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가를 불러 환상적인 겨울 거리를 거니며
연가를 불러 환상적인 겨울 거리를 거니며

성동에도 최저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법 없는 로스앤젤레스와 다르게 도쿄와 서울은 추운 편이라서 밤사이 온 세상이 윈터 원더랜드로 뒤바뀐 것처럼 시야 가득 하양이 들어차는 경우가 빈번하다지 사계절 서기가 가득한 도시에서 청춘을 보낸 우리에겐 동화 같이 으레 낯설고도 설레는 풍경 
이웃이 모두 잠들어 있는 새벽녘 들떠서 부풀어 오른 마음 위로 코트를 걸치고 요슈아에게 귀도리까지 꼼꼼히 씌워준 뒤 현관문을 열면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은 모든 게 얼어붙을 듯 차디찬 공기야 까마득한 추위에 몸이 움츠러드는데도 불구하고 나쁘지 않다 생각된 이유는 깍지 낀 소꿉친구의 손에서 전해져 오는 온기 덕분이라서
코끝과 볼이 발그레하게 물들고 솜구름을 닮은 입김이 피어오르는 것조차 마다치 않은 채 꼼지락대며 눈곰돌이를 만드는 요슈아는 진지하고 사랑스러워서 문득 이 순간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에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가져와 피사체를 담아…. 비록 선명한 건 잠옷 위에 걸친 외투뿐 순수함을 담은 머리칼이나 흰 피부는 주위의 설경과 구별 불가할 정도로 흐릿하게 찍힌 탓에 쉬이 형언하기 벅찬 심령사진 비슷한 것이 나와버리지만 이건 이거대로 귀여우니까 구겨버리는 대신 그대로 두려고 해

론도와 조이트로프
론도와 조이트로프

@0404_06

 

 

있지, 나는 아직도 기억해. 어린애들의 웃음소리와 바닥에 슬리퍼 끌리는 소리, 바이엘과 체르니 사이에 바흐, 미뉴에트, G장조. 피아노 학원 구석, 살짝 문이 열린 연습실. 문틈 사이로 새어나오는, 어딘가 서툴고 따뜻한 연주, 네 옆모습은, 창문 너머에서 내린 햇볕을 받아 꿈같이 노란빛으로.

맞아, 너는 피아노를 관뒀지. 그러나 먼 날에 들었던 다정한 선율은, 끝없이, 내 머릿속에서 재생되어, 차가운 밤이 남긴 상처를 감싸안아. 오래된 축음기가 돌아가면, 타향에서부터의 귀로에 오른 우리가, 홀로는 인간이 될 수 없었던 우리가, 조용히 흘린 눈물로 이어져 인간이 되었어.

 

하지만, 이제는 론도를 끝맺자. 더 이상 햇빛 속의 환영에, 늘어진 카세트 테이프 같은 과거에, 침잠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단 생각을 했어. 우리는 서로의 절반이지만, 반쪽짜리 존재는 아니니까, 잠시 손을 놓더라도, 마주보며 웃을 수 있도록.

 

그래도 되도록이면 네 손을 놓치지 않고 싶어. 사랑해.

마법을 걸 거야 두근거림이 터져버릴 것만 같아
마법을 걸 거야 두근거림이 터져버릴 것만 같아

아무런 맥락도 예보도 없이 갑작스레 사박거리는 쿠키가 굽고 싶어지는 토요일 아침, 오늘 오후에는 요슈아가 방문하고 싶다 했으니 지금부터 준비하면 알맞겠지

일전에 한아름 산 초콜릿 칩과 호두 아몬드를 부스러뜨리고 선반 위에 처박아두었던 베이킹 용품을 꺼내 씻어두니 어느새 시침은 벌써 열두 시를 가리키지 뭐야 다급하게 반죽을 섞으면 경황없는 틈만을 기다렸다는 듯 딩동딩동 울리는 초인종

화난 치와와처럼 아르렁대는 핸드믹서를 조리대에 내팽개친 채 현관으로 달려 나가 소꿉친구를 맞이하면 반가움도 잠시 소용돌이처럼 요란하게 흔들리는 은색 눈동자와 마주치게 돼 거울을 볼 필요도 없이 내 모습이 실험에 실패한 미치광이 과학자 같다는 건 스스로도 잘 알고 있어서 웃어도 된다고 체념하듯 허락하면 결국 꽃망울처럼 부드러운 웃음을 터트리는 요슈아

제리…. 앞치마뿐만 아니라 볼에도 밀가루가 잔뜩 묻었잖아, 요리하다 나왔어? 멋지게 완성한 쿠키와 함께 반겨주고 싶었는데 계획이 틀어졌어 창피하니까 너무 깊게 파고들진 말아줘….

폭소가 겨우 진정될 무렵 그 애 또한 도와주겠다며 소매를 걷고 앞치마를 둘러매며 위풍당당하게 주방에 입성하는데 아마추어 요리사가 두 명이면 일어나는 문제 또한 두 배라는 걸 간과한 나머지 우여곡절 끝에 굽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당장이라도 파티셰를 잡아라!에 출연해야 할 듯한 만듦새의 쿠키가 나와버려

@_AGAPALE_
@_AGAPALE_

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거야
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거야

오른손 엄지와 검지에 강약을 줘가며 꾹꾹 눌러 쓴 손 편지를 주고받은 것은 초등학교를 다닐 적 상대의 생일을 축하하며 쓴 버스데이 카드뿐 요슈아마저 대양을 건너온 이후로 모든 연락은 전화 라인 또는 이메일로 주고 받았어
네가 좋아할 만한 편지지를 고르고 우표를 사각에 맞춰 반듯이 붙이는 정성과 기약 없는 답장을 기대하며 느끼는 애틋한 설렘 등 편지만의 낭만으로 명명되는 것들을 등한하는 건 아니지만 그보다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앞섰으니까
그러니 우리의 편지함에는 언젠가 영상 사이트에 요슈아가 개인 명의로 올렸던 악곡의 원본 파일, 여름방학이 시작하는 날에 맞춰 이륙하는 LAX로의 항공권 영수증, 수화기 너머로 전하는 걸 깜빡했던 사소한 근황들이 자그만 도서관에 옹기종기 모인 책처럼 한데 존재해

@BISUP_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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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x_x9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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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isson_SON
@Commisson_SON

@Commisson_SON
@Commisson_SON

@owLzGK
@owLzGK

@owLzGK
@owLzGK

네 눈에 내가 떠오르게 해줘
네 눈에 내가 떠오르게 해줘

고작 작은 배쓰 밤 하나를 집어넣었을 뿐인데 욕조 속으로 별이 반짝이는 새파란 우주가 펼쳐지고 투명한 물이 연두와 보랏빛 초신성을 품는 광경을 보는 것이 즐거워서 입욕제를 좋아해 아이스크림의 맛만큼 선택지가 다양한데 하나하나가 저마다 다른 유채 물감처럼 뚜렷한 색감을 띄는 점도 매력적이고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좋은 건 전부 요슈아에게 건네주고 싶으니까 여러 브랜드의 제품을 먼저 사용해본 다음 그 중 사용감이 뛰어났던 것만을 골라 연인에게 선물했던 적 있는데 그 날은 좁은 욕조에 함께 들어가 버블 바에서 보글보글한 비눗방울이 잔뜩 이는 걸 구경했어 
물론 입욕제의 거품이 잦아들고 간지러운 분위기가 되었을 때는 부끄러움을 못 이기고 급히 나오다가 젖은 바닥에 미끄러져 머리가 깨질 뻔 했지만

수많은 소원 아래 매일 다른 꿈을 꾸던
수많은 소원 아래 매일 다른 꿈을 꾸던

어릴 적 살던 동네에는 집 근처에 놀이터가 있었는데 햇빛이 찬란하고 기온이 따뜻한 날이면 소꿉친구가 집에 있던 내게 전화를 걸거나 창문 너머로 내 이름을 불러 이끌어낸 뒤 그곳에서 함께 놀았어

독목교를 건너듯 뒤꿈치를 쫑긋 세워 시소의 양 끝에서 중심축을 향해 조심조심 걸어가기도 했고 그네에 걸터앉아 누가 더 높게 올라가는지 경주하거나 철제 정글짐 꼭대기 칸에 올라 환히 펼쳐진 동네의 경치를 구경하는 게 그 당시 가장 즐거운 놀이였는데 우리 둘 다 멀리 이사를 가서 이젠 그리 가깝지 않아졌다

그래도 그곳은 여전히 추억 속 모습 그대로 관리가 잘 된 채 남아있어서 때때로 옛 동네에 방문하는 날이면 꼭 낡고도 그리운 놀이터에 들러 우리들의 지난날을 회상해 매일 밤 눈을 감으며 서둘러 어른이 되고 싶다고 바랬던 아이 시절을

애정 앞에 간신히 주어지는 그 모든 미숙한 사랑들
애정 앞에 간신히 주어지는 그 모든 미숙한 사랑들

처음은 요슈아 네가 좋아하는 나를 미워하는 대신 조금은 좋아해볼게, 라는 미지근한 결심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나 자신의 못나고 실수투성이인 점까지 포용할 수 있게 되었네 완벽하지 않아도 곁에 네가 남아준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으니까 그리고 그 믿음은 이리저리 흔들리던 나를 잡아 단단하게 만들어주었거든

아이스로 할래 아주 여유롭게
아이스로 할래 아주 여유롭게

편의점에 다녀올 때마다 신상 아이스크림이 한 아름 담긴 봉투를 안아 들고 세븐틴 아이스가 보일 때는 다양한 맛에 도전하는 요슈아가 귀여워서 매번 짝꿍과 겹치지 않는 맛을 골라들어 그래야 한번 맛보라는 핑계로 내 아이스크림의 첫입을 줄 수 있으니까

소다 플로트, 블루베리 치즈케이크, 커스터드 푸딩, 코이 말차 등등 매양 상이한 아이스크림을 베어 물며 서로의 어깨에 기댄 채 발끝에 달라붙은 그림자를 바라보는 순간은 긴장이 풀릴 정도로 더없이 달콤해서 갑작스레 날아온 그 애의 입맞춤에 대비하지 못하고

어안이 벙벙해져 있으면 이번에 고른 것은 초코 크런치인데 어떠냐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음번에는 다른 맛으로 찾아오겠다며 장난스레 웃는 요슈아는 뻔뻔해 그렇지만 좋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