 제국의 변화에 대해 아무것도 감지할 수 없었으나 그저 직감 상으로는 그러했다. 요슈아가 위대한 궁정 최고 음악가의 지위에서 물러나겠노라 일종의 은퇴 선언 혹은 사직서를 내어둔 것이 자신을 찾아온 바로 그날이었음을 그래서 제리는 매우 믿기 어려웠다. 내 음악에는 색이 없대, 제리. 그는 안단테의 막내 황녀에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친우처럼 이름을 부른다. 실제로 요슈아는 황궁 내 제리의 유일한 친구이기도 했다.
한참동안 자신의 앞에서 고개를 숙였던 궁정 최고 음악가의 표정을 제리는 보지 못했다. 그 이전에 내 음악에는 색이 없대, 비유인지 아닌지 모를 전해들은 말을 발음하는 그 뜻도 알지 못했다. 감히 누가, 도대체 어떻게, 그에게 음악에 대해 논할 수 있단 말인가. 아그네스¹ 박정대의 시집 『아무르 기타』 에 수록된 시 <안녕하세요, 투르니에氏>에 등장하는 이름. 성 역시 출처를 밝히기 위해 붙인 것. 영감을 받은 시의 구절을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나의 짧은 生은 그녀에게로 망명해 가는 음악일 뿐이어서 // 수도원의 골방에는 바다를 향한 작은 창문이 하나 있고 녹슨 촛불이 있고 그 촛불 아래엔 내 불멸의 아내인 아그네스가 있네' 투르니에가 음악이라는 것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신계에서 인간계로 음악을 가지고 내려와 인간에게 주었다고 전해져 모든 악사가 신의 권능을 빌려 행사할 수 있는 안단테 제국에서, 몇 세기를 건너 가장 뛰어난 혹은 위대한 음악가로 꼽히는 요슈아에게. 안단테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거대한 마법을 펼칠 수 있는 명실상부 안단테의 가장 높은 데 있는 음악가, 단 한 명도 가보지 못한 경지에 올라 있는 그에게.
어지러운 이명 속에서 요슈아가 고개를 들었다. 대답해줘. 이 다음에 어떤 말이 나올지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제리는 입을 뻐끔거렸으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침내 요슈아가 물었다.

나는 음악 없이는 쓸모없는 사람일까?
 
나, 는, 음악, 없이, 쓸모없는, 사람……. 제리는 요슈아의 말을 어절마다 득득 긁듯 마디마디 별개의 말처럼 발음해본다. 쓸모없는 사람. 제리는 스스로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잦았다. 마지막 후궁인 어머니, 막내 황녀. 애매한 지위에 있음에 적당하고 모호한 사랑을 받고 그럼에도 큰 부족함 없이 자랐다, 때때로 스스로가 무언가를 소모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은 아닌가 생각하며. 거리의 악사들과 궁정의 음악가들, 그리고 요슈아를 볼 때마다 그 결핍에 대한 실감은 더욱 커졌으므로 제리는 초조감을 갖지 않기 위해 무척 노력해야만 했다. 한데 그 순간 요슈아는 가장 초라한 데 있는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네가 어떻게 쓸모없는 사람이야. 요슈아. 제리는 그렇게 말했어야 했다. 지금에 와서도 후회하는 일이다. 자신이 감히 그를 재단할 수 없으리라는 괜한 판단으로 그를 상처 입혔다는 원망이 갈 데 없이 제 속을 긁어냈다. 그리고 언젠가의 기억이 있다. 푸르른 황궁의 정원, 여름의 녹음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시야에 잦게 잡힐 때였다. 열넷, 변성기가 막 오기 시작한 목소리로 요슈아가 나지막이 말한다. 황녀님, 제리는 바이올린 현을 만지고 있는 요슈아의 손에서 그 시선을 들었다.

그렇게 보시면 조율하는 데 집중이 잘 안 되어요.
……바…
바?
……반말해도 된다고 했잖아.

그 시절에도 이 아름다운 정원에는 오롯이 자신과 요슈아뿐이었건만,

제리.
……응.
내 연주가 그만큼 좋아?
가장 빛나.
그래?
모든 궁정 악사들, 음악가들, 거리의 사람들이 내는 것까지 합해서.
응.
정말로 가장 좋아. 여러 빛을 내는 것 같아. 온통 황홀해.
 
그렇게 말했던 때 있었건만.
제리는 떠나가던 스물셋의 요슈아의 뒷모습을 떠올린다. 푸르른 십대의 여름에서 서늘한 지금의 가을로 돌아오는 것이다.
너는 음악 없이는 쓸모없는 사람일까. 오래 전부터 전해져 오는 신화가 있다. 제리는 이카루스라는 이름의 날개를 단 신화 속의 인물을 생각한다. 이카루스는 오만으로 인해 공중에서 날개를 잃은 채로 추락하였으나 요슈아와 그가 닮은 점은 오로지 빛나는 높은 데 있었다는 점이었다. 음악과 요슈아는 떼어놓을 수 없는 이름이었다. 제리조차도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가 했던 질문에 쉽게 답을 하지 못하고 제리는 그 순간 머뭇거렸다. 요슈아는 제리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고서 한 번 풀썩 웃어버리고, 사직서를 낸 것도 모자라 그 다음날에는 정말로 황제의 앞에서 일방적으로 은퇴를 선언하고 물러가버렸다. 제리가 모르는 데서 그는 스스로 추락해버린 것이다.
왜? 제리는 더듬어 복기해본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요슈아는 그날 이후 더 이상 황궁에 나타나지 않고 따라서 제리와 마주칠 일도 요원했다. 그리고 제리는 그를 구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처절하리만치 손을 뻗고 싶다고 그것은 하나의 결심이었다.
황궁 안에서 엄선된 음악가들이 펼치고 있을 바람에 실려 오는 음악은 요슈아의 것처럼 반짝이지 않는다. 제리는 정원의 의자에서 일어나 발을 옮긴다. 고개를 돌리면, 다시 숨 막히는 황궁 안이 시야에 가득 들어찬다. 여기에 음악은 어디 있나. 제리는 생각한다. 나는 이제 네 것만이 음악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게되었는데.


거리의 초보 악사들은 아그네스 투르니에를 칭송하며 부른다, '나의 짧은 생은 그에게로 망명해 가는 음악일 뿐이요, 수도원의 골방에는 바다를 향한 작은 창문이 하나 있고 녹슨 촛불이 있고 그 촛불 아래에 내 불멸의 아내인 아그네스가 있네.' 나의 짧은 생은 그에게로 망명해 가는 음악일 뿐이요. 때로 제리는 그 오래된 가사가 신을 향한 찬미뿐만 아니라 마치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는 사랑 같기도 하다 생각했다. 사랑.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다. 감히 시기할 수도 없는 경외를 두르고 흑백의 소년은 황실에 나타났다. 단 한 명도 가보지 못한 경지에 그가 올라 있었다. 고작 여섯 살에 작곡한 소나타로 불구였던 사람을 완벽하게 치유하고, 열한 살에는 나라의 모든 악기에 통달했으며, 열셋에는 최연소 궁정 음악가로 임명되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안단테에서 가장 강력하고 거대한 마법을 펼칠 수 있는, 명실상부 안단테의 가장 높은 데 있는 음악가. 타고나기를 음악에 재능이 없이 태어났던 황실 마지막 후궁의 딸 황녀 제리가 그를 보고 경탄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또래가 없는 황궁 안에서 유일하게 생긴 어린 동갑내기 둘은 한쪽이 천재이고 한쪽은 재능이 없다는 사실과 무관하게 금세 친해졌다.
명령이 아니면 굳이 요슈아는 음악을 '낭비'하지 않았으나 제리의 앞에서는 달랐다. 제리는 명령하는 법을 잘 몰랐고, 요슈아는 황녀임에도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어 제리의 곁에서 가장 편안해했다. 제리 역시 그것은 마찬가지여서, 궁정에 있는 수많은 이들 중 요슈아를 몹시 자주 곁에 두는 것은 그가 황궁에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황실 사람이라면 웬만하면 아는 사실이 되었다. 어쩌면 두 사람이 서로를 연모할지도 모른다 수군대던 소문 역시 사실에 가까웠을 수도 있겠다. 제리는 그의 음악뿐만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도 빛나는 사람이라 믿었으므로. 그것은 찬미와도 비슷했고 사랑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황실 내에 소문이 돌면 그를 잠재워야겠다는 걱정 이전에 제리는 한편으로 요슈아에게서 자신의 마음에 대한 답을 들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고 기대하기도 했다. 미약하고 조심스러운 나의 첫사랑. 답을 들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요슈아가 그렇게 휑하니 황실에서 나가버리지만 않았다면.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그를 한순간에 '쓸모없는 사람'으로 자각하게끔 망가뜨렸는가.
제리는 그날 저녁 황실의 구성원들이 모두 모인 만찬 자리에서 조금 이르게 자리를 떴다. 저녁식사 와중에도 요슈아의 이야기가 테이블 위로 올랐기 때문이었다. 황후의 입에서 나온 그 애, 왜 그만뒀대요? 하는 말에 아버지인 황제가 묵직하게 고개를 흔들면 그나마 제리와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둘째 황자와 황녀가 제리를 흘긋 돌아보는 것이다. 너 뭐 아는 거 없어? 그 애랑 친했잖아. 동생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황태자가 그렇게 물으면 황제를 비롯한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아 있던 모두의 시선이 제리에게로 꽂혔다. 황후가 짐짓 관심 없는 척 립 스테이크의 살을 발라내며 말했다.
 
여태 폐하께서 궁정 음악가와 황녀 저하의 추문을 듣고도 묵과하셨던 것은 혹여 황실과의 연을 위해 그런 것이 아니었던가요? 그만한 재능이며 힘이 또 없었지요.
…….
아니면 폐하, 요슈아, 그 자만큼이나 기능을 하는 음악가가 현 안단테에 있단 말입니까?
황후마마,
그래, 없지.
 
황제가 입을 열었다. 앞에 놓인 스테이크는 아직 반도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 제리는 식욕을 완전히 잃었다. 시선을 떨어뜨리면 반질반질한 접시와 테이블 위로 희미하게 제리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황제는 몹시 진중하게 말을 이었다.
 
가능하다면 요슈아가 황실과 어떤 식으로든 연을 맺으면 좋으리라고 판단했건만…… 갑자기 궁정에 나오는 것이며 음악을 그만두겠다고까지 할 줄은 몰랐어.
음악을 그만두겠다고 했다구요?
 
제리가 황제의 말에 놀라 식기를 떨어뜨리며 말을 잘랐다. 예의를 지키지 못 해? 황태자가 황제와 황후를 대신해 제리를 꾸짖었다. 제리는 금방 고개를 다시 떨어뜨렸으나 바들바들 떨리는 손은 감추지 못했다. 황제는 괜찮다는 뜻으로 태자와 제리를 향해 한 번 손짓해 보이더니 말을 이어갔다.

그래, 갑자기 모든 걸 그만두겠다고 말하니 나 역시 당황스럽더구나. 재고해 보라 몇 번을 말했지만 결국 다들 아는 대로 뜨고 말았다.
……네.
이변이라면 요슈아가 참가한 아그네스 투르니에 여신의 콩쿠르가 그 직전이었다는 것인데……, 거기에서 실수를 하거나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들은 바는 없지만, 아무래도 그때에 그를 그렇게 둔 원인이 있지 않나 짐작할 뿐이다.
…….
그러고 보니 황궁에 있던 그 애의 짐을 하인들이 뺐는지 모르겠구나. 악기들이 워낙에 자잘하게 많을진대.
 
아버지―황제는 침묵하며 골똘한 얼굴이었다. 그 스스로도 납득이 되지 않는 궁정의 나아가 시대의 대 음악가를 잃을 수밖에 없던 이유를 찾다가 포기한 모양이었으므로, 제리는 마지막 말에 다시 고개를 들었다.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다.

폐, 폐하. ……제가 요슈아의 짐을 정리하면 안 될까요?
아무리 그 애와 막역했다 한들 황녀 신분에 체통 없이 무슨 하인들이나 하는 일을 하겠다고 그러니.

이번에는 언니인 둘째 황녀가 눈썹을 늘어뜨렸다. 핀잔을 줄 셈은 아니었고 오히려 제리를 염려하는 투였으나 제리는 다시 의기소침해졌다. 그런 건 그냥 맡기면 된단다. 어쨌든 안단테엔 여전히 그 애 말고도 위대한 음악가가 차고 넘치잖니. 안 그래요, 아바마마? 양쪽을 달래듯 하는 말에 황제의 진중하던 얼굴도 다소 누그러졌다. 제리는 자신이 배다른 오라비인 근엄한 황태자와도 이렇듯 사람을 어르고 달래는 데 능숙한 부드러운 둘째 황녀와도 닮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상념이 이어질 뻔 했으나 이내 황제의 그래, 네가 할 일이 아니다. 결론을 내리는 말 뒤로 금방 다른 화제가 올라온다. 제리는 입맛이 없어져 식기를 내려두고 결례에 대해 용서를 구하며 먼저 자리를 떴다.
다음 날 새벽 제리는 저녁을 제대로 챙기지 않아 이르게 깼다. 황녀궁 안의 요리사에게 무엇이라도 가져다 달라고 겸연쩍게 요청하려 침상에서 일어났다가 몇몇 하인들이 열을 지어 포장한 악기 따위를 가져가 황궁 밖으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 광장에서는 이제 시시각각 계절 변해가는 서느런 아침을 알리며 일찍이 깬 아이들이 요슈아가 어릴 적 작곡한 노래를 불렀다. 벗이여 취생몽사 몽생취사라는 말을 이제야 알았는데 그대는 먼저 떠났는가.² 곽은영 <추도―모리스 호텔 19> 中, 시집 『관목들』 수록. 노랫말을 들으면서 어린아이들이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쓸쓸한 곡이라 생각했으나 먼저 떠났는가, 후렴의 가사가 화음으로 이어질 때에 번득 결심을 했다. 그를 구하고 싶다는 결심을 다시. 자신이 모르는 데에서 추락해버린 요슈아에게 처절하리만치 손을 뻗고 싶다고.
벗이여 그대는 먼저 떠났는가, 떠났는가…. 악기를 이고 지고 가져가는 하인들의 뒤를 노래가 좇았다. 사실은 그 반대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제리는 주린 배도 잊고 숄을 걸친 뒤 가벼운 원피스 차림으로 곧바로 달려 나갔다. 그들 뒤를 쫓기 위해서였다.


음악가들의 저택은 대개 그들이 작곡한 '결계의 음악'으로 둘러져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보호의 목적이기도 했지만 곧잘 '보이지 않는 것'이 또 다른 계급적 위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보통은 후자의 이유로 궁정에 든 음악가들은 더욱이 겹겹의 결계를 두른 저택에 살았다. 요슈아의 저택 역시 이에 반하는 예는 아니었기 때문에, 제리가 따라간 하인들은 보이지 않는 결계 앞에 멈춰 섰다. 동이 막 트고 있는 중이었다.
하인들 중에서도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선두에 선 하급 음악가가 하모니카로 간단히 몇 음계를 부르면 흰 나이트가운을 걸친 채인 요슈아가 나온다. 피로한 낯을 보니 잠들었다 나온 것 같았다. 제리는 요슈아를 보고서 하인들의 뒤로 바짝 붙어 그에게 인사를 건네려다가 자신의 앞에서와 달리 잔뜩 찌푸린 신경질적인 낯을 보고서 손을 멈추었다. "이미 황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을 텐데." 요슈아가 잠긴 목소리를 냈다. 선두의 하인은 고개를 꾸벅 숙인다.

"해당 사안은 폐하께서 정식으로 윤허하셨습니다. 저희는 궁정 방에 맡긴 요슈아님의 악기들을 가져다 드리러 온 것입니다."
"……그런가."
"언제든 돌아오면 반길 테니 언질을 달라는 말도 함께 하셨으니……"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요슈아가 단박에 그의 말을 끊고 고개를 저었다. 단호한 기색에 제리는 요슈아로부터 뒤로 물러날 뻔 했던 자신 발걸음을 도로 세우기 위해 노력한다. "놓고 가도록 해." 요슈아는 피로한 스스로의 눈두덩을 문지르며 저택의 결계를 해제하고 문을 열었다 비로소 온전히 저택이 보였다.
그러고 보면 요슈아의 거처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제리는 줄지은 하인의 뒤에 서서 황궁 정원에서 연주를 들려주던 다정한 요슈아를 떠올렸다. 저택은 커다랬으나 그만큼 황량했다. 관리가 되는 것 같긴 했으나 그뿐, 생활감이라곤 없는 쓸쓸한 곳. 취생몽사 몽생취사라는 말을 이제야 알았는데 그대는 먼저 떠났는가. 소위 말한다면 그런 노래가 흘러나올 것만 같은 유령 저택 같은 느낌이었다. 나이트가운을 입은 채로 등을 돌려 걸어가는 요슈아. 악기를 들고 휘적휘적 저택 안쪽으로 들어서는 이들을 따라 제리도 걸음을 옮겼다. 자신이 알고 있던 요슈아는 일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거기에 있었다. 요슈아는 하인들이 악기를 들고 집 안을 활보하든 말든 그저 무던하고 싸늘한 낯으로 홀의 소파에 앉았다가, 하인들의 뒤를 따라 들어온 제리를 보고서 잠시 망연한 얼굴을 했다. 제리는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입을 어물거렸다가, "안녕, 요슈아." 그런 맹한 인사나 건넬 뿐이다.

"황녀님, 아니, ……제리, 네가 여기 왜."
"이들을 따라왔어."
 
제리가 조금 머뭇거리다 덧붙였다. "하인들이 날 숨겨준 것은 아니고, …내가 무작정 따라온 거니까 화를 낼 거라면 내게 화내도… 괜찮아." 그 말에 아연했던 요슈아의 낯은 역시 제리처럼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 줄을 몰라 멍청해졌다가, 그만 고개를 떨어뜨리고 마는 것이다.

"내가 너한테 어떻게 화를 내. ……잘 왔어."

그의 새벽 달빛 닮은 머리칼이 요슈아가 고개를 숙인 대로 앞으로 쏠리면 제리는 조심스럽게 그의 앞으로 다가가 쪼그려 앉았다. 요슈아의 얼굴을 마주하기 위해서였다. 아래에서 빼꼼 위를 올려다보면 시선이 겨우 마주친다. 요슈아가 못 당하겠다는 듯 짧게 웃었다가 한숨을 뱉었다. "이럴 거면 언젠가 제대로 초대를 해 줄걸 그랬어." 요슈아의 말에 제리가 그제야 안도한 것처럼 따라 웃는다. 요슈아의 웃음을 봤기 때문일 테다.

"이런 데서 혼자 지내는 거야?"
"……궁정에서 지내지 않을 때는."
"부모님은?"
"수도에 안 계셔. 사실상 스승님이 내 재능을 발견한 순간부터 떨어져 있었으니 남에 가깝지. 아… 그런 표정 짓지 마. 내겐 하나도 슬픈 얘기 아니니까." 요슈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 말대로 제리는 남에 가깝지, 라는 말에 눈을 서글프게 내리깔았다가 요슈아의 말에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요슈아."
 
제리는 그 순간에 물었다. 유령 같은 저택 안 홀에서, 카펫 위로 쪼그려 앉아 무릎을 둘러 안은 채로. 새벽을 닮은 청년, 여전한 첫사랑의 낯을 올려다보며.

"왜…… 떠났어?"
"……."
"그 말은 무슨 뜻이었어?"
 
내 음악에는 색이 없대.
제리는 말하고 싶었다. 내가 말한 네 음악 빛난다는 말은 네게 닿지 않았어? 나는 네 음악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거였어? 나는 네 단 하나의 청중이 되고 싶었고 네 피아노 곁에 앉아 내내 눈을 감고서 몸을 나직하게 흔드는 관객이 되고 싶었는데……. 그러나 요슈아의 앞에서 그 모든 말은 차마 나오지 못하고 허물어졌다. 요슈아가 몹시 괴로운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요슈아는 손을 들어 낯을 마른세수하며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다 어렵게 입을 떼었다.

"하이델."
"……?"
"한 청중이 있었어, 제리."

하이델. 모르는 이름을 뱉은 그가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그네스 투르니에 여신의 이름을 딴 투르니에 콩쿠르는 5년에 한 번 가을 중에 열린다. 여름이 다 가고 바람이 그 온도를 달리할 때 열리는 콩쿠르의 개최 장소는 매번 바뀌었다. 안단테 제국의 어디에도 음악이 닿지 않는 곳은 없도록 해야 한다는, 여신의 이름과 같은 이름을 가졌던 안단테의 초대 황제 아그네스의 뜻을 받들기 위함이다. 요슈아는 열일곱에 이미 수도 근방에서 열렸던 투르니에 콩쿠르에서 압도적인 성적으로 대상을 받은 바 있었다. 이번은 그가 성년인 때 처음으로 참가하게 되는 콩쿠르인 만큼 개최 장소가 국경 근처의 오지에 있는 작은 극장이었음에도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참가자들 모두에게 본인의 역량으로 구현해낸 결계를 치는 것은 자유였기 때문에, 요슈아는 바이올린 활을 들어 가벼운 음계만을 연주하여 얇은 막을 두르고 무대 뒤를 누볐다. 한 번도 오지 않은 연주 장소를 먼저 익숙한 환경으로 만들려는 연유였다. 참가자며 심사위원이며 일찍부터 줄을 선 관객들, 모두가 저녁식사를 하러 간 시간이라 무대 뒤에는 아무도 없으리라 여겼는데 보이는 인영이 있었다. 요슈아는 백발 성하여 희고 체구 작은 노인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러고 보면 이번 심사위원 중에는 이국에서 온 전설적인 음악가가 있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 이미 눈이 멀었으나 귀만큼은 그토록 정확한, 그리고 모든 참가자들에게 독특한 심사평을 내어놓는 것으로 유명하다는 참가자들의 얘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했던 것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누구십니까?

요슈아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그제야 노인이 몸을 느리게 돌렸다. 눈을 감고 있으니 제 모습 보일 리 없었다. 요슈아는 문득 자신을 마주하고도 '음악의 대가 요슈아'로서 저를 대하지 않는 이를 제리를 제외하고 처음 본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노인은 차분하고 기이한 태도로 일관했다.

심사위원으로 초빙된 하이델이라고 하네. 그대는 누군가?
……요슈아입니다.
아. 자네가 그.
 
그럼 그렇지, 라는 생각은 익숙함에서 비롯된 오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이델의 눈 감은 낯이 아는 이름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요슈아는 방금 느꼈던 '자신을 모르는 이의 여상한 태도'가 그에게서 사라질 줄로 알았다. 노인은 자네의 소문이야 많이 들었네. 라 말한 다음, 의외의 대사를 읊는다.

그대의 음악이 특별히 기대되지는 않지만, 그 빛은 어떨지 궁금하군.
……예?
심사위원이라면 더욱이 누군가를 특별한 대우로 바라보지 않아야 하지 않겠나. 후자는 그저 궁금증일세.
예, …한데 그, '빛'이라 하심은.
그대는 이해하지 못할 걸세.

이해하지 못할 걸세. 자신이 음악에 관해 무언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말한 이도 요슈아에게는 처음이었다. 오기보다는 묵음의 욕망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 음악이 요슈아의 전부였으므로 그랬다. 하이델은 다시 몸을 돌려 지팡이로 바닥을 짚어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인사처럼 말했다. 나중에 봅세. 궁금증이야 자연히 채워질 터이니.
그날 요슈아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기실 자신의 음악을 칭송하는 이들만이 황궁이며 뭇 안단테에 가득했건만, 심지어는 자신을 부러 격상하거나 경외하지 않고 벗으로 곁에 두는 제리마저도 그러했으나 이 노인은 다르다. 어쩌면 요슈아 자신의 음악이 '어떤 것'인지 혹은 어떤 것에서 '비롯되었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그렇다면 요슈아는 그저 천재 음악가로서만 남았던―요슈아는 이를 '그쳤던'이라고 표현하고 싶었다― 공허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자신의 음악이 음악 아닌 무언가로 승화하여 정의될 수 있다면…….
그리고 다음날이 밝았다. 투르니에 콩쿠르가 시작되는 것이다. 요슈아의 차례는 피날레가 예정되듯 맨 마지막 순서로 밀렸다. 요슈아는 길어지는 콩쿠르 가운데 심사가 이루어지는 위원석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그저 그런 아마추어들의 연주들도 하이델은 몹시 집중하여 듣고 '자네의 음악에는 한 곳으로 뻗어나가는 길이 있네.', '작곡 자체에는 미숙한 면이 있지만 곧고 뜨거운 불꽃 흔들리는 모습이 보이는군.' 따위의 심상을 말하는 첨언도 잊지 않았다. 요슈아는 어느 때보다 긴장과 기대가 뒤섞인 감정으로 노인을 보다 제 손을 주물렀다.
마지막 순서, 요슈아가 무대 위에 오르자 관객들은 열광한다. 박수에 화답하듯 요슈아는 무대 중앙에서 정중한 인사를 올렸다. 같은 무대에 섰던 음악가들도 요슈아의 연주를 듣기 위해 무대 뒤쪽에서 앞을 다투어 앉거나 지근거리에 서있었다. 요슈아는 무대를 새삼스레 둘러본다. 샹들리에가 눈부시게 빛나고 낡았으나 잘 닦인 무대 위에 놓인 피아노는 새하얀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심사위원석에 떨어지는 조명도 흐릿해지고 오롯이 요슈아와 피아노에만 동그랗게 선명하고 밝은 빛이 비춰진다. 한 사람의 숨소리마저 몰아쉰다면 크게 들릴 법한 정적이 지난 뒤, 그는 마침내 피아노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연주가 시작됐다.
선율은 미려하고 유유하게 흐른다. 모두가 요슈아의 손이 자아내는 곡조에 눈을 감고 미소를 짓거나 눈물을 흘린다. 긴장을 풀리고 연주하는 그 스스로도 만족할 만한 완벽이 거기에 있었다. 소박하나 아름답게 시작한 악곡은 마지막이 되어 황홀한 화려함으로 끝났다. 웅장하기까지 한 막바지에 이르러서 요슈아는 고양된 몸짓으로 팔을 크게 움직이며 건반을 쉴 새 없이 눌러 곡을 이어가다 아쉬우리만치 알맞아 정확한 데에서 끝을 냈다. 삼 초의 정적, 그 다음으로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관객석에서 들리는 훌쩍이는 소리와 요슈아, 요슈아, 요슈아! 요란한 연호를 듣지 못한 사람처럼 요슈아는 조명으로 밝아지는 심사위원석만을 하염없이 응시했다. 완벽한 연주였다. 그러니 이제 보상을 바라는 개처럼.
하이델은 맨 끝에 앉아 있었다. 차례대로 위원들이 극찬을 보낸다. 요슈아는 그러나 마지막으로 하이델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낸 말에 여타 칭송은 고사하고 그만 굳고 말았다.
 
잘 들었습니다.
…….
백색이군요. 어떤 것이라도 가져다 놓을 수 있지만, 그것은 결국 색이 없다는 뜻이 됩니다.

그의 말에 죽음 같은 침묵이 흘렀다. 하이델의 말은 앞선 연주자들에게 보낸 애정 어린 조언과는 다른 모양새였다. 조롱도 질시도 없었으나 그저 차갑고 엄중했다. 요슈아는 그 중에도 당신이 이해한 바가 있을 거라 말하고 싶었다. 사실은 매달리고 싶었다. 하이델은 그러나 거기에서 말을 마쳤다.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그럼에도 의미 없는 대상을 요슈아가 수상한 뒤 투르니에 콩쿠르는 막을 내렸다.
기대가 이대로 무너지게 둘 수는 없었다. 요슈아는 가질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다 가질 수 있는 사람이었으나 이토록 가지고 싶은 것을 둔 적도 한 번 없었다. 극장에 모인 모두가 해산하고 요슈아를 비롯한 수도에서 온 음악가들도 마차를 타고 수도로 다시 향해야 하는 시점, 요슈아는 이국으로 떠나는 하이델을 붙잡았다. 선생님. 눈 먼 노인은 새하얀 외투를 입고서 요슈아에게 팔을 붙들린 채 그를 올려다봤다. 백색. 그것은 결국 색이 없다는 뜻이 됩니다, 눈이 보이는 요슈아는 다만 그 색깔을 보고서도 괴로워졌다.

누구인가? 왜 그러는가?
선생님, 제 연주…….
아, ……그대로군.
 
요슈아를 알아본 노인의 태도가 누그러졌다. 그러나 언제 어디라도 떠날 수 있을 듯한 기이한 분위기는 어제와 매한가지였다. 요슈아는 불현듯 두려워졌다. 내가 정녕 이 사람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음악을 하고 있다면 어떡하지. 그래서 내 이름이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음악의 부속품으로만 남는다면 어떡하지. 선생님……. 말끝을 흐린 요슈아가 매달리듯 물었다. 숨이 턱턱 받쳤다.
 
제 연주에 대한 감상…… 더 들려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감상? …이미 해주었지 않나.
…….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네.

이제는 눈 멀고 나이든 선진의 텃세라고 여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전의 음악가들에게 해준 조언과 심상에 대한 이야기로 보거든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하이델이 천천히 요슈아의 손에서 자신의 팔을 거두며 말을 이었다.

자네의 연주가 단순히 '수준급'으로만 말할 수 없는 경지에 도달했다는 것은 아네. 그러나 자네, 그저 음악을 하기 위해 음악을 하고 있지 않은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그 부분을 짚은 것일세. 물론 누군가에게는 다르게 들리기도 하겠지만.

가장 뛰어난 혹은 위대한 안단테의 천재 음악가로 불리는 그는 음악을 하기 위해 음악을 하고 있지 않느냐 묻는 하이델의 말에 그를 붙들 힘을 잃는다. 허공에서 힘없이 떨어지는 손을 보지 못하는 노인은 후배 음악가를 뒤에 남겨두고서 자신의 나라로 지팡이를 짚고 떠나갔다.
요슈아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제국 수도의 마차를 탄 귀로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돌아온 이후 요슈아는 하이델에 대해 조사해봤으나 그가 정말로 전 대륙의 예술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데 있어 전설적인 인물이라는 것 외에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이는 결국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으며 그에게 있어 어떤 가치가 요슈아의 음악을 인정받게 만들 수 있는 척도가 될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다는 방증이었다. 요슈아는 당연한 수순처럼 절망했다.
누구도 자신을 이해해줄 수 없다면 음악을 할 필요가 있는가. 위대하다는 이름으로 남아봤자 무슨 소용이 있는가. 무저갱 같은 고독은 거기에 있었다. 누구도 음악이 아닌 자신을 보려 하지 않아서 요슈아는 그토록 외로웠다. 그러나 여기까지 제리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음악 없이는 쓸모없는 사람일까? 그 말에 선뜻 아니라는 대답을 하지 못한 제리에게조차 이를 고해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지금에 와서 요슈아는 동이 트는 하늘을 등지고 소파에 앉아 제리의 앞에서 얼굴을 손바닥으로 덮어 가렸다.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그랬다.


요슈아의 색 없는 음악, 꺼냈던 알 수 없는 말의 근원 혹은 실체를 제리는 잠자코 듣는다. 요슈아가 하이델의 이름을 꺼내고 난 다음 말끝을 흐리기에 그 흐려지는 끄트머리마저도 잡아 올리듯이 귀 기울이며. 이제 황궁에서 온 하인들은 악기를 전부 옮겨 놓고 요슈아와 제리에게 쭈뼛쭈뼛 인사를 건네고서 저택을 나간다. 요슈아는 그들의 인사를 듣지도 않고 두 손에 얼굴을 묻고 가만히 정적에 잠긴 채 거기 앉아 있었다. 제리는 쪼그려 앉은 다리가 저린 것을 느꼈으나 요슈아의 옆에 앉거나 하물며 그의 곁을 떠나려 일어나지는 않았다. 한참 뒤에야 요슈아가 고개를 들며 간신히 웃었다. "바보 같지?" 이해받고 싶었을 뿐이라고, 혹은 의미 없이 재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음악을 계속하고 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고, 그도 아니라면 누군가가 음악 안의 '음악과 다른 자신'을 발견해주기를 바랐을 뿐이라고 요슈아는 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제리는 그가 무엇을 더러 바보 같다고 말하는지 알 수 있다. 자신에게는 그토록 몰두하거나 존재를 지울만한 재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요슈아와 같은 사람, 사람이기 때문이다.
묻고 싶은 말이 여전했다. 내가 말한 네 음악 빛난다는 말은 네게 닿지 않았어? 나는 네 음악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거였어? 나는 네 단 하나의 청중이 되고 싶었고 네 피아노 곁에 앉아 내내 눈을 감고서 몸을 나직하게 흔드는 관객이 되고 싶었는데. 너의 짙은 외로움은 어디에서 자라나며, 우리에게 어떤 말이 더 이상 남아 있는 건지. 너는 너를 이해할 수도 있었던 가능성 하나를 가지고 있던 그 사람의 말 한 마디 때문에 이토록 자신을 깎아내야 하는 건지.
그러나 제리는 그런 말을 하지 않고 대신 마침내 자리에서 느리게 일어났다. 바깥은 해가 뜨고 맑은 가을 아침이 되었다. 외로운 새벽이 떠나고 아이들이 황궁 앞의 광장에서 벗이여 그대가 떠났는지 묻는 가사의 노래를 할 만큼 벅적한 때가 된 것이다. 햇빛이 열린 커다란 창을 통해 늘어지고 요슈아의 슬리퍼 신은 엄지발가락에 그림자와 볕의 경계가 닿았다. 제리는 묻지 못하는 말들 사이를 헤매듯 앉은 그의 앞에 섰다. 바깥에 귀를 기울이면 아이들은 또 다른 노래를 부르고 있다. 제리는 노래를 듣고 그만 애잔한 웃음을 머금는다.

"요슈아."
"……응."
"들려?"
"뭐가?"
"바깥에."

요슈아가 끝내 손에서 얼굴을 든다. 아침 햇살이 비치는 창가로 고개를 돌린다. 제리가 그쪽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멀리서 뛰노는 아이들은 음악을 즐기고 사랑하는 안단테의 엄연한 국민들 중 하나, 아이들이 노랫말의 뜻도 모르고 노래한다.
처음에는 아무런 노래도 할 수 없었네. 그러나 침묵이 악기처럼 울릴 때, 노래는 그리움의 상처로부터 돋아나는 달빛의 새살, 바람이 없어도 저 홀로 나부끼는 깃발이라는 것을, 나의 기타는 아네, 다섯 개의 검에 베어진 심장을 지닌 나의 기타는 아네, 자신의 상처가 노래임을, 상처받은 한 마리의 고통, 하나의 심장이 노래의 유일한 근원임을…….³ 박정대, <그리고 그후에 기타의 눈물이 시작되네> 中, 시집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수록.

"요슈아."
"……."
"정말로 상처가 노래야?"

제리가 말했다.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허투루 거스르지 않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안타까운 미소를 머금고서. 요슈아는 외로움을 생각한다. 그리고 울고 싶어진다. 그리고 요슈아가 느끼기에 그것은 제리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네 심장이 노래의 근원이라면……, 네가 음악의 근원이라면 나는 네 노래를 사랑하기 때문에…… 너도 사랑하는 게 되겠지."
"……."
"하지만 네가 네 스스로가 음악 없이는 쓸모없는 사람이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무척 슬펐어. 그렇게 대답했어야 했어."
"제리."
"미안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볕처럼 쏟아지면 제리는 소파에 앉은 요슈아의 무릎을 향해 무너지듯 바닥에 앉는다. 제리의 이마가 요슈아의 무릎에 툭 닿았다. 요슈아는 제리가 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얼굴을 손에 묻으며 제리의 앞에서 그러고 싶었던 것처럼.

"네가 좋아. 음악이 없어도. 네게서 음악이 영영 사라져버린대도."

처절하고 고요한 고백이 백색으로 내려앉는다. 다섯 자루의 검에 찔리지도 않은 심장이 그럼에도 피를 쏟아내듯 아파왔다. 제리가 어렵사리 고개를 들었다. 물기 그렁한 눈자위가 미치도록 사랑스러워서 요슈아는 다시 울고 싶어졌다가, 제리의 그 다음 말에 울음을 터뜨리는 대신 그의 손목을 부드럽게 잡았다.

"나는 재능이 없어, 요슈아."
"제리."
"나는 재능이 없지만, 하이델의… 네 음악이 백색이고 아무 빛 없다는 말은 결국 네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말이 아냐?"
"……."
"그러면, 그러면…… 내 옆에 남는 누군가가 되면 안 돼?"

내가 말한 네 음악 빛난다는 말이 네게 닿지 않았어도. 내가 네 음악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대도. 네 단 하나의 청중이 되고 싶었고 네 피아노 곁에 앉아 내내 눈을 감고서 몸을 나직하게 흔드는 관객이 되고 싶었음은 변치 않기 때문에. 너의 짙은 외로움이 계속해서 자라나고 우리에게 어떤 말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대도.
엄지발가락에 닿았던 볕이 조금 더 길어져 그새 무릎 꿇듯 앉은 제리의 낯을 환하게 비췄다. 요슈아는 잡은 제리의 손목을 느리게 당겼다. 제리는 엉거주춤 몸을 일으킨 자세로 당겨지고 이내 요슈아의 손아귀에 뒷머리가 쓸어내려졌다가, 그의 호흡이 뺨에 닿는 것을 느끼고 눈을 감았다.
햇빛처럼 긴 입맞춤. 요슈아가 끝내 울고 있었다.


한참 둘은 아주 어린 아이들처럼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다가 별안간 웃음을 터뜨렸다. 조금만 더 생각해볼게. 코를 훌쩍이며 이어진 요슈아의 말에 제리는 똑같이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침부터 없어진 막내 황녀 때문에 난리가 났을 황궁은 영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대신 제리는 하인들이 옮겨놓은 악기들을 흘끔 보고서 요슈아에게 말했다. "악기 많다." 요슈아가 젖은 얼굴로 웃었다.
 
"예전처럼 연주, …해주면 안 돼?"
"아무거나?"
"뭐든."
 
요슈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휘적휘적 걸음을 옮겨 하프시코드 앞으로 다가간다. 문득 그의 등, 구겨진 나이트가운에 비쳐오는 햇빛을 보는데 제리는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순전한 백색이라고 생각했다. 백색의 음악이라고 요슈아의 것을 표현한다면 자신은 저 색깔을 그에게 건네주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per1_cm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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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_com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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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ddek_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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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매일 다른 이유로 더 사랑했었고
나는 너를 매일 다른 이유로 더 사랑했었고

요슈아 이름의 마지막 글자 아, 를 부를 때는 시원하게 탁 트이는 데에 비해 반대로 내 이름은 첫 글자부터 턱 막히는 발음인 게 대비감이 느껴져서 좋아 그렇지만 소꿉친구가 리를 발음할 때면 혀끝이 입천장에 닿아 부드럽게 끝나서 마지막 글자임에도 계속해 이어질 것 같단 느낌이 들고

요슈아의 이름은 성경에서 비롯된 반면 내 이름은 슬랩스틱 코미디 애니메이션 톰과 제리에서 따온 것, 우리의 이름 영어 철자는 동일한 J로 시작하는데 나머지 알파벳은 일절 겹치지 않는다는 점도 소소하게 좋아하는 포인트야

모든 순간을 여린 빛으로 감싸주던
모든 순간을 여린 빛으로 감싸주던

우리의 키 차이는 7cm로 소꿉친구의 어깨에 내 턱이 닿는 정도
고개를 살짝 들면 굴절 없는 시선이 그대로 마주쳐서 좋아 발뒤꿈치를 들지 않아도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넘겨줄 수 있는 키라 다행이야 가까운 거리감이 편안해서 종종 그 애가 더는 안 컸으면 혹은 내가 더 자랐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해

어릴 때부터 키가 큰 게 너무 싫었고 좋은 점이라곤 단 하나도 없어 보였는데 그 애가 있어 준 덕분에 이젠 나를 이루는 부분을 좀 더 사랑할 수 있게 됐어 좋은 일이지

있는 그대로 솔직할 수 있게 다독여 날 일으켜
있는 그대로 솔직할 수 있게 다독여 날 일으켜

자기혐오로 인해 자신을 마구 상처 입히던 요슈아의 손목에는 이제 선혈 가득한 실선 대신 흰 새살이 돋아나고 매일이 우울하고 지루해서 죽어버리고 싶다 생각한 나는 이제 요슈아와 함께할 내일을 기대해

같은 결의 외로움을 앓고 있으니 서로를 불안하게 만드는 대신 이해할 수 있는 거야 내 빈칸을 채워 넣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상대가 잃어버린 퍼즐 조각은 주워서 빈자리에 끼워 맞춰주고 마이너스가 곱해지면 양수가 되는 것처럼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만큼은 모르는 사람들이 연인에게는 사랑받는다는 확신을 선사하는 게 모순적이지

이 성장은 누군가를 대신 구원하고 구원받는 이야기와는 조금 결이 다른 것 같아 구원은 깨닫고 변화를 결심한 사람이 스스로 할 수밖에 없는 것 나를 구원하는 건 결국 나 자신….

그러나 바뀌고 싶다는 마음과 동기를 부여한 게 상대라서, 그 애가 내 곁에 그 애의 곁에 내가 있었기에 실현 가능했던 거라서 모든 기원은 결국 사랑이라는 말 또한 맞아

텅 빈 푸른 언덕 위에 무지개는 지붕이 돼
텅 빈 푸른 언덕 위에 무지개는 지붕이 돼

미래에도 요슈아와 함께한다면 캘리포니아의 바다가 잘 보이는 언덕 위, 작은 마을에 가게를 차리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 한쪽 벽 대신 설치한 커다란 아크릴 창 너머로는 모래사장과 수평선이 보이고 다른 벽면에는 책장과 책이 가득해서 손님이 바다를 바라보는 동시에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

어린 손님이 오면 커피 대신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머그컵에 담아주고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손님이 방문할 땐 데운 우유를, 그리고 종종 근처에 사는 동물 친구들이 문 앞을 기웃거리면 치킨저키를 주며 보드라운 털을 쓰다듬어 보기도 해 

파도가 치는 소리를 들으며 소꿉친구는 디게싱한 원두를 추출하고 나는 책의 책등 위 알파벳과 숫자를 확인해가며 원래 위치의 책장에 꽂거나 테이블을 닦아 손님이 없을 때에는 책방 앞에 꾸며둔 작은 정원 속 식물에게 물을 주거나 안락한 소파에 함께 앉아 둘만의 낭독회를 열어 종종 일찍 가게 문을 닫고서 함께 모래 위를 거닐거나 어린 손님이 주고 간 선향 불꽃을 파도 앞에서 태우기도 하고

매주 토요일 저녁 6시는 요슈아가 업라이트 피아노 또는 통기타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시간인데 단골 손님뿐만 아니라 바다를 구경하고 돌아오는 사람까지 종종 그 애의 목소리에 이끌려 가게로 들어올 것 같아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힘들어했던 내게 제대로 마주하는 법을 알려준 건 요슈아니까 훗날의 모습을 그려볼 때마저 그 애가 곁에 있는 건 당연한 일

@commi_s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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