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1895 웨딩 밴드 플래티늄
[5.0] 1895 웨딩 밴드 플래티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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プライベート・ヴォーカリスト@ステイホーム!~一年で一番大事な日♥~ 내용에 맞춰 구매했던 반지

공식 홈페이지에서 샘플 이미지를 보고 반해 온 까르띠에 매장을 돌아다녔는데 실제로 본 반지는 기대했던 것보다 더더욱 반짝거려서 백색금 체인 목걸이와 함께 받아왔어 왼손 약지에 꼭 맞는 크기라 매일 끼고 다니거나 목걸이에 걸어 함께하는 중이야

백금 반지는 순수 힘 그리고 영원한 사랑을 상징한대 그렇기에 내가 첫 번째로 가진 영원에는 다른 누구도, 나도 아닌 너의 이름을 담고 싶었어

@Winter__0715
@Winter__0715

@Winter__0715
@Winter__0715

반전한 중력의 끝에
반전한 중력의 끝에

@PENETRANTFORA

 

 

꿈과 현실이 다르다는 건 일찍이 알고 있었다. 현실에서 꿈을 그린다면, 꿈은 꿈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 같은 차이점. 괴리가 얼마나 큰지도 머리에 착실에 새겨두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다양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이해하며 깨달은 거리를 수치화하게 되었다. 도에서 높은 도에 새끼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을 단번에 올리지 못하는 거리. 손바닥이 찢어져도 결코 극복할 수 없는 것이 과거에 그린 꿈과 현재의 현실이었다. 손에 더 힘을 주지 못하고 칼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맥없는 소리가 났다. 창백하고 작은 비명이 공간의 크기를 한정하고 있었다. 커다란 장소에 고립되어 있음이 달팽이관을 돌았다. 입술을 물면 경계선에서 벗어나 완벽한 현실로 돌아왔다. 떨리는 팔을 올려보면 벌어진 살 사이에서 새빨간 피가 흘러내렸다. 손목에서 아래로 떨어지지만, 바닥은 젖지 않도록 다른 손으로 중간을 감쌌다. 요슈아의 창백한 숨이 살갗 안을 파고들었다. 손바닥은 피로 흠뻑 젖었다. 서서히 피가 멎는 동안 요슈아는 자신의 상처를 관망했다. 스스로 의지로 몸에 상처를 내는 건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답답한 육체 안을 활발하게 휘젓는 액체의 색을 확인한 게 전부였고, 답답하더라도 이것을 유지하고 싶다는 본능이 꿈틀거렸다. 그는 끈적한 혈액을 강하게 붙들고 눈을 질끈 감았다. 제리… 무의식 속에 꺼낸 이름이었다. 혀에 가장 깊게 남은 단어. 곧 그의 얼굴의 형체를 그려낼 수 있었다. 이유는 당장 찾을 수 없었지만, 요슈아는 그가 간절했다. 진동하는 손이 멈추지 않았고 느린 호흡은 심장이 열 번 뛸 때마다 뱉었다. 좁은 간격의 심장 소리가 선명해서 귀에서 떼어낼 수 없었다. 제리가 옆에 있다고 해서 밴드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피가 바로 멎지도 않고, 해결될 상황은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요슈아는 고통을 통해 삶을 갈망하는 동시에 제리가 곁에 있어주길 원했다. 제리의 밝은 눈을 마주봄으로써, 옆에서 내쉬는 숨을 들음으로써, 손을 잡지 않아도 밀착한 온도에서 삶이 충족되는 사람처럼. 만나지 않은 시간에도 가끔 그를 떠올렸지만, 이만큼 원한 적이 있던가. 요슈아는 찬찬히 첫만남부터 시간을 되짚었다. 그리고 제리의 시선이 향해있는 곳을 떠올렸다. 제리는 요슈아의 손끝으로 강하게 내려치는 음을 친애했다. 손목에는 빨간 색이 흘러도 생동감은 없었고, 제리가 친애하던 음은 이 손으로 만들어낼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제리에게 이것을 고백할 수는 없었다. 꿈과 현실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었다. 꿈은 모든 개념을 부숴 존재하는 반면 현실에는 중력부터 강하게 끌어서 피가 결국엔 바닥에 떨어졌다. 다른 도시에 있는 제리와는 거리가 있어서 얼굴을 마주볼 날도 제대로 마련하기 어려웠다. 같은 마음이라고 장담은 못하겠지만, 답답하게 감정을 간직하기보다도 그와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치기 어린 충동보단 옛날부터 쌓아온 감정의 결론이었다.

 

"보고 싶다."


천천히 일어나서 싱크대에서 물로 팔을 깨끗이 씻어냈다. 속이 울렁거리는 이유는 현실과 꿈이 충동하고 있어서였다.

반전되는 중력의 시작
반전되는 중력의 시작

@PENETRANTFORA

 


오랜만에 만난 요슈아의 얼굴은 여전했다. 변화가 없다는 건 언제나 봤던 요슈아이면서 제리가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는 요슈아 자체라는 뜻이었다. 서로 발견하자 손을 흔들며 가까이 다가갔고, 함께 벤치에 앉았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짧은 계절은 춥지도 덥지도 않은 모호한 날씨가 이어졌다. 먼저 그간 만나지 못했던 주된 원인인 중학교에 관해서 이야기를 꺼냈다. 다음에는 친구들, 선생님에 대한 것. 정보라기엔 부족하지만, 서로에 대해 알 수 있는 것들. 초등학교의 졸업식을 마치고 계절이 지나더라도 바래지 않은 색이 이곳에 존재했다. 제리는 음악에 대해서도 물었다. 요슈아는 제리와 달리 음악을 좋아하고 재능도 충만했다. 요슈아는 기다렸다는 듯 작곡한 노래를 휴대폰에 담아왔다며 꺼냈고, 이어폰을 하나씩 꼈다. 눈으로 별것 없는 사인을 맞추자 요슈아는 재생을 시작했다. 음악이 나오기 시작하며 들리는 부드러운 선율은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제리는 눈을 감고 요슈아가 건반을 두드리는 모습을 떠올렸다. 긴 손가락이 짚어나가는 세상은 제리가 사랑하는 것 중 하나였다. 요슈아의 전부가 담겨있는 것 같아 제리는 넘치는 심장의 고동도 듣지 못한 채 집중했다. 경쾌한 끝의 찰나, 제리는 세상의 침묵을 들었다.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치고, 제리는 그의 눈동자에 들어간, 투명하게 빛나는 자신의 눈까지 포착했다. 요슈아는 밝은 미소로 보답했다. 제리가 솔직하고 느낀 그대로의 감각을 쏟아내고 있자 올라가는 입과 휘말리는 눈 끝이 계절의 모든 게 녹아내린 것 같았다. 옷 위에 카디건을 입었다 벗었다 반복하는 어색한 계절조차도 다르게 보이는 것 같았다. 초점이 그에게 맞춰졌다. 세상이 커다랗게 한 바퀴를 돌아 정착하여 마침내 마주한 기분. 한 번 번졌던 미소가 표정에 배어 제리에게는 요슈아가 계속 웃고 있는 듯했다. 시간이 저물며 두 사람은 일어났고 요슈아는 제리의 집 앞까지 바래다주었다.

 

"다음에 또 보자."

 

공백에 비해 만남은 짧았다. 가끔 전화나 라인을 한다고 해도 얼굴을 마주하고 옆에서 온도를 나누는 것은 달랐다. 손을 흔드는 동작도 느리게 하면 시간이 더 늦어질까 천천히 움직였다. 돌아서는 뒷모습을 보며 아쉬워서 발을 못 떼고 있었더니 마음이 통한 것처럼 요슈아가 뒤를 돌아보았다. 한 번 더 손을 흔들고 제리는 걸음을 뗄 수 있었다. 멀리서도 보인 미소가 아른거렸다. 제리에게 라인으로 요슈아의 음악이 도착했다. 그가 알고 있는 요슈아지만, 그에게 어떠한 변화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의 웃는 모습이 어딘가 달라졌다. 노래를 틀고 만나지 못했던 시간의 길이를 생각했고, 침대에 누운 자신의 발끝이 침대의 끝자락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변화는 늘 제리에게도 작용했고, 요슈아는 제리의 중력을 바꿨다. 그러나 요슈아에게 이것을 고백할 수는 없었다. 좋아한다는 말은 요슈아의 중력도 파괴할 수 있었으며, 그에 따라 제리가 좋아하는 미소가 변할 수도 있었다. 제리는 지금의 거리가 좋았다. 친구와 친구, 시간이 되면 만나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고 음악에 대해 묻는 적당한 관계. 그러나 중력을 되돌리지는 못할 것이었다.

@NWgKN1pcjLnL5ym
@NWgKN1pcjLnL5ym

우리가 함께 보는 가장 첫 번째이자 아름다운 풍경
우리가 함께 보는 가장 첫 번째이자 아름다운 풍경

@abcdefg11



눈이 아릴 정도의 하양이 시야 가득 들어찼다. 가쁜 숨을 하얗게 내쉬자 들이마실 공기가 희박한 것이 느껴졌다.
어떤 포켓몬도, 어떤 식물도 살기 어려운 극지대. 그 이름답게 이곳은 돌아봐도 돌아봐도 오로지 눈, 눈이 만든 새하얀 언덕, 그리고 우리가 그 언덕길을 오르며 함께 만든 발자국 뿐이었다. 자신은 평소 포켓몬들과 함께 많은 곳을 다녀왔지만 제리는 어떨까, 돌아본 제리는 아니나 다를까 조금 벅찬 듯 숨이 가빴지만 시선이 마주치자 응? 하는 시선을 던지면서도 엷게 미소지었다. 잡아도 괜찮다며 손을 건넨 건 그래서였다.

가슴이 미어지는 표정이었다. 제리의 얼굴은 늘.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마음을 정했다. 세상의 이름이 적힌 글자들과 생김새, 너비, 지형에 대한 그림을 볼 때마다 심장 한 켠이 고요히 박동을 전했다. 저곳으로 가 보고 싶다, 지도 속 실제의 장소에는 무엇이 있는지 두 눈으로 보고 싶다, 타인이 전하는 말과 묘사가 아니라 내가 듣고 느끼는 경험을 원한다. 마음 속 목소리는 분명했고 따르는 것은 어렵 지 않았다. 든든한 동료들도 함께였으니까.
어려운 것은 하나뿐인 소꿉친구를 두고 가는 일이었다.

어쩌면 말로나마 권해볼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함께 가지 않을래, 나는 너랑 함께하고 싶어. 하지만 거절당한다면? 제리는 가고 싶은 곳 같은 건 그다지 없는 듯했고 그래서 그 애의 일상은 평온함에 둘러싸여 있었다. 머무르는 장소에서 아무 일 없더라도 스스로 불안을 감지하고 느껴버리는 나와 달리 색채에 둘러싸인 환경, 풍경. 내가 제리에게서 듣고 싶지 않은 말은 "미안해" 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왜?", "꼭 그래야만 해?" 같은 답이 나와 버린다면 나는 견딜 수 없을 터였다.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듣는 의문이나 거절을. 이건 오로지 내 문제였다. 나라는 인간의 속성의 문제.

그 사실이 견딜 수 없어서 마을에서 나오는 시간을 더 앞당겨 버렸다. 도망치듯 뒤로한 마을에서 제리가 말한 "기다릴게"도 잊으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비겁하게.
그렇지만 돌아오는 것도 결국 나였지. 당연했다. 나는 이 애를….
나는 이 애와….

함께 가주지 않겠느냐고 말한 직후 향한 곳이 어떤 색채도 없는 극지방인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묻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우리를. 그리하여 믿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어떤 색채도 없고, 추위 뿐인 곳에서도 정말로 괜찮겠냐고, 나와 함께해 줄 거란 게 맞냐고.

그리고 내가 내민 손을 제리는 그 어떤 의문도 거절도 내밀지 않고 잡는다. 단단하게. 그 어떤 색과 풍경이 펼쳐지더라도 자신의 마음은 진실로 한결같은 거라는 의지를 담아.
미어진 마음에 충만이 눈보라처럼 불어온다. 하얗지만 반짝거리며, 서늘하지만 홀릴 수밖에 없게.
잡은 손을 단단히 마주 잡고 제리와 나란히 서 꿈에 그리던 말을 담아 본다.

"나와 함께해 줘서 고마워."

여기에 얼마나 많은 용기가 담겼는지 너라면 알아줄까.

"너와 함께하고 있어서 기뻐."

통상적인 말 하나를 뱉지 못해서 수많은 지역을 헤메고 그곳에서 다른 기쁨을 찾으려 해보고 짧은 기쁨 속에서 나의 문제를 잊으려고 했던 비열함을 용서해 줄까.
아마…… 이 애라면 그래줄 것이다.

하여 잡은 손을 놓치는 법 없이, 놓치는 상상 따위는 결단코 하지 않으며, 끝없이 펼쳐진 이 하양처럼 끝없이 함께하는 미래를 손 안에 함께 쥐고서 걸어간다.
걸어가는 눈앞에 언덕길이 내리막길로 변하며 엷은 주홍빛 해가 하늘 높이 떠오르는 것이 보인다.
이 풍경은, 틀림없이…….

@_burangja_
@_burangja_

@gosariri
@gosariri

잠든 이의 낯을 볼 때에.
잠든 이의 낯을 볼 때에.

@xngkgkB

 

 

제리가 방에 들어섰을 때 요슈아는 제리의 침대 위에서 숨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자취방에 함께 들어섰다가 잠깐 제리가 음료를 사 온다는 사이에 잠들어버린 것이다. 아마 침대에 걸터앉아 기다리고 있던 것이 그만 한 번 눕고 나니 그대로 잠에 빠져들어 버린 것 같았다. 시간이 늦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생각한 제리는 겸연쩍게 웃으며 손에 들린 음료 캐리어를 조용히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따뜻한 캐모마일 티와 헤이즐넛 카푸치노. 두 향 섞이면 어지러울 법도 하건만 김이 새지 않는 것은 그 위에 플라스틱 뚜껑이 덮인 덕이다. 따끈한 온기만 제리의 한 손에 미약하게 남아있어, 제리는 스스로의 다른 손을 들어 제 손바닥에 부비며 손을 녹였다.
그러면서 눈길은 한편으로 요슈아를 살폈다. 연인의 모든 순간을 눈에 담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땋아 내린 머리가 고개를 기울이면서 따라 모로 기울어질 때에야 제리는 자신이 요슈아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전등의 불빛이 동그랗게 떨어지면 제리의 그림자가 옆으로 누운 요슈아의 뺨에 희미하게 지고 있는 것이다. 귀의 피어싱도 빼지 않고 잠든 요슈아의 긴 속눈썹이 역시 그의 뺨에 한 겹의 얕은 음영을 내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소년보다는 이제 청년이라는 말이 조금 더 어울리는 얼굴이 다. 멀어진 유년을 떠올리며 제리는 잠깐 우울해지려던 것을 고개 저어 애써 떨쳐냈다.
그 대신 제리는 침대 옆에 앉았던 몸을 조금 더 가까이 해 요슈아의 옆 침대 맡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러는 동안 요슈아는 잠시 소리 없이 뒤척이는 듯하더니 옆에 있는 제리의 손을 붙들었다. 제리는 순간 화들짝 놀라 호흡을 멈추고 요슈아가 하는 양을 물속에서 숨 참고 바라보듯 눈을 크게 뜬 채로 지켜보았다. 그러고 있으면 요슈아는 이내 "으음." 소리를 내더니 잡은 제리의 손을 아예 제 품으로 당겨 안는 것이다. 덩달아 요슈아가 있는 방향으로 끌어당겨진 제리의 몸도 "어어," 하는 사이 풀썩 침대 위로 누웠다. 제리가 당황한 사이 잠든 요슈아는 더듬더듬 팔을 뻗어 버릇처럼 제리의 몸을 끌어안았다. 그제야 필요한 것을 찾았다는 듯 편안한 표정이다. 제리는 이제 자신 손이 아닌 제리 자신을 아예 끌어안아버린 요슈아의 품속에서 얼굴을 들까, 말까 마구 뒤흔들리는 것 같은 심장을 안고 고민했다.
연인이라는 게 이렇게 편안하고도 두근거리고 사랑스러울 수 있다니.
몇 초 뒤에야 제리는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잠든 연인은 아주 어렸을 적 보았던 무구하고 어린 낯이 아닌 현실을 걸어가는 낯을 하고 있다. 현실. 그 단어를 떠올린 제리는 문득 그를 다시 만났을 때를 떠올린다. 요슈아와의 관계의 정의란 제리에게 있어 늪 같던 우울에서의 느리게 뻗어진 구원과도 같은 것이다. 제리는 내도록 스스로의 최악을 자신마저 용서할 수 없던 지난날을 안다. 그래도 옆에 있을게, 라는 말은 그렇다면 얼마나 과분한 것인지……. 요슈아에게 '과분하다'는 말을 하거든 그는 미간을 좁히며 그게 아니야, 라고 말하겠지만.
내게 너는 기적이야. 제리는 조심스럽게 몸을 요슈아 쪽으로 돌리고 팔을 뻗어 요슈아가 그러고 있듯이 그의 등을 끌어안았다. 숨결도 닿을 거리에서 가깝게 본 그의 낯은 이제 좋은 꿈을 꾸고 있는지 희미하게 웃고 있다. 내게 너는 기적이야, 요슈아. 제리는 발음하지 못하는 말을 입 속으로 중얼거리고 그를 안은 팔에 힘을 줬다. 도무지 놓고 싶지가 않아서 그랬다.

 


그러고서 깜빡 잠에 든 것 같았다. 소년이었던 요슈아와 자신이 나오는 꿈을 꾼 것도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았다. 어렴풋이 어린 요슈아가 자신에게 손을 뻗어오는 것만 떠올랐는데 그 몽중이 얼마나 모호하냐면, 아예 그때의 요슈아가 지었던 표정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제리는 부스스 눈을 뜨면서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겨울 속에 잠을 뉘고 있다고 생각 했다. 그리고 눈꺼풀을 완전히 들어 올렸을 때,


"깼어?"
"……아!"
"……그렇게 놀랄 건 없잖아."


제리가 탄성에 가까운 단음을 뱉으며 얼굴을 붉히자 요슈아가 그제야 제리를 품에서 조금 떨어뜨리며 불퉁한 소리를 냈다. "……나도 놀랐다고. 끌어안은 게 너일 줄은 몰랐어. 너 기다린다는 게 그만." 변명처럼 말을 늘어놓는 요슈아를 보고서 제리가 그제야 한 번 웃었다. 문득 생각이 나 음료를 놓아뒀던 책상을 돌아보면 종이 캐리어에 담긴 음료 두 잔은 여전히 거기에 있다. 창문 밖은 아직 까맣고. "다 식었겠다." 제리가 말하자 요슈아가 다시 거리를 좁혀 그를 안으며 말했다. "뭐, 괜찮아." 그 말 한 마디에 제리는 가져온 따뜻한 음료에 대한 아쉬움을 놓아두기로 하고, 대신 눈을 깜빡였다.


"요슈아."
"응."
"잠버릇이야?"
"…뭐가?"
"누구 끌어안고 자는 거."
"……내가 너 말고 다른 누구 끌어안고 잔다는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지?"

 

요슈아가 퉁명하게 말했다가 도로 멋쩍게 웃는다. 미소를 보고서 제리도 따라 짧게 웃었다. "일어나 보면 베개든 인형이든 안고 있더라고. 그런데 네 방엔 네가 있으니까……" 요슈아는 그 부분에서 일부러 말을 끊어내며 슬쩍 미소를 짙게 입술 위로 올렸다. "널 안아야 했나보지." 제리의 얼굴이 파드득 다시 붉어졌다.


"넌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섭섭하게 말한다, 너……. 우리가 무슨 사이인지 잊은 거지."


장난스럽게 붙인 뒷말에 제리의 얼굴이 아예 완전히 달아오르자 요슈아가 손을 뻗어 손등을 제리의 뺨에 댔다. 미지근한 손등 위로 뺨에 오른 열이 그대로 옮겨 붙는다. 기분 좋게 소리 내어 웃은 요슈아가 품에서 다시 제리를 떨어뜨렸다. 둘은 자연스럽게 침대에 나란히 걸터앉는다.
요슈아는 제리가 몸을 일으키자 맞은편에 있는 책상 위의 음료를 가져왔다. 양손에 들린 것 중 캐모마일 티는 제리의 것, 헤이즐넛 카푸치노는 요슈아의 것이다. 제리가 다시 조금 속상한 표정으로 눈썹을 늘어뜨리며 말했다. "식어서 맛없지." 요슈아가 재차 "괜찮다니까." 말하고 나서는 표정이 풀리긴 했지만. 이제 둘은 따뜻하지 않은 종이컵을 두 손으로 감싸 한 모금씩 음료를 마신다. 식은 차와 커피는 그래도 그런대로 향만은 제대로 남아 있어 맛이 나쁘지 않았다.


"나 꿈을 꿨어."

 

요슈아가 불현듯 말했다. 제리는 옆에 한 뼘 정도의 거리만 두고 앉은 요슈아를 돌아봤다. 달콤하고 쌉쌀한 헤이즐넛 향, 다 빠진 거품, 요슈아는 종이컵을 두 손으로 붙잡은 채 제리를 보지 않고 꿈을 다시 더듬는 듯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었다. "지금 말고, 저번에 내 방에서 네가 잠들었을 때 말이야." 제리는 모호하나 그가 언제를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요슈아의 집 거실 소파, 제리가 요슈아의 무릎을 베고 잠들었을 때. 그때는 애초에 자신이 먼저 잠들었던 것 같아 멋쩍은 것은 덤이다.

요슈아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네가 내 앞에서…… 상처를 냈을 때 말이야."

"……."

"우리는 이제 그러지 않기로 마음먹었지만……."

 

제리는 눈을 들었다. 그의 얼굴에 어느새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 그의 컵을 잡은 흰 손등에 힘이 들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은 아직도 두려워……."

"……뭐가?"
"모르겠어."

 

최악을 이해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과 최악까지도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모르겠어, 라고 단정했으나 제리도 요슈아도 서로의 마음과 스스로의 마음을 알았다. 우리는 같은 종류의 어둠 속에 갇혀 서로를 찾고. 제리는 눈을 깜빡이다가 식은 차를 다시 내려놓고 요슈아를 향해 몸을 틀었다. "요슈아." 제리가 부르면 그가 답한다. "응." 눈을 바라보며……
그 순간 제리는 자신이 무슨 꿈을 꿨는지 기억해낸다. 꿈속에서 어린 네가 손을 뻗었다. 울 것 같은 얼굴이었으나 웃고 있었다. 기실 너는 항상 내게,
제리는 팔을 들어 요슈아를 끌어안았다. 서로의 얼굴이 보이지 않으므로 포옹은 가장 가까운 이별이라지만 우리는 이미 서로를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가장 가까운 이별과 식은 차와 한 번 잠들었다 깨어나도 가지 않는 긴 겨울밤, 그래도.
네가 해줬던 말처럼.

 

"괜찮아."

"……."
"응. 괜찮아."

 

유년에서 지금까지 왔듯 우리는 앞으로도 함께 늙어가며 길을 걷겠지. 그 사실만이 우리를 괴롭게 하는 동시에 우리를 위로한다. 제리는 그의 어깻죽지에 이마를 대며 그럼에도 웃었다. 이제 혼자가 아니리라는 것을 알아서, 그리고 우리가 어두운 길 아닌 밝은 데를 향해 걸으리라는 것을 알아서 그랬다.
가만히 안겨 있던 요슈아는 마치 잠버릇처럼 제리와 같이 팔을 들어 제리의 어깨를 와락 끌어안는다. 그 역시 고개를 제리의 목덜미에 묻으며, "맞아, 괜찮아." 괜찮다고 말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밤이 길어 둘은 다시 잠들려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제리의 방 침대는 조금 좁았기 때문에 함께 잠들려거든 아까처럼 두 사람이 안은 채 자거나 아주 붙어 자야 했다. 제리는 아까도 품에 안겨 잠들었으면서 괜히 쑥스러워 "미, 미안," 이나 연발하고, 요슈아는 슬쩍 웃으며 "이제 내 잠버릇 알지." 벌써부터 제리를 안을 준비를 한다. 서로의 체온이 뭉근하게 몸에 눌러 붙고, 그럼에도 긴장되기는커녕 편안하다는 감각이 먼저 들었다.
제리는 땋은 머리를 풀고 불이 꺼진 방 안에서 이불을 끌어올려 요슈아의 어깨 위로 덮어준다. 요슈아는 이불에 제리의 얼굴이 가려지는 게 싫어 손을 올려 제리의 눈이 어둠 속에서도 보이도록 조금 틈을 낸다. 시선이 마주치면 정해진 규칙처럼 웃는다.
우리 함께하자, 여전히 이렇게. 깨어지지 않는 꿈이 밤이 지나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잠든 이의 낯을 볼 때에,
잠든 이의 낯을 볼 때에,

@xngkgkB

 

 

요슈아는 거실 소파에 드는 볕을 본다. 정확히는 제리가 잠들어 있는 발치에 드는 햇볕이 어디까지를 밝히는지 바라보는 것이다. 겨울이긴 하나 유리창으로 가로막힌 찬바람은 들지 않고 햇빛만 유리를 투과하여 제리의 발끝을 비추고 있었다. TV도 틀지 않은 터라 아무 소음도 이 정적을 방해하지 않는다. 그는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제리처럼 잠들기라도 할 듯이.

진행하던 요슈아의 작곡도 끝냈고, 모처럼 일이 없는 한가롭고 따사로운 오후였다. 함께 맞은 휴일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해 한참 이야기하며 고민하다 둘은 같이 소파에서 잠에 들었다. 일어나면 느지막한 대낮이어서 아연해졌건만, 늦은 아침을 먹고 난 뒤 제리는 몰려오는 잠을 참지 못하고 다시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잠들었다. 요슈아는 소파 팔걸이에 머리를 댄 채 앉아 상체만 뉘어 잠든 제리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바로 두었다. 혹여 자세가 불편하지나 않을까 걱정이었지만 염려가 무색하게 제리는 좀체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 다시 조심스레 움직여 잠든 제리를 살짝 들었다. 이번에는 자신 무릎에 연인이 머리를 괼 수 있도록. 평소처럼 땋지 않고 있던 제리의 머리가 조금 흐트러졌지만 제리가 뒤척이거나 깨어나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그럭저럭 편한 것 같아 다행이었다.
처음에야 TV를 틀까 생각했지만 그랬다가는 금방 소리에 제리가 깰 것 같아 그마저도 켜지 못하고 그는 연인을 오래도록 내려다본다. 따사로운 햇빛이 제리의 발치에서 무릎으로 올라가고, 길게 늘어진 창 모양의 네모난 볕이 마침내 얼굴까지 비출 적에 제리가 얼굴을 찡그리며 뒤척일 때에는 숨을 삼키고 말았다.
무언가를 들킨 기분이었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우리에겐 더 이상 들킬 것이 없는데. 없나? 요슈아는 잠시 고민한다. 정말로 없나?

기실 숨기는 것 하나 없다고 생각했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한 불안까지 온전히 내보일 수는 없었다. 그는 바닥에 앉아 반대쪽 소파 팔걸이에 머리를 기댄 채로 이따금 한 번 잃어버릴 뻔한 이를 본다. 내리깔린 속눈썹이 얕게 눈가 아래로 그늘을 만드는데 그마저도 따뜻하다. 요슈아는 생각한다. 너는 모르겠지. 눈을 감는다. 너는 정말로 모를 거야……. 무엇을?

 


깜빡 잠이 든 속에서 요슈아는 제리의 목소리를 듣는다. 선잠이므로 어렴풋이 꿈임을 알고 있었으나 서 있는 뒷모습이 지나치게 위태로워 달려가 그 등을 끌어안고 싶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언젠가 본 것 같은 모습이다. 또 다른 요슈아가 제리와 마주보고 있다. 제리는 커터칼을 들고 요슈아의 앞에서 조심스럽게, 그러나 결단하듯이 스스로의 손목을 그었다. 날이 흰 팔목을 순식간에 긋고 지나가고, 붉게 그인 선 위에 핏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다 곧 팔을 기울이면 떨어지는 핏줄기가 된다. 뚝뚝 떨어진다.
저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스스로를 상처 입히는 것이 익숙해졌다는 말. 속으로 무슨 말이건 삼켰다는 말. 그래도 네 옆에 있고 싶다는 말. 이별 대신 계속 함께 있겠다는 말.

요슈아는 사실 그때 말하고 싶었다. 나는 아직도 무서워. 네가 어디론가 사라질까봐. 그런데 이 두려움이 너를 위함이 아니라 사실은 혼자 남겨질 나를 위한 것일까 봐 그게 더 끔찍한 것 같아. 너를 붙잡아 가두려는 것도 어쩌면 네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일 것이라고, 간신히 입을 떼지만 꿈속의 너는 답이 없다. 했던 말을 다시 반복할 뿐이다. 입을 어물거리면서 모호한 발음으로, 그러면 나는 선명한 핏물을 보면서…….
요슈아는 그래서 깨달았다. 사실 나약한 건 네가 아니라 나일지도 몰라. 인정하고 나면 꿈은 세찬 바람으로 답한다. 앙상한 나뭇가지가 자상을 입히듯 몸을 스치고 지나가고 멀어지는 등을 보면서 요슈아는 겨우 손을 뻗는다. 닿지 않는다. 가지 마. 가지 마, 제리.
그때에 그를 꿈에서 끄집어내는 또 다른 목소리가 하나 있다.

 

요슈아…….

 

그 순간 요슈아는 눈을 뜬다.


잠에서 깨어났다.
요슈아, 불렀던 목소리 탓에―그리고 불안하게 흔들리던 꿈의 여파로 그는 고개를 돌리며 마구 두리번거린다. 어느덧 바깥에 내리쬐는 햇볕은 붉게 변했고, 서서히 노을로 변해가는 도중이다. 아래를 보면 제리는 자신 무릎을 베개 삼아 그대로 소파에 잠든 채인 모습이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요슈아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도로 내쉰다. 한숨처럼 호흡이 흩어진다. 시계를 확인하면 막 졸기 시작한 때로부터 한 시간 남짓 지났다. 어쨌든 제대로 든 잠은 아니었다.
낮잠으로 무거워진 몸 그러나 제리가 제 무릎에 있었으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요슈아는 그래서 몸을 일으키는 대신 손을 들어 가만히 제리의 어깨를 토닥이는 편을 택했다.
세상모르고 잠든 이의 머리카락이 뺨이며 소파 팔걸이에 흐트러졌다. 이제 제리의 상반신을 무겁게 덮는 주황빛의 햇빛은 그럼에도 검은 머리카락을 은빛으로 잠시 착각할 듯 눈부시게 반짝이게 만들었다. 요슈아는 햇빛에 잠깐 눈을 찡그렸다가 아예 눈을 감았다. 어떤 눈부신 순간. 제리와 함께 있는 순간들이 모두 이렇다면 몹시 섭섭할 것이다. 너무 눈이 부셔 눈을 감을 수밖에 없다면 너를 소리로만 더듬어야 할 테니까. 요슈아는 눈꺼풀에 내려앉는 햇볕의 온기를 느끼면서 다시 느지막이 눈을 떴다.
그때에 제리의 작은 입술에서 목소리가 희미하게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슈아."


요슈아는 정적 속에 내버려진 것처럼 깊게 침묵했다. 제리가 한 번 더 웅얼거렸다.

 

"…요슈아."

아마 자신을 잠에서 깨운 목소리도 제리의 것이리라. 몽중에서 자신을 부른다는 것이 가슴 뻐근하게 흡족했으나 동시에 꿈속에서조차 불안에 휩싸여있는 것은 아닐지. 이미 함께 나아가기로 했었으나 혼재하는 감정이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요슈아는 조심스레 손을 들어 뺨에 흐르는 검은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준다. "있잖아……." 눈을 감은 제리가 꿈속의 자신에게 하는 듯한 말을 듣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를 토닥이던 손이 공중에서 멎는다. 요슈아는 잠자코 제리의 말을 기다린다.


"나……."
"……."
"네 옆에 있을 수 있어서… 좋아…."

왜 사랑은 이다지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가.
너는 정말로 모를 거야. 요슈아는 잠들기 전 자신이 속으로 했던 말을 복기한다. 너는 정말로 모를 거야…… 내가 널 잃을까봐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내가 네 앞에서 얼마나 나약해지는지. 결국 사랑이 자신을 가장 취약하게 만든다고 요슈아는 생각한다. 네가 좋아. 그런 말을 들어도 해갈되지 않는 깊은 두려움이 있다고. 그것은 그리움의 형태와 지독하게 닮아서 제 옆에 있는 이의 존재를 확인하듯 끌어안듯 해야 겨우 잠잠해질 수 있는 종류였다.
그러나 나약해지면 어떠한가?
네가 있어서 나는 기꺼이 약해지고 동시에 강해진다. 나를 지키고 너를 지키는 나를 지키기 위하여. 우리는 서로 강해지기 위해, 나아가기 위해 손을 잡고 곁에 있기로 했으므로.
요슈아는 숨을 느리게 들이켰다가 견디지 못하여 고개를 깊이 숙인다. 제리의 이마에 입술을 누르면 감촉에 그가 금방 깨어난다. 제리가 작게 웃었다. "뭐야, 요슈아……." 제리가 웃기 때문에 요슈아도 함께 웃었다. 그의 등 뒤로 노을이 진다. "네가 너무 안 일어나서……."


"보고 싶었어."


요슈아는 새삼스레 고백한다 보고 싶었다. 네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는 것이 이 짧은 동안에도 무척 그리웠다.
제리가 환하게 웃었다. 더 이상 우리 사이에 꿈은 없으니 우리는 우리를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을 테다. 제리가 잠에서 이제야말로 깬 목소리로 또렷하게 말했다.


"응, 나도."

소중한 건 언제나 두려움이니까
소중한 건 언제나 두려움이니까

계단을 내려갈 땐 주로 내가 앞서고 요슈아가 뒤따라오는데 만약 내가 중심을 잃으면 그 애가 제 팔을 끌어당겨 헛디디지 않도록 잡아주고 반면 앞으로 넘어지려 하는 게 소꿉친구라면 나는 그 애를 꼭 안고 계단을 데굴데굴 굴러 내가 다치는 것보다 그 애가 아픈 게 더 무서우니까

인생에서 내리막길을 걷는듯한 시기가 오면 계단을 내려오는 것과 비슷한 양상을 보일 거야 소꿉친구는 둘 다 넘어지지 않게 쓰러지지 않게 붙잡아주는 버팀목이 되고 나는 밑바닥까지 같이 굴러 떨어져 주겠다 생각하는 쪽이네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연애 초반 보기엔 그럴싸한데 먹어보면 맛없는 요리만 만들었던 기억이 나
요리책과 인터넷에 올라온 조리법을 보고 재료의 중량, 종류, 넣는 타이밍을 그대로 따라 하는데도 항상 한 입 먹어보면 싱겁거나 덜 익었거나 둘 중 하나라서 좋아하는 사람한테 이런 걸 먹일 순 없다는 생각에 요리할 의지가 꺾인 적도 여러 번 있었고
와이어드에서 요슈아에게 건넨 도시락은 몇 날 며칠 같은 반찬 만들기를 반복해 연습하면서 그중 그나마 자신 있는 것들만 담았어 성공하기 위한 대가로 만나기 전날 세 끼를 그을린 카라아게 그 전전날엔 타마고야끼만 종일 먹어야 했지만 그 애가 도시락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며칠 내내 같은 메뉴를 먹는 것 정도야 아무렴 좋다고 생각했어

너무 특별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너무 특별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겨울이 되면 우리는 코타츠 속에 들어가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대신 부드러운 양털 담요를 뒤집어쓰며 둘이 앉으면 꼭 맞는 아늑한 너비의 소파에 앉아 식탁 외 장소에서 음식 먹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이때만큼은 소꿉친구가 사 온 프레첼 과자와 팝콘을 그릇 한가득에 담아 우유 맛 하겐다즈와 함께 가져와서 영화 목록을 유심히 지켜보는 소꿉친구의 옆으로 파고들어
로맨스 영화만 틀면 꼭 관람 도중 조는 날 누구보다도 잘 아는 소꿉친구 졸리면 기대도 된다며 유명하지만 한번도 본 적 없는 로맨스 영화를 고르고 나는 이번에야말로 끝까지 일어나 있어야지 다짐하지만 또다시 스태프 롤이 올라갈 즈음 그 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로 깨어나….
잠결에 얼핏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그건 영화의 대사였을까 아니면 네 고백이었을까

익숙함에 진심을 속이지 말자
익숙함에 진심을 속이지 말자

종종 함께 소파에 늘어진 채로 일본어 영어 한국어 그리고 가끔가다 스페인어나 불어까지 섞인 다국어 끝말잇기를 하는데 내 차례에 로스앤젤레스를 말하니 好きだよ로 대답한 소꿉친구 때문에 말문이 막혀서 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이렇게 갑작스럽게 들어오는 게 어딨어

…よしゅあ愛してる…너, 일부러 그런 말만 고르는 거지…. 글쎄, 어떨까….

네 눈에 담은 걸 같이 보고 싶어
네 눈에 담은 걸 같이 보고 싶어

매일 사랑할 이유가 생기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요슈아가 혀가 아릴 정도로 달콤한 음료를 사랑하고 사람들의 환한 미소, 푹신한 녹색 잔디를 사랑하고 흘러가는 흰 구름과 은은한 달을 사랑해서 나 또한 저절로 사랑하는 게 많아지는 사람이 돼 내가 아는 가장 따스한 사랑은 네게서 배운 것
그렇기에 나는 그 애가 사랑하는 수많은 것 중 하나로 포함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에 밀려 맨 뒤에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 애의 1순위는 매번 나였던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