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fe and Sound
Safe and Sound

@xngkgkB

 

 

두 사람이 추라우미 수족관을 가기로 약속한 것은 2주 전이다. 요슈아가 밴드 활동으로 워낙 바빴으므로 약속이 아니라 야외 데이트로 치면 꽤 간극이 있는 편이었다. 제리는 달력에 표시된 요슈아와의 데이트 날짜를 이따금 눈 깜빡거리며 쳐다보는 일이 잦아졌는데, 공연히 연락하기보다는 바쁜 연인을 위해 조금이라도 참고 기다리는 것이 나으리라고 여긴 데서 나온 얕은 버릇이 되겠다. 아마도 이전의 바깥에서의 데이트가 그랬듯이 그가 공인이므로 그가 메이크업을 하지 않거나 모자와 선글라스 혹은 안경을 쓰지 않은 채 요슈아 본인의 평소 모습 그대로인 채로 데이트할 일은 없을 것이다. 이해하면서도 그것이 주는 답답함은 별개여서 제리는 오늘도 달력의 데이트 날짜를 손끝으로 톡톡 두드리다 추라우미 수족관에 대한 정보를 먼저 찾아보기로 했다. 그와의 데이트를 위해 뭔가를 준비해야겠다, 라는 생각보다는 도리어 생각을 쏟을 수 있는 다른 것을 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에서였다.
추라우미 수족관. 일본 최대 규모의 아쿠아리움. 오키나와에서도 상당히 외곽에 위치한 모토부 반도에 있는 해양박람회 기념공원 안에 자리를 잡은 그곳은 오사카의 가이유칸과 더불어 고래상어를 키우는 매우 드문 수족관 중 하나다. 굿즈 역시 고래상어 모양의 키링, 쿠션, 조각상과 고래상어 마스코트까지. 어필하고 있는 건 뻔하다. 전시관은 세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지는데, 산호초 전시관, 쿠로시오관, 심해 전시관이 바로 그것이다. 제리는 딸깍거리며 노트북에 연결된 블루투스 마우스를 움직였다. 수조 옆에 앉아서 커피 한 잔 할 수 있는 카페도 있고, 출구 쪽에 있는 기념품관에 가면 온갖 종류의 해양생물 인형을 비롯한 기념품을 살 수 있으며, 아이들에겐 200엔짜리 피규어 뽑기 기계가 인기 있다…… 고. 제리는 문득 뽑기 기계 앞에서 어떤 피규어를 뽑을 것인지 골몰하며 시간을 보내는 자신과 요슈아를 한번 떠올렸다가 그만 스스로 웃고 말았다.
요슈아에게서 메시지가 온 것은 그날 밤 늦게였다. 제리는 잠에 들려 폰을 침대 맡에 놓아두었다가 메시지 알림이 울리는 것을 듣고서 얼른 다시 폰을 들었다. 반짝이는 액정 너머로 요슈아의 라인 메시지가 떠올랐다.

자?
좀 더 일찍 연락하고 싶었는데, 편곡이 늦게 끝났어……. 오전 12:05

 

아냐, 아직!

오전 12:06 안 피곤해? (。•́︿•̀。)

 

조금. 오전 12:06

그래도 연락 받아주니 기쁘다. 오전 12:07

 

두 사람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라인을 했다. 메시지를 주고받다보면 어느새 새벽 1시가 다 되어간다. 내일 약속 잊지 않았냐는 요슈아의 말에 제리는 당연하지, 뒤에다가 느낌표를 세 개 붙일지 다섯 개 붙일지 사소하게 고민했다. 요슈아가 액정 너머로 웃는 모습을 상상하다 보면 메시지가 하나 더 온다. 마지막으로.

 

잘 자. 오전 12:58

 

아주 간결한 문자마저 요슈아가 보내는 것은 전부 그를 닮았다. 누운 자신의 귓가에 잘 자, 그가 속삭이는 기분 좋은 착각을 느끼면서 제리는 폰을 한쪽에 밀어놓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제리는 어떤 꿈을 꿨다. 아주 이전의 일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제는' 아주 이전의 일이라고 말해야 옳겠다. 혼곤한 몽중에서 제리는 요슈아의 흔들리는 눈을 보았다. 비추는 빛에 따라 온난한 색으로도 비치고 무기질적인 무채의 색으로도 보이는 그의 눈동자는 그때에 명백하게 불안을 담고 있었다. 제리. 그가 이름을 불렀지만 제리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다, 멈추지 않은 제리는 꿈을 꾸는 '제리'가 아니다. 꿈을 꾸고 있는 '제리'는 흘러가는 영화처럼 무의식에 영사되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그 안에서 그는 커터칼을 들고 있었다. 깨끗하지만은 않은 손목에 날카롭다 못해 예리한 날붙이의 끝이 느리게 그이고 나면 붉은 선을 따라 송골송골 핏방울이 맺힌다. 제리. 요슈아가 자신을 한 번 더 부른다. 이러지 마. 이러지 말라고 말하는 것처럼. 요슈아는 차마 제리의 자해흔이 남은 손을 잡지 못해 칼을 쥐고 있는 제리의 반대쪽 손목을 잡아챘다. '제리'가 있는 곳에서는 제리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이러지 말자. 요슈아는 울 것 같은 얼굴로 낯을 일그러뜨리고, 제리는 손에서 커터칼을 놓친다. 스스로 놓았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요슈아가 그를 끌어안으면 제리도 요슈아를 끌어안는다. 둘은 한 사람처럼 우는 것 같다. 영상이 흐려 잘 보이지 않는다. '제리'는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본다. 이 뒤가 어떻게 될지 알 것만 같아서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갈 만큼 괴롭지는 않았다. 그리고,
삐― 삐― 삐―
……아, 꿈에서 나갈 시간이야. '제리'가 생각했다. 그 순간에 그는 꿈에서 깬다.

 

 

아침 날씨는 무척 좋다. 초여름의 한가운데라는 것이 훤히 느껴지는 파란 하늘과 바람. 햇살 아래 요슈아는 꽁꽁 싸매는 대신 가벼운 차림을 하고 있었다. 제리는 집 앞까지 찾아온 그를 눈 끔뻑이며 새삼스런 얼굴로 맞는다. "뭐야, 반응이 왜 이래." 요슈아가 장난스럽게 말하면 제리가 느슨하게 웃었다. "왠지 오늘따라 변장이 덜 철저한 것 같아서……." 요슈아는 그 말에 어깨를 으쓱이며 문간에 선 제리의 손을 잡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철저하지 않은 편이 오히려 나을 때도 있더라. 무장하지 않은 것 같잖아." 제리는 그 말에 그의 긴소매를 내려다봤다. 저 소매 길이는 늘 변하지 않는다. 그와 함께하는 또 한 번의 여름이 다가옴에도 여전히 그가 가리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지라 제리는 그 이상 말을 얹지 않았다.
추라우미 수족관까지의 경로는 한참이나 멀다. 제리는 어제 찾아본 길대로 자신을 이끄는 요슈아의 옆에서 가끔 졸거나 자주 창밖을 봤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슈아를 알아볼 만큼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에 있겠다. 평일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아주 한여름은 피해 온 덕에 그런 것인지. 제리는 꿈 없이 이따금 드는 졸음 속에서 그런 것을 생각했다. 전철 창 너머로 파란 하늘과 쨍하게 비추는 햇빛이 지나가고 늘어선 빌딩 그림자가 스치면 제리는 요슈아의 손을 잡은 채로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아직 한참 남았어. 좀 더 자도 돼." 요슈아가 말했다.

"좋다." 맥락도 없이 제리가 말했다.

"뭐가?" 요슈아는 당연하게 묻는다. 사실 둘에게는 맥락이랄 게 필요치 않으므로.

"너랑 같이 있는 거……."

 

제리는 그 말을 하면서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문득 어젯밤 꾸었던 꿈이 생각나서다. 다시 한 번 커다란 빌딩이 지나가면 요슈아가 잡은 손에 괜히 힘을 주었다. 손바닥에 맞닿는 체온이 기꺼워서 제리는 조금 웃었다가, 이내 어제 꾸었던 꿈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아침 일찍 출발했건만 도착하는 것은 점심을 조금 넘긴 오후다. 두 사람은 간단히 주변에서 식사를 하고 곧바로 수족관에 들어갔다. 어제 찾아본 안내대로 수족관은 세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산호초 전시관, 쿠로시오관, 심해 전시관. "쿠로시오관이 제일 크대." 제리가 팻말을 살펴보는 요슈아를 보며 덧붙였다. "어제 찾아봤어." 요슈아는 그 말에 조금 웃었다. "오는 거 많이 기대됐나봐." 제리는 너랑 같이니까, 라는 말을 참는다. 어차피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것 같아서.
여러 신기한 모양의 산호가 생물로서 전시되어 있는 산호초 전시관을 지나 쿠로시오관으로 향하면 관람객이 꽤 보인다. 아쿠아리움 안쪽에 비치는 조명 탓에 불이 최소한으로 켜져 있는 관람객들이 있는 복도는 시커매 도리어 사람들이 올 곳이 아닌 것만 같다. 바다의 바닥. 요슈아가 고개를 들어 쥐가오리를 가리키느라 손을 놓았다. "저것 봐, 제리." 묘하게 사람의 웃는 얼굴을 닮은 가오리가 날개 같은 지느러미를 퍼덕이고 있었다. 물결처럼 움직이는 꼬리에 둘은 일제히 시선을 빼앗긴다. 쥐가오리뿐만이 아니다. 거대한 고래상어가 떼를 지어 머리 위를 지나간다.
엄마, 저것 봐. 아빠! 물고기. 물고기. 함께 보고 있는 아이들의 목소리. 까만 바닥에서 올려다보고 있는 광활하고 푸른 바다.
요슈아가 저도 모르게 한 발 유리벽을 향해 나아가면 제리는 한 발짝 뒤에 남겨진다. 한 걸음 뒤에서 그와 같은 것들을 올려다보다가 이내 요슈아의 등으로 시선을 내렸다. 다시 꾼 꿈이 생각이 났다. 제리. 처절하게 부르던 목소리도 다 지난 일인 걸 알면서. 이곳은 바람이 불지 않아 그의 머리칼을 헤집어놓을 것도 없고, 바다는 유리 너머로 쏟아질 일 없어 이 푸르고 검은 아쿠아리움 안에서 우리는 몹시 안전하고 아름답다.
아니, 아름답고 안전한 건 우리가 아닌가.
제리는 눈을 감았다 떴다. 꿈속에서 꿈을 보듯이. 사실은 언제든 네가 아름답고 안전하기를 바랐다. 이제 우리는 서로가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고 또 그러한 상태로 내내 함께 있기로 약속했으나, 이따금 불쑥 불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노라고. 자신을 등지고 인공의 바다를 보면서 서 있는 네가 무슨 표정을 하는지 나는 도저히 볼 수 없듯이. 그러니 할 수 있는 건 네 등에 어떤 고통스러운 무게도 더 얹히지 않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내내 맞잡았던 손의 온도를 생각하는 것이다.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그걸 이제는 확신할 수 있다고, 그래서 우리는 쏟아질지도 모르는 바다와 고래상어와 쥐가오리와 거대한 유리 앞에서도 평온할 수 있는 거라고.
아주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도 곧 요슈아는 몸을 돌려 제리에게로 손을 뻗는다. "봤어? 고래상어." 제리는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고래상어 피규어도 뽑을 수 있대. 200엔."

"어린애 같다, 그거……."

"지금 고래상어 봤냐고 어린애처럼 좋아했던 사람이 누구지……."

"참 나."

 

둘은 작게 소리 내어 웃는다. 커다란 물고기들의 지느러미와 꼬리가 파도처럼 벽 너머로 흘러간다.

@kwonHAEDAM
@kwonHAEDAM

@nupza_
@nupza_

지금 이 순간이 다시 넘겨볼 수 있는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지금 이 순간이 다시 넘겨볼 수 있는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내 모습이 프리뷰 모니터에 담기는 걸 싫어하지만 어떤 순간은 기억뿐만 아니라 기록으로도 남겨야만 망각하지 않고 온전히 간직할 수 있다는 말에는 동의해서 요슈아가 카메라 렌즈를 가까이 들이밀면 입을 삐죽 내밀다가도 결국 고분고분하게 자세를 취해 

그렇게 화각에 담은 찰나가 수십 장씩 모이면 인화하는데 촬영은 주로 요슈아의 몫이었으니까 뽑은 사진을 날짜별로 정렬하고 접착식 속지에 각을 맞춰 끼워 넣는 건 내가 맡은 역할이야 
어떤 것을 어디에 배치해야 한눈에 쏙 들어올까 고심하는 동안 그 애는 이전에 스크랩을 할 때 구매했던 스티커를 꺼내와서 빈 곳을 오밀조밀하게 꾸미기도 하고 그날 사진을 찍으며 느꼈던 감상을 일기 남기듯 젤 펜으로 짧게 적어두는데 소꿉친구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필기체는 언제 봐도 매끄러운 획이 막힘없이 뻗어나가 그 유려한 글자 아래 다른 색으로 엉망진창인 내 글씨가 쓰여있다는 게 작은 흠이지만

오래 떨어져 있었기에 알고 지낸 시간에 비해 같이 찍은 사진은 터무니없이 적지만 앞으로는 이별 대신 함께할 일만 남았으니까 이 두꺼운 앨범을 둘만의 추억으로 꽉꽉 채워나갈 때까지 힘내보자

@gbgtm_p
@gbgtm_p

@TAM_CMSN
@TAM_CMSN

@kokorojihye_77
@kokorojihye_77

@kokorojihye_77
@kokorojihye_77

해가 뜨면 너랑 식물원에 가고 싶어 잘 자
해가 뜨면 너랑 식물원에 가고 싶어 잘 자

물줄기가 흐르는 소리와 방문객의 가만가만한 발걸음 선녹색으로 가득한 식물원은 수족관만큼이나 좋아하는 장소야 한 곳은 사방이 트인 구조에 채광이 좋은 반면 다른 쪽은 일렁이는 푸른빛으로 밀폐된 곳이지만 내 마음속에선 보테니컬 가든과 아쿠아리움 모두 고요하고 안정적인 분위기가 똑 닮은걸
입구에서 나눠주는 팜플렛과 곳곳에 비치된 나무 표지판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면 두 발짝씩 내디딜 때마다 난생처음 보는 신기한 식물들이 시야에 가득 들어와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다는 건 이런 걸까? 요슈아도 나도 평소 식물에 열광하는 사람은 아닌데 녹음 가득한 길을 걷는 순간 동안은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는 눈으로 잎사귀부터 뿌리까지 면밀히 관찰하고 처음으로 식물원에 온 아이들처럼 즐거워해
같은 길을 몇 바퀴씩 빙글빙글 돌던 중 연리지라도 마주하면 내심 저 맞붙은 나뭇가지처럼 우리 또한 오래도록 단단히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

기대어 잠드는 밤은 애틋하고요
기대어 잠드는 밤은 애틋하고요

한밤중 마주누워 손깍지를 낀 채로 도란도란 담화를 주고받을 때 둘 중에서 먼저 꿈속으로 빠져드는 사람은 나야 그래서 요슈아가 주로 보는 내 얼굴은 졸음이 가득한 탓에 금방이라도 수면 아래 가라앉을듯한 벙한 표정이겠지

속눈썹 한 올 한 올에 무게추를 단 듯 눈꺼풀이 느릿하게 깜빡이면 그 애는 말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는 유쾌한 이야기를 나누길 멈추고 내게 잘 자, 내일 다시 보자. 라는 상냥한 인사를 건네줘

뒤늦게 잠들었으니 느지막한 시간에 일어나는 건 당연한 일, 그래서 요슈아는 먼저 깨어나 아침볕을 바라보며 멍하니 아침 식사를 생각하다가 옆에서 곤히 잠든 제가 일어나기 전에 부스스한 머리를 조금이라도 정돈해보겠다며 애를 쓰는 내 모습 또한 잘 몰라 다정한 밤인사의 답례로 내가 자신의 귓가에 잘 자, 오늘도 좋아해. 라는 말을 소곤거린 것도

@ha_ppucm
@ha_ppucm

Le Grand Bleu
Le Grand Bleu

@m33k_Comu

 

 

우리는 오래도 서로의 뒤를 쫓았다. 키가 부쩍 자라며 벌어진 뼈마디 틈을 서늘한 외로움으로 채운 소년 소녀가 되어서도 꼭 어린아이처럼 숨바꼭질을 이어나갔다. 우리가 내딛는 걸음마다 우울이 질척하게 묻어나 푸른 얼룩을 남겼다. 그러나 비로소 한 점에서 만났을 때. 다시는 놓지 않을 것처럼 손을 맞잡고 뒤돌았을 때, 우리는 보았다. 서로 겹치고 번지며 굳어간 기억들이 어느덧 모여 포말이 이는 바다를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눈부시게 빛나지는 않아도, 아득하게 깊고 눈물겹게 아름다운 우리의 바다를.

서투른 진심을 담아서 널 쉬게 할 수 있다면
서투른 진심을 담아서 널 쉬게 할 수 있다면

마음이 불안정해질 땐 붙어오는 거리가 평소보다 가까워질 것 같지 평소 피우지 않던 어리광도 슬쩍 꺼내들 거야 스스럽게 손가락을 하나둘씩 얽다가 반대쪽 손으로 달아오른 볼을 살짝 건드려봐 그래서 시선이 마주치면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입을 맞춰
숨이 부족할 때까지 맞붙어있던 입술을 뗀 후에는 꽉 끌어안고 같은 박동으로 뛰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태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사람처럼 가만히 불안을 흘려보내…. 요슈아의 등에 팔을 두르고 어깨에 얼굴을 파묻으면 은은한 체향이 맡아지거든 마주 안아주는 품에 안겨 그 냄새를 맡을 때면 초조함도 두려움도 흩어지고 안심돼

@WIW315
@WIW315

한번 출발한 눈길은 돌아오지 못하고 다른 이의 외계를 떠도니
한번 출발한 눈길은 돌아오지 못하고 다른 이의 외계를 떠도니

소꿉친구가 집으로 놀러 왔던 언젠가의 밤 동네 전체가 정전된 적이 있어 팟 하고 갑작스레 꺼진 플로어 스탠드 때문에 순간 당황했지만 둘 다 저녁을 먹고 샤워도 마친 후라 다행이었지 양파를 썰거나 파스타라도 삶고 있는 도중이었다면 난감했을 거야
부엌에서 급히 나오려다 식탁 모서리에 옆구리를 부딪치는 나를 대신해 소파에 앉아있던 그 애가 사물의 윤곽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더듬어가며 커튼을 젖히면 거실 창으로 흑색 잉크를 엎지른 듯 암막한 동네의 모습과 드문드문 비치는 작은 섬광 위로 내려앉은 옅고 흰 달빛이 침입하는데 그 광경이 우주선의 창문 너머로 바라보는 아득한 우주처럼 보여서 짝꿍과 나 둘 다 탄성이 새어 나왔어
달님에게 홀린 듯 한 발짝씩 다가가는 소꿉친구 그의 촘촘하고도 반짝이는 은색 속눈썹에 월광이 드는 걸 보며 나는 이 아름다움을 잊을 수 없이 평생 기억한 채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당신 집에서 잘 수 있나요 오늘 밤
당신 집에서 잘 수 있나요 오늘 밤

온돌에 익숙한 내게 팬 히터는 목을 건조하게 만드는 주문 같은 거라서 추운 날은 난방을 틀지 않고 소파에 웅크린 채 정수리부터 발바닥까지 담요를 뒤집어써 얇은 폴리에스터 한 겹을 둘렀을 뿐인데 세상과 단절된 것처럼 아늑하고 고요한 나머지 까무룩 잠들어버리는데 고의는 아냐 
요슈아가 처음으로 그 모습을 봤을 땐 담요 더미를 비집고 들어간 고양이, 고치 안에 들어가 나비가 되길 기다리는 애벌레 같다며 장난스레 놀리기도 했지만 이젠 익숙해졌는지 소파 위에 발효되는 빵 반죽처럼 부풀어 오른 형체가 보이면 조심스레 담요를 들어서 내가 자고 있는지 확인해 
만약 눈이 완전히 감기기 전이라면 침대로 가서 편히 눕자며 살살 달래 이끌어주고 곤히 잠들었다면 잠을 깨우지 않게 조심히 곁을 지켜주는 상냥한 짝꿍이자 연인 그리고 소꿉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