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보드라운 손목 안쪽에 입 맞추는 것으로 엉켜 붙은 실선을 걷어낼 수 있다면 아무에게도 밝히질 못해 감당하기 힘든 절망이 견고히 쌓여갔던 로스와 도쿄에서의 새벽을 내가 전부 가져가버릴 수 있으면 망설임 없이 그럴 텐데
요슈아 널 대신해서 아득하고도 흔들리는 어둠 속을 걸어가고 싶어 네게는 환하게 부서져 내리는 낮볕과 다정한 공기와 영롱하게 피어오르는 불꽃만 남겨주고 싶어
시내를 헤매다 들어간 길목에서 우연한 계기로 발견하게 된 수수께끼 레코드샵 수십 년을 고보한 것처럼 보이는 간판에선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고 규모도 가히 작아 보이지만 어쩐지 홀린 듯 유리문을 젖혀 들어가면,
그곳은 마치 반세기 전에 시간이 머물러 있는 듯이 수백 가지 바이닐과 CD와 카세트 테이프가 선반에 빈 칸 없이 빼곡히 꽂혀있어서 코트로 가득 찬 옷장 깊숙이 들어갈 때에서야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신비의 나라 나니아를 연상케 해 카운터에 엎드려 휴식을 청하던 직원분은 우리의 방문을 눈치채자 축음기 위에 LP를 올려두셔서 고요했던 가게 안에는 침묵 대신 이름 모를 가수의 노래가 실내를 유유히 채우네
여전히 이런 가게가 남아있었다니 과거에 불시착한 요슈아와 제리가 된 기분이야 음악에 대해 하등 아는 것 없는 나조차도 어쩐지 들뜬 기분으로 레코드판 커버 뒷면에 쓰인 설명을 들여다보게 되는데 노래를 사랑하는 소꿉친구에겐 이 순간이 얼마나 기쁠까 이 앨범은 이십 년 전 폐반되었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발견할 줄은 몰랐어, 중얼거리는 그 애의 심장박동이 시계 방향으로 빙글 돌아가는 바이닐 속 반주보다 선명하게 울릴 정도로 신난 게 느껴져서…. 즐거움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선율을 관조하는 요슈아의 곁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와 가게를 둘러보던 중 내 눈에 들어온 건 요슈아가 발표한 싱글 음반들
한 시간 뒤 결국엔 각자 묵직한 봉투를 품에 안고 열렬한 환대를 받으며 나와 방문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점원분의 인사에 다음에도 꼭 올게요 라고 대답하면서

더위가 한 발짝 물러서고 해 질 녘 바람은 서늘하게 불어오는 요즘 수제 아이스크림 가게 탐사에 재미를 들였어 특히나 재료 맛이 선명히 느껴지고 쫀득한 젤라또가 좋아
유리 디스플레이 너머로 진열된, 산호초 군락에 사는 화려한 열대어를 닮아 알록달록하고 쉐이빙 폼처럼 겹겹이 쌓인 모습은 눈으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져서 무심코 평소 먹을 수 있는 양보다도 많이 주문해 버리고
그렇지만 두 입 정도를 떠먹은 뒤 그대로 질려버린 나와 다르게 각기 다른 맛 세 스쿱과 와플 콘까지 주문한 요슈아는 한 입을 베어 물 때마다 엷은 양회색 눈이 별빛처럼 반짝이는 행복으로 가득한 덕에…. 그 모습은 지켜보기만 해도 마음 한 켠에 잠시 머물렀던 후회를 몰아내고 역시 오길 잘했다는 뿌듯함과 웃음만을 남겨줘

@WxIuk
천사가 입술을 누르기 전까지,
우리, 약속하자.
네 슬픔은 나만의 것이야.
너는 마치, 달과 같아.
집. 사적인 영역. 연인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이 가득할 수도 있는 공간. 반대로 묘사하자면, 집을 보면 주인의 됨됨이를 알 수 있었다. 덧붙여, 취향이나 성향도 파악하기 충분하다. 사람을 안다. 반들거리는 액정 너머 CF에서 나올 법한 문구였으나, 제리는 그 문장을 누구보다 통감했다. 깔끔한 하얀 벽지. 편안한 모던 형식의 가구. 그나마 자연적인 걸 꼽자면, 편백나무로 만든 테이블이다. 심플하고 눈에 편안한 거처의 모습에서 다정한 면이 보이는 것을 왜일까. 눈꺼풀을 들어 올리면, 보이는 부드러운 머리카락은 은색으로 요요하게 자랑하고 있다. 요슈아다. 연인의 집에 깜빡 잠드는 일은, 잦은 해프닝이었다. 본디 바깥을 자유로이 여행하고 횡보하는 데이트가 애초에 불가능한 상황을 지닌 '공인' 신분의 남자친구를 둔 탓이다.
실은 불만은 없다. 오히려 제리는 기꺼워했고, 차분하게 서로를 알아갈 수 있었다. 상황이 달랐더라도 서로의 보금자리를 찾는 일이 잦았을 거다. 그리 단언하며, 졸린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린 제리는, 시계를 찾으며 시침과 분침이 새벽 2시가 넘었음을 가리키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기억 필름을 샅샅이 되짚어보니, 편한 소파 위에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던 게 마지막 장면이었다. 여름의 끝. 가을의 시작. 끝과 시작은 언제나 반복되기 마련인데, 너와 함께하는 건 어찌나 새로운지. 날씨는 신선해지고, 공사다망한 일이 마무리 지을 무렵 긴장이 절로 풀렸다. 돌아온 계절을 실감하기라도 한 듯, 요슈아는 에어컨을 작동하기보다는 베란다 창을 활짝 열어뒀다. 도시의 소음이 간간이 들렸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보컬리스트에겐 감미로운 음악적 요소이리라 감히 짐작했다. 그렇게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며, 이야기를 나누곤 했지. 아마, 깜빡 먼저 잠든 쪽은 여럿 고뇌해도 제 쪽인 게 분명했다. 몸에 걸쳐진 담요나, 푹신한 베개의 존재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머쓱한 낯으로 제리는 조심스레 아무것도 덮지 않은 요슈아의 상체에 담요를 덮었다.
"…네 몸을 더 아껴줘, 요슈아."
혹여라도 잠이 든 요슈아가 깰까, 두려워 제리는 입술만 달싹이며 모양을 내었다. 다정하긴. 언뜻 차가운 색과 달리 요슈아는 따뜻한 성정을 지녀, 제리의 마음을 두드리곤 했다. 한 번의 노크면, 우리는 고작 친구란 단어에 머물렀겠지. 조심스레 손가락으로 낯 위에 흐드러진 머리카락을 단정케 하곤 제리는 웃었다. 시야를 살짝 내리면, 요슈아의 손목이 훤히 보인다. 사적의 영역. 울타리 내부. 빗금이 늘지 않아, 변함이 없는 흔적. 붉은 자상이 없는 그 손목 안쪽에 안도라도 한 듯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가슴 한쪽에도 눈물샘이 있다면, 펑펑 울고 있을 거다. 기쁨이란 명제로. 극복의 증거. 계절은 변화하고, 매해 돌고 돈다. 우리도 다시 시련에 눈물 흘리고, 괴로워하고, 우울이란 명사에 허우적거리다가 심해 아래로, 또 아래로 가라앉으리.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과거에 얽매여 실패를 곱씹으며, 헤어 나올 수 없는 씁쓸함에 눈물 흘리며 반추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죽음을, 너는 고통을. 그런데도…. 요슈아를 보고 싶었다. 무대 위. 노래. 도시. 난반사하는 네온사인. 그 아래에서 너와 나. 어딘가 후련해진 제리는 거실 불을 껐다.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어둠이 내려앉자, 명백히 보이는 달빛이 공교롭게도 요슈아의 낮에 내려앉는다. 마치 영화나 소설 같다. 창작물도 모두 인간사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인생의 모든 파란과 굴곡진 하이라이트는 전부 너에게서 따온 게 아닐까? 과거엔 신이 있다면 묻고 싶었다. 나는 언제나 헤매고 있어야 하나요? 탓하고 욕보이고 싶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답변 없이 신이 요슈아를 가리키고 있음을 이제는 안다. 미래를 꿈꾸지 않고 죽음만을 바랐던 과거를 뒤로한다. 앞에는 네가, 있었으니까. 뒤처지지 않게 부단하게, 나아갈 차례였다. 소파 위, 한쪽에 엉덩이를 누르고 얌전히 바라보니 작은 목소리가 들린다. 제리.
"요슈아…."
"깼네. 뭐하고, 있었어?"
"그냥……. 네 생각을 조금 했어."
웃음소리. 그리고 닿는 체온에 제리는 힘을 풀고 가슴에 기댄다. 다정한 체온, 외로운 도시 사람들을 감싸 안는 달처럼, 무던히 끌어안는 힘에 안도했다. 잠결에 취한 듯 목소리가 나른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덧없는 무의식 속 진실이란, 표명과 같다.
"제리, 따뜻하네."
"네가, 더 그래…."
끌어당기는 손길에, 제리는 속수무책으로 품에 기대어 강제로 누었다. 정확히는 요슈아의 품. 눈 동그랗게 뜨고, 시야를 마주하더니 이번에는 입술이 닿는다. 자연스러운 행위에, 심장박동이 쿵쿵하고 뜀박질함을 느낀다. 반칙이야. 데이트의 말로는 체온을 느끼며 잠자는 행위로 언제나 귀결된다. 오늘의 데이트는 끝. 자고 일어나면, 월요일 아침이 둘을 기다리고 있을 거다. 봄이 오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며, 이윽고 겨울이 찾아오는 듯이. 내일이 오고, 죽음을 바라고, 고통을 내어도, 삶을 떠올리며 너란 정상궤도로 진입해 빙글빙글 돈다. 살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인생에 자전하고 있고, 사랑이란 중력에 이끌린다. 비록, 공전이라도 서로를 잡아당기고 있으니 심장이 뛰는 찰나를 거스를 수 없다. 지당한 사실이다. 수천 년 과거 조상이 증명했듯이, 인간은 앞으로 나아가며 사랑한다는 걸. 나는, 너를 사랑해. 요슈아의 입이 달싹인다.
"앞으로도 함께해줘."
제리. 짧은 문장 한마디에, 제리는 살고자 했다. 요슈아의 곁을 우리 집이라, 인식하고 있었다. 삶이, 박동했다. 다시.
@WxIuk
목덜미를 보이는 무방비한 상태.
천 하나 사이에 전해지는 미지근한 온기.
전부, 기꺼워 생을 영위하게 만드는 지독한 파라다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