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이정표가 정해진 길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모든 게 결정된 미래라는 말에 회의적인 편이라 요슈아와의 사이도 운명이라고 칭하고 싶지 않아 여러 인과가 겹쳤음에도 종래에는 상대 곁에 있기로 선택했기에 주어진 가능성이라 생각하고 싶어
그렇지만 사랑이 필요 없게 된 시대에 같은 사랑의 무게를 가지는 널 만난 것, 앞으로도 나란히 발을 맞춰 걸어갈 기회가 주어진 건 도대체 어떤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처음부터 이정표가 정해진 길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모든 게 결정된 미래라는 말에 회의적인 편이라 요슈아와의 사이도 운명이라고 칭하고 싶지 않아 여러 인과가 겹쳤음에도 종래에는 상대 곁에 있기로 선택했기에 주어진 가능성이라 생각하고 싶어
그렇지만 사랑이 필요 없게 된 시대에 같은 사랑의 무게를 가지는 널 만난 것, 앞으로도 나란히 발을 맞춰 걸어갈 기회가 주어진 건 도대체 어떤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요슈아가 로스앤젤레스에서의 유학을 마치고 도쿄로 돌아온 날 저녁은 양가 대신 우리 둘만 모여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신주쿠 호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어 처음에는 그 애가 정말로 이곳에 돌아왔다는 게 실감 나지 않은 데다 짝사랑하는 상대 앞이라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엉망진창으로 섞여 양파 수프를 버터 나이프로 떠먹고 덜덜 떨리는 포크로 연어구이를 써는 등 뚝딱거렸지만 어제도 만났다는 양 자연스럽게 대화를 걸어준 소꿉친구 덕분에 어색한 기류 대신 반가움이 그 자리를 채웠고
얼마 전 휴일 함께 외식할 도쿄 속 레스토랑을 찾다 오랜만에 그곳을 다시 가보는 건 어떠냐는 서두를 시작으로 어떤 음식이 입에 맞았는지 대화를 나누던 중 그 애는 회백색 눈을 나와 맞추고 말했어 그리도 먹기 싫어했던 잘게 잘린 채소를 꼭꼭 씹어 삼키는 제리 네 모습을 보면서 떨어져 있던 기간 동안 우리의 많은 게 달라졌단 걸 체감했다고, 그래서 조금 쓸쓸하고도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고…. 즐거움 뒤에 숨겨둔 요슈아의 진심 그 여린 고백을 입안에서 굴리다 나 또한 체면을 위해 지금껏 숨기고 있던 비밀을 결국 밝혀버렸네
사실 아직도 채소를 좋아하지 않아 골라낼 수 있다면 그렇게 해 그날은 너한테 편식쟁이인 모습을 보여주기 싫으니까 기름에 볶아낸 아스파라거스도 힘내서 다 먹은 거야
이 시기가 되면 해양 생물 관찰 프로그램이 성황을 이루는 본가 근처 바닷가…. 등대가 세워진 언덕에 서서 햇살 품은 잔잔한 바다를 내려다보면 파랑이 서로에게 부딪혀 잘게 일어난 포말이라 생각했던 것이 사실 따스한 남쪽 해안으로 이동하는 고래가 내뿜은 공기 방울이라는 걸 알게 되고 저 멀리 수상을 가르며 헤엄치는 돌고래 떼와 금빛 모래사장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는 물개들은 쇠라의 그림 속 점처럼 작게만 보여
한때는 뒷일을 생각지 않은 채 이곳에 와서 하염없이 시간을 죽였어 일렁이는 바다 너머 도쿄에서 소꿉친구와 보낸 나날을 그리워하며 세계를 순유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소원을 끊임없이 아로새겼는데 그래서인지 그곳에만 방문하면 달랠 길 없이 외로웠던 마음이 되살아나서 한동안 발길을 끊었지
그렇지만 이제는 가슴 한 켠에 담아두었던 마음을 요슈아에게 건넨 데다 우리 둘 다 망설임 없이 서로의 곁으로 갈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으니까 다시 한번 그 바다에 발을 내디뎌 보고 싶어 네 손을 붙잡아 해변을 함께 달려가고 싶고 너울을 따라 나부끼는 배 위에 앉아 함께 고래 꼬리를 지켜보면서 적막보다 열락이 좀 더 많은 장소가 되게 추억을 쌓을래
포춘 쿠키 속 반으로 접힌 운세 종이와 오하아사의 조언 같은 불확실한 것들에 즐겁다는 듯 기대를 걸며 믿어보는 요슈아의 모습은 오랜 시간 함께했지만 언제 보아도 신기해 나는 낭만을 전부 잃어버린 사람이라 어떤 좋은 말과 악담이 쏟아져도 결코 꿈쩍하지 않거든 이해할 수 없기에 더욱 알고 싶어지고
그렇기에 동시에 뽑은 오미쿠지에서 내가 대길을, 요슈아가 흉을 뽑는다면 망설임 없이 운세를 교환할 거야 나는 네가 곁에 있어준다면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소꿉친구 앞으로 배송될 불행을 전부 가져갈게 믿지 않는 나보다는 좋아하는 너에게 이 행운을 주고 싶어
예술은 자신의 진심을 형태화하는 행위이자 만물을 바라보는 시선을 타인과도 공유하는 일 그렇기에 요슈아의 음악은 그 애가 살아가는 세상처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히 채워져 있단 걸 알아
흑단과 상아로 양분된 건반 위를 나울거리며 유영하는 손길, 희게 물든 곱슬머리와 차양처럼 내리깐 속눈썹 위로 피어나는 음계의 꽃, 서스테인 페달을 느릿느릿 지르밟아 방 안에 잔잔히 울려 퍼지는 몽환적인 백색 선율…. 요슈아가 음표의 꼬리 뒤 진실한 마음을 리본처럼 달아두고 가라앉은 박자 사이사이에 환한 꿈을 담았으니까 그 음색을 듣는 나는 그저 소꿉친구가 사랑하는 세상을 살아갈 수밖에
부드럽게 내리쬐는 정오의 볕무리와 뭉게구름을 업은 산들바람이 옮겨다 준 꽃잎 소중한 사람과 보내는 휴식 시간 등 아무리 소소한 것인들 요슈아에게 닿는다면 흰 오선지 위 톡톡 튀는 검정 음표로 뒤바뀌며 영원히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것만 같은 노래가 돼
작곡하는 네 옆에 나란히 앉아 온기를 나눠 받을 수 있는 것도, 백색 섬광처럼 내리 꽂히는 찬란한 음을 제일 먼저 담을 수 있는 것도 전부 나의 특권….
네 보드라운 손목 안쪽에 입 맞추는 것으로 엉켜 붙은 실선을 걷어낼 수 있다면 아무에게도 밝히질 못해 감당하기 힘든 절망이 견고히 쌓여갔던 로스와 도쿄에서의 새벽을 내가 전부 가져가버릴 수 있으면 망설임 없이 그럴 텐데
요슈아 널 대신해서 아득하고도 흔들리는 어둠 속을 걸어가고 싶어 네게는 환하게 부서져 내리는 낮볕과 다정한 공기와 영롱하게 피어오르는 불꽃만 남겨주고 싶어
시내를 헤매다 들어간 길목에서 우연한 계기로 발견하게 된 수수께끼 레코드샵 수십 년을 고보한 것처럼 보이는 간판에선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고 규모도 가히 작아 보이지만 어쩐지 홀린 듯 유리문을 젖혀 들어가면,
그곳은 마치 반세기 전에 시간이 머물러 있는 듯이 수백 가지 바이닐과 CD와 카세트 테이프가 선반에 빈 칸 없이 빼곡히 꽂혀있어서 코트로 가득 찬 옷장 깊숙이 들어갈 때에서야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신비의 나라 나니아를 연상케 해 카운터에 엎드려 휴식을 청하던 직원분은 우리의 방문을 눈치채자 축음기 위에 LP를 올려두셔서 고요했던 가게 안에는 침묵 대신 이름 모를 가수의 노래가 실내를 유유히 채우네
여전히 이런 가게가 남아있었다니 과거에 불시착한 요슈아와 제리가 된 기분이야 음악에 대해 하등 아는 것 없는 나조차도 어쩐지 들뜬 기분으로 레코드판 커버 뒷면에 쓰인 설명을 들여다보게 되는데 노래를 사랑하는 소꿉친구에겐 이 순간이 얼마나 기쁠까 이 앨범은 이십 년 전 폐반되었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발견할 줄은 몰랐어, 중얼거리는 그 애의 심장박동이 시계 방향으로 빙글 돌아가는 바이닐 속 반주보다 선명하게 울릴 정도로 신난 게 느껴져서…. 즐거움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선율을 관조하는 요슈아의 곁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와 가게를 둘러보던 중 내 눈에 들어온 건 요슈아가 발표한 싱글 음반들
한 시간 뒤 결국엔 각자 묵직한 봉투를 품에 안고 열렬한 환대를 받으며 나와 방문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점원분의 인사에 다음에도 꼭 올게요 라고 대답하면서
더위가 한 발짝 물러서고 해 질 녘 바람은 서늘하게 불어오는 요즘 수제 아이스크림 가게 탐사에 재미를 들였어 특히나 재료 맛이 선명히 느껴지고 쫀득한 젤라또가 좋아
유리 디스플레이 너머로 진열된, 산호초 군락에 사는 화려한 열대어를 닮아 알록달록하고 쉐이빙 폼처럼 겹겹이 쌓인 모습은 눈으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져서 무심코 평소 먹을 수 있는 양보다도 많이 주문해 버리고
그렇지만 두 입 정도를 떠먹은 뒤 그대로 질려버린 나와 다르게 각기 다른 맛 세 스쿱과 와플 콘까지 주문한 요슈아는 한 입을 베어 물 때마다 엷은 양회색 눈이 별빛처럼 반짝이는 행복으로 가득한 덕에…. 그 모습은 지켜보기만 해도 마음 한 켠에 잠시 머물렀던 후회를 몰아내고 역시 오길 잘했다는 뿌듯함과 웃음만을 남겨줘
이 근처를 산책하다 보면 너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어
생일 케이크 위 촛불처럼 반짝이던 주택가의 빛이 하나둘씩 꺼지고 다들 꿈나라로 출발한 새벽 시간대에 마을 혹은 숲을 거닐다 보면 요슈아 또는 나와 만날 수 있어
요슈아의 집 창문 커튼 사이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불빛을 발견한 뒤 문을 노크하면 허둥지둥하는 기척과 함께 몇 초 뒤 요슈아가 문 사이로 얼굴을 쏙 내미는데 무엇을 하고 있었냐 물으면 조금 겸연쩍은 듯 악상이 떠올라 작곡 도중이었다며 순순히 고백해 대화를 끊지 않고 주민 대표가 놀러 가도 되는지 물으면 집 안이 엉망이라 나중에 초대하겠다며 부드러이 거절하고 더 이야기 나누고 싶다 요청하면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하는데 어느 쪽을 고르든 섬 특산물로 만든 과일 스무디를 두 잔씩 들고 현관 바깥으로 나오는 것은 동일하네 그 애의 집 앞에 나란히 앉아 음료를 홀짝이는 것은, 그리고 미완성된 곡을 다정한 허밍으로 들을 수 있는 것은 새벽에만 맞닥뜨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
달이 뜨는 날에 나무가 우거진 숲속으로 들어가면 미미한 확률로 삽이나 도끼를 들고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오싹한 모습 앞에서 멈칫하고 놀라거나 덜덜덜 리액션을 취하면 머리 위에 느낌표가 뜨고 먼저 말을 걸어줘 대화 도중 밤에 삽을 들고 배회하고 있던 이유는 타란튤라나 전갈에게 쏘이지 않기 위함이라 해명하지만 그래도 역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어 그래도 아직 무기를 들고 있는 상대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는 건 좋지 않겠지 숲을 벗어나는 대표의 발걸음이 평소보다 잽싸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일요일마다 돌아오는 8월의 여름밤 축제에선 불꽃놀이가 시작되기 전 요슈아는 항상 다른 맛의 아이스바나 솜사탕을 손에 쥐고 나는 매 다른 색의 풍선을 들고 있어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은 채로 말을 걸면 둘 중 한 명이 너도 여욱 행운권을 구입해 보라며 500벨을 주곤 해
뽑기를 체험한 다음에 말을 걸면 무엇이 나왔든 간에 축하한다고 말해준다 몇 번 더 대화를 걸면 서로 경품을 교환할 수도 있고 주민 대표가 스파클러나 비눗방울을 들고 있을 때 먼저 바꿔줄 수 있냐고 제안하기도 해서 기꺼이 요슈아에게 스파클러를 주는 게 가능해져 기쁜 듯 마을 광장 앞에서 불을 붙이며 즐거워하는 그 주민의 회색 눈에 형형색색 불꽃이 담기는 모습이란 얼마나 아름다운지
혼자일 땐 삭막하고 둘이 머무르기엔 자그마한 자취방에 소꿉친구가 놀러 온 날 저녁 식사에 사용한 그릇을 설거지하고 침실로 들어가면 방금 막 샤워를 마쳤는지 물기를 잔뜩 머금은 모습으로 침대맡에 앉아 기다리는 요슈아가 있어
조명 불빛을 머금은 납빛 눈과 마주치면 속마음을 읽은 듯 제리 흉내를 내고 있어, 라며 능청스럽게 대답하는데 그렇다면 나도 역할 놀이에 요슈아 역으로써 어울려 줘야지…. 보드라운 타올을 가져와서 잔재한 물기를 조심히 닦아내고 드라이기의 온도를 낮게 설정한 뒤 손안에 들어차는 곱슬머리를 차근차근 말려
그러길 몇십 분, 주고받던 대화는 점점 답이 오는 간격이 벌어지고 그 애의 몸은 흔들리는 갑판 위에 올려둔 오크통처럼 기우뚱대길 반복하다가 축축했던 머리카락이 어느덧 보송하게 부풀어 오를 때가 되면 결국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쏟아지는 도미노처럼 상체가 내 품으로 기울어지고 말아 푹 잠들었으니까 내가 볼에 굿나잇 키스를 남긴 것도 눈치 못 채겠지
평소에 보살핌을 받는 것도 먼저 잠드는 것도 나였는데 오늘은 입장이 역전되었네 좋은 밤 되길 바래 꿈속에서도 네가 행복해지길
내가 달을 닮았다고 자주 이야기하는 요슈아 정작 달빛처럼 부드럽고 나긋한 사람, 시간과 감정이 느릿느릿 표류하는 새벽을 외롭지 않게 만들어 주는 사람, 월석의 시리고도 화사한 은색을 간직한 사람은 본인이면서
그 말을 듣고 난 뒤로 늦게까지 바깥에 있을 때면 항상 밤하늘을 올려다봐 달이 조금이라도 얼굴을 비치는 날에는 요슈아가 생각나서 들뜨게 돼 달빛이 너의 어두운 불안 위로 내려앉아줬으면 해 모두가 잠든 새볔녘 속 홀로 깨어있는 네가 쓸쓸하지 않게 함께해 주기를 달님이 너의 모든 소원을 들어준다면
요슈아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불안정하게 휘청이고 가야 할 방향을 잃어버려 궤도를 이탈한 위성처럼 겉돌아 버릴 때도 상냥한 달빛은 계속해서 네 곁에 남아주길 바라
요슈아는 이름까지 본인을 닮았어 받침 없이 둥글게 굴러가는 발음 사이에 숨겨진 예리하고도 뾰조록한 마음 그러나 원으로 시작하고 원으로 마치기에 결코 날카롭게는 들릴 수 없는 이름이야 환히 웃을 때 무엇보다도 둥글게 휘어지는 그 애의 날 선 눈매처럼…. ヨシュア 가타카나로 적어 내리면 티끌 하나 없는 행복한 미소가 담겨있고 よしゅあ 히라가나로 적을 땐 각짐 없이 동글동글하지
반면에 내 이름은 모든 획이 원 대신 곧은 선으로 구성돼 있어 첫 글자 ジ는 그 애와 다르게 억지웃음을 짓는 것처럼 보여서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푸념을 들어준 단짝 친구가 말하길, ゛ 부분이야말로 미소 지을 때마다 옴폭히 들어가는 보조개이자 요슈아 앞에서 얼굴을 붉히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 같다고 해주어서 이제는 불만을 품는 대신 소꿉친구가 사랑하는 나의 작은 부분 중 하나라고 받아들이곤 해
나와 요슈아의 첫사랑은 상대가 아닌 타인이었을 것 같지만 그 점이 결코 서운하게 느껴지지는 않아
두 번 다시 겪을 수 없는 반짝이는 한순간으로 끝난 게 아니라 좋아하는 감정이 긴 시간에 걸쳐 깊고 선명하게 스며든 덕분에 자신을 잊어버릴 정도로 위태로운 순간마저도 서로의 색만큼은 기억하고 오래도록 사랑할 수 있었으니까
네 첫 기준이 내가 되지 못한들 어때 이미 지나가 버린 나날을 신경 쓰지 않아 네게 배운 애정을 전부 되돌려 줄 때까지는 계속해 함께일 테니 앞으로에 집중하고 싶어
땅 위를 걸어 다니는 것보다 수조 속을 헤엄치는 게 어울릴 듯한 날씨인 요즘은 소꿉친구를 만나면 먹구름의 색을 입은 머리카락이 평소보다 몇 배로 부푼 모습을 볼 수 있는 걸까
빗방울을 피하고자 자그마한 접이식 우산을 펼치면 그 애는 기다렸다는 듯 자연스레 아래로 들어오는데 제 손에도 큼지막한 우산 하나를 들고 있어 요슈아…. 우산 있잖아? 황망한 표정으로 바라보면 이래야 너와 가까이 붙어있을 수 있다고 당당히 답하면서도 애교스러운 얼굴로 시선을 맞추는 남자친구
반달을 닮아 휘어지는 눈꼬리와 나비의 날개처럼 팔랑이는 속눈썹으로 부리는 미인계를 누가 거절할 수 있을까 진심으로 밀어낼 생각은 없었지만 이건 반칙이야,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속절없이 넘어간 나는 결국 요슈아 쪽으로 우산을 기울여 줘
갑작스레 폭우가 쏟아져 내려 우산을 쓰는 의미도 없이 우리 둘 다 강에 빠진 강아지와 쥐처럼 쫄딱 젖어버린 것은 그로부터 고작 몇 분 뒤의 일
함께 자동차를 탈 땐 내가 운전석에, 요슈아는 자연스레 조수석에 착석해 내 쪽이 운전면허를 이르게 취득해서 경력이 더 길잖아 접촉 사고가 생겨서 기사라도 나면 판다 사장님이 화내실 걸 그 외에도 이런저런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차창 밖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네게 조금이라도 더 오래 보여주고 싶어, 라고 솔직히 말하니 순순히 납득해서 그다음부터는 전적으로 운전대를 맡겨주는 소꿉친구
부탁하기도 전에 척척 가장 빠른 경로로 내비게이션을 조작하고 깜빡이 없이 끼어드는 오토바이나 차체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 뒤를 쫓는 차량 교통 체증 때문에 피곤해한다면 나 자신보다 먼저 알아채서 젤리벨리나 밀크 카라멜 같은 단 간식을 입 안에 쏙 넣어주곤 해
신호등의 불이 푸르게 바뀌길 기다리며 정지하는 동안 입 맞추는 장난만 안 친다면 최고의 운전 보조일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