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라 끝까지 답답한 단추를 채우는 것보다 쇄골이 도드라지는 윗옷을 선호하는, 지금은 극복해낸 과거의 상흔이 남아있는 손목을 소매나 팔찌 등으로 가리곤 하는 요슈아 종아리를 감싸는 머메이드 라인의 레이스 치마를 입을 바엔 치골 아래까지 오는 알렉산더 왕의 데님 바지가 한결 나은 나
우리에게는 각기 확고하게 굳어진 패션 철학이 있지만 연인이 내 생각을 하며 골라주는 옷이라면 어떠한 배척 없이 입은 뒤 피팅룸에서 나와서 그의 의견을 물어봐 그가 진심을 담아 어울린다 이야기해주면 아무리 어색하거나 거부하던 스타일이었던들 정성껏 포개서 옷장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오는 위치에 두어 다음 데이트에 입고…. 까탈스러운 취향의 벽마저 거대한 애정으로 깨트리는 건 언제나 서로이기에
바깥을 향해 한 발짝 발걸음을 내딛지 않아도 모든 게 온라인으로 주문 가능해진 비대면 시대 그래도 여전히 백화점과 플래그십 스토어를 여유로이 돌아다니며 완상하는 게 좋아 쇼핑 또한 여행의 일종이니까
아크네 스튜디오와 젠틀 몬스터에선 이런 걸 누가 써? 싶은 특이한 디자인의 선글라스를 착용해 보는데 아무나 소화 못 하는 패션은 요슈아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는지 역시나 소화 못 해 엉뚱한 모습이 웃겨 작게 웃으면 이번에는 내 차례라며 얼굴 위로 장난스레 씌워지는 선글라스 그런데 기대 없이 착용한 내게는 되레 어울려서 원치 않은 이벤트에 당첨된 사람마냥 기분이 얼떨떨해져 제가 선물해 주겠다며 직원분을 부르려는 소꿉친구를 급하게 잡아 멈춰 세우는 건 그 뒤의 일
향수관에 가서는 여러 니치향수를 한 번씩 시향해본 다음 마음에 드는 것은 디퓨저로 구매해서 각자의 집에 둘 계획을 세워 오래 맡아도 독하지 않고 금세 흩어져 버릴 듯 지나치게 옅지 않은 향이어야 한다는 기준이 있어 다른 공간이어도 같은 향조가 날 수 있도록 곁에 없어도 네 생각을 할 수 있게끔
발을 맞추어 몇 시간씩 걷다가 다리가 아파오면 카페의 대표 메뉴라는 달큰한 라떼와 화이트 카페모카를 주문해서 머그잔을 감싼 온기가 사라질 때까지 조금은 불편한 의자에 가만 앉아서, 오늘 구경한 광경에 대해 고요히 이야기를 나누는 동시에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슬쩍 얽혀오는 흰 손가락을 마주 잡으며 다정한 기운을 건네받는 것이 우리의 충전 방법이자 마지막 일정이야
본래 눈 색과 머리카락은 무난하고 흔한 검정인데 길었던 짝사랑이 끝나자마자 발레아쥬 염색과 컬러 렌즈로 좋아하는 사람의 색을 내게도 담아버렸어 밝은 색이 어두운 색으로 물드는 게 보편적이지만 우리는 그 반례가 되었네 검정에 스며들어 번지는 하양
텅 비어있던 까만 도화지가 별처럼 희게 빛나는 소꿉친구 덕분에 의미를 얻고 색까지 일부 나눠 받아 밤하늘이 되었다는 게 좋아 그렇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계속해서 요슈아를 내 하늘 속 일등성으로 남겨두는 것
뜬구름처럼 둥실 떠 있고 순백 양모처럼 보드라운 요슈아의 곱슬머리를 좋아해 채도가 없는 머리카락은 내리쬐는 빛과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따뜻한 유백색 시린 은백색 둘 다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어서 사랑스레 느껴
엷은 구름빛 눈에는 한낮의 편린이 선연하게 빛나고 목적지 없이 나선의 궤적으로 유람하는 유성이 떠다녀 그 중앙에 자리 잡은 건 뚜렷한 윤곽선과 그림자…. 홍채 안에 모든 시간대의 하늘이 머물러 있어서 종일 눈만 바라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아 눈꼬리는 캔들라이트 장미에 난 가시처럼 뾰족하고 비스듬한 태양의 고도를 닮아 길게 늘어졌는데 마음속의 다정함을 세상에게 꺼내어 건네주는 순간 그리고 무심코 반짝거리는 웃음을 터트릴 때마다 부드럽게 휘어지는 게 좋아 곡선을 따라 촘촘하게 짜여진 가느다란 요슈아의 속눈썹은 유난히 시선이 오래 머무르는 부분
피아노를 연주해달라고 부탁하며 그 핑계로 옆에 걸터앉으면 집중하느라 평소보다 높은 각도로 올라간 눈썹 결심과 진심을 물어 굳게 다물린 입술 매끄럽게 흑백의 건반 위를 유영하는 가늘고 흰 손가락도 슬쩍 구경할 수 있는데 결국에는 연주가 아닌 연인에게 온 관심이 가있다는 걸 들키고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처음의 순간부터 온 세상이 총천연색으로 반짝거려 보이던 시기까지 매 순간 사이에 꽃갈피처럼 끼어있으니 나는 속절없이 그 애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거야
언젠가 요슈아에게 기억을 은은히 밝혀줄 향초 같은 순간을 선물하고 싶어져 함께 하얀 별이 쏟아지는 짙은 밤하늘을 보러 가고 커튼처럼 하늘을 덮는 오로라를 관측하고 아무도 우릴 알아채지 못할 만한 곳으로 떠나 휴양을 즐기게 해줄래 천청색 상공과 녹음 가득한 삼림지, 끝없이 펼쳐진 소금의 평야, 그 애의 이름과 같은 나무가 가득 자라난 국립공원 그리고 청금석 빛깔을 띠는 블루홀…. 요슈아가 지닌 끝없는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때까지 계속해서 곳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 보여주고 싶은 세상이 많네
회상하기만 해도 심지에 불이 붙고 기분을 아늑하게 덥히는 그런 추억들을 잔뜩 선사해서 종국에는 소꿉친구의 마음을 꽃덤불처럼 뒤덮을 수 있기를
중압감에 시달릴 때 피가 흐를 정도로 무심코 손톱과 거스러미를 뜯고 마는 건 오래된 버릇
엉망진창인 손톱 끝을 보이기 부끄러워서 젤 네일 위 다양한 종류의 파츠를 올려보기도 손목까지 올라오는 장갑 종류를 껴보기도 하고 아침마다 열 손가락을 거미줄에 걸린 먹이처럼 스포츠 테이프로 빈틈없이 꽁꽁 싸맨 채 외출하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시도해본 방법 중 가장 효과가 좋았던 건 소꿉친구가 직접 매니큐어를 발라주는 거였어
네일 샵에서 받는 것만큼 섬세한 디자인이 들어가거나 특별한 제품을 사용한 건 아니지만 어쩐지 요슈아가 칠해주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오래도록 남겨두고 싶어져서 매사 조심하게 되었던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너를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너에게라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 전부 예속되어도 괜찮겠다고, 그렇게라도 곁에 있고 싶단 욕심을 품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요슈아를 향한 사랑을 자각하게 된 순간은 프락시노스코프의 한 장면처럼 빠르게 넘어가고 겹쳐지는 기억 사이에서도 소리와 향기까지 뚜렷하게 떠올릴 수 있지만 정작 감정이 마음속에서 발아하게 된 순간은 불명료해 그 타이밍을 완벽히 명명할 수 없는 건 함께한 모든 추억에 책갈피를 끼워 넣는 그 애조차 마찬가지
현재 요슈아와 함께하는 멤버들이 브레이브 차일드에 정식으로 가입하기 전에는 그 애와의 연애를 가족 외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철저하게 비밀에 부쳤지만 가장 알리고 싶지 않았던 사람 중 한 명인 판다 사장님께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그것도 연애 초반에 들통났어
소꿉친구의 집에 머문 다음 날 끊이지 않고 계속해 울리는 벨소리 때문에 비몽사몽 잠에서 덜 깬 채로 전화를 받았는데 그건 알고 보니 내가 아닌 요슈아의 핸드폰으로 걸려 온 업무 전화였고 그날은 종일 모든 걸 망쳤다는 자책과 불안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한 채 카페에서 나눠주는 진동벨처럼 덜덜 떨었네 불안해하며 못난이 당근 대신 손가락을 다질 뻔한 건 두 번 설거지하다 깨트릴 뻔한 유리 접시는 네 장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보컬리스트의 사생활 보호 따위는 일절 신경 쓰지 않는 클라이맥스 레코드답게 정작 사장님은 그 애와 사귀기 시작한 첫날부터 우리의 비밀 연애를 알고 계셨을 거란 생각이 들어
성동에도 최저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법 없는 로스앤젤레스와 다르게 도쿄와 서울은 추운 편이라서 밤사이 온 세상이 윈터 원더랜드로 뒤바뀐 것처럼 시야 가득 하양이 들어차는 경우가 빈번하다지 사계절 서기가 가득한 도시에서 청춘을 보낸 우리에겐 동화 같이 으레 낯설고도 설레는 풍경
이웃이 모두 잠들어 있는 새벽녘 들떠서 부풀어 오른 마음 위로 코트를 걸치고 요슈아에게 귀도리까지 꼼꼼히 씌워준 뒤 현관문을 열면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은 모든 게 얼어붙을 듯 차디찬 공기야 까마득한 추위에 몸이 움츠러드는데도 불구하고 나쁘지 않다 생각된 이유는 깍지 낀 소꿉친구의 손에서 전해져 오는 온기 덕분이라서
코끝과 볼이 발그레하게 물들고 솜구름을 닮은 입김이 피어오르는 것조차 마다치 않은 채 꼼지락대며 눈곰돌이를 만드는 요슈아는 진지하고 사랑스러워서 문득 이 순간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에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가져와 피사체를 담아…. 비록 선명한 건 잠옷 위에 걸친 외투뿐 순수함을 담은 머리칼이나 흰 피부는 주위의 설경과 구별 불가할 정도로 흐릿하게 찍힌 탓에 쉬이 형언하기 벅찬 심령사진 비슷한 것이 나와버리지만 이건 이거대로 귀여우니까 구겨버리는 대신 그대로 두려고 해
아무런 맥락도 예보도 없이 갑작스레 사박거리는 쿠키가 굽고 싶어지는 토요일 아침, 오늘 오후에는 요슈아가 방문하고 싶다 했으니 지금부터 준비하면 알맞겠지
일전에 한아름 산 초콜릿 칩과 호두 아몬드를 부스러뜨리고 선반 위에 처박아두었던 베이킹 용품을 꺼내 씻어두니 어느새 시침은 벌써 열두 시를 가리키지 뭐야 다급하게 반죽을 섞으면 경황없는 틈만을 기다렸다는 듯 딩동딩동 울리는 초인종
화난 치와와처럼 아르렁대는 핸드믹서를 조리대에 내팽개친 채 현관으로 달려 나가 소꿉친구를 맞이하면 반가움도 잠시 소용돌이처럼 요란하게 흔들리는 은색 눈동자와 마주치게 돼 거울을 볼 필요도 없이 내 모습이 실험에 실패한 미치광이 과학자 같다는 건 스스로도 잘 알고 있어서 웃어도 된다고 체념하듯 허락하면 결국 꽃망울처럼 부드러운 웃음을 터트리는 요슈아
제리…. 앞치마뿐만 아니라 볼에도 밀가루가 잔뜩 묻었잖아, 요리하다 나왔어? 멋지게 완성한 쿠키와 함께 반겨주고 싶었는데 계획이 틀어졌어 창피하니까 너무 깊게 파고들진 말아줘….
폭소가 겨우 진정될 무렵 그 애 또한 도와주겠다며 소매를 걷고 앞치마를 둘러매며 위풍당당하게 주방에 입성하는데 아마추어 요리사가 두 명이면 일어나는 문제 또한 두 배라는 걸 간과한 나머지 우여곡절 끝에 굽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당장이라도 파티셰를 잡아라!에 출연해야 할 듯한 만듦새의 쿠키가 나와버려
오른손 엄지와 검지에 강약을 줘가며 꾹꾹 눌러 쓴 손 편지를 주고받은 것은 초등학교를 다닐 적 상대의 생일을 축하하며 쓴 버스데이 카드뿐 요슈아마저 대양을 건너온 이후로 모든 연락은 전화 라인 또는 이메일로 주고 받았어
네가 좋아할 만한 편지지를 고르고 우표를 사각에 맞춰 반듯이 붙이는 정성과 기약 없는 답장을 기대하며 느끼는 애틋한 설렘 등 편지만의 낭만으로 명명되는 것들을 등한하는 건 아니지만 그보다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앞섰으니까
그러니 우리의 편지함에는 언젠가 영상 사이트에 요슈아가 개인 명의로 올렸던 악곡의 원본 파일, 여름방학이 시작하는 날에 맞춰 이륙하는 LAX로의 항공권 영수증, 수화기 너머로 전하는 걸 깜빡했던 사소한 근황들이 자그만 도서관에 옹기종기 모인 책처럼 한데 존재해
고작 작은 배쓰 밤 하나를 집어넣었을 뿐인데 욕조 속으로 별이 반짝이는 새파란 우주가 펼쳐지고 투명한 물이 연두와 보랏빛 초신성을 품는 광경을 보는 것이 즐거워서 입욕제를 좋아해 아이스크림의 맛만큼 선택지가 다양한데 하나하나가 저마다 다른 유채 물감처럼 뚜렷한 색감을 띄는 점도 매력적이고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좋은 건 전부 요슈아에게 건네주고 싶으니까 여러 브랜드의 제품을 먼저 사용해본 다음 그 중 사용감이 뛰어났던 것만을 골라 연인에게 선물했던 적 있는데 그 날은 좁은 욕조에 함께 들어가 버블 바에서 보글보글한 비눗방울이 잔뜩 이는 걸 구경했어
물론 입욕제의 거품이 잦아들고 간지러운 분위기가 되었을 때는 부끄러움을 못 이기고 급히 나오다가 젖은 바닥에 미끄러져 머리가 깨질 뻔 했지만
어릴 적 살던 동네에는 집 근처에 놀이터가 있었는데 햇빛이 찬란하고 기온이 따뜻한 날이면 소꿉친구가 집에 있던 내게 전화를 걸거나 창문 너머로 내 이름을 불러 이끌어낸 뒤 그곳에서 함께 놀았어
독목교를 건너듯 뒤꿈치를 쫑긋 세워 시소의 양 끝에서 중심축을 향해 조심조심 걸어가기도 했고 그네에 걸터앉아 누가 더 높게 올라가는지 경주하거나 철제 정글짐 꼭대기 칸에 올라 환히 펼쳐진 동네의 경치를 구경하는 게 그 당시 가장 즐거운 놀이였는데 우리 둘 다 멀리 이사를 가서 이젠 그리 가깝지 않아졌다
그래도 그곳은 여전히 추억 속 모습 그대로 관리가 잘 된 채 남아있어서 때때로 옛 동네에 방문하는 날이면 꼭 낡고도 그리운 놀이터에 들러 우리들의 지난날을 회상해 매일 밤 눈을 감으며 서둘러 어른이 되고 싶다고 바랬던 아이 시절을
처음은 요슈아 네가 좋아하는 나를 미워하는 대신 조금은 좋아해볼게, 라는 미지근한 결심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나 자신의 못나고 실수투성이인 점까지 포용할 수 있게 되었네 완벽하지 않아도 곁에 네가 남아준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으니까 그리고 그 믿음은 이리저리 흔들리던 나를 잡아 단단하게 만들어주었거든
편의점에 다녀올 때마다 신상 아이스크림이 한 아름 담긴 봉투를 안아 들고 세븐틴 아이스가 보일 때는 다양한 맛에 도전하는 요슈아가 귀여워서 매번 짝꿍과 겹치지 않는 맛을 골라들어 그래야 한번 맛보라는 핑계로 내 아이스크림의 첫입을 줄 수 있으니까
소다 플로트, 블루베리 치즈케이크, 커스터드 푸딩, 코이 말차 등등 매양 상이한 아이스크림을 베어 물며 서로의 어깨에 기댄 채 발끝에 달라붙은 그림자를 바라보는 순간은 긴장이 풀릴 정도로 더없이 달콤해서 갑작스레 날아온 그 애의 입맞춤에 대비하지 못하고
어안이 벙벙해져 있으면 이번에 고른 것은 초코 크런치인데 어떠냐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음번에는 다른 맛으로 찾아오겠다며 장난스레 웃는 요슈아는 뻔뻔해 그렇지만 좋아해
내 모습이 프리뷰 모니터에 담기는 걸 싫어하지만 어떤 순간은 기억뿐만 아니라 기록으로도 남겨야만 망각하지 않고 온전히 간직할 수 있다는 말에는 동의해서 요슈아가 카메라 렌즈를 가까이 들이밀면 입을 삐죽 내밀다가도 결국 고분고분하게 자세를 취해
그렇게 화각에 담은 찰나가 수십 장씩 모이면 인화하는데 촬영은 주로 요슈아의 몫이었으니까 뽑은 사진을 날짜별로 정렬하고 접착식 속지에 각을 맞춰 끼워 넣는 건 내가 맡은 역할이야
어떤 것을 어디에 배치해야 한눈에 쏙 들어올까 고심하는 동안 그 애는 이전에 스크랩을 할 때 구매했던 스티커를 꺼내와서 빈 곳을 오밀조밀하게 꾸미기도 하고 그날 사진을 찍으며 느꼈던 감상을 일기 남기듯 젤 펜으로 짧게 적어두는데 소꿉친구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필기체는 언제 봐도 매끄러운 획이 막힘없이 뻗어나가 그 유려한 글자 아래 다른 색으로 엉망진창인 내 글씨가 쓰여있다는 게 작은 흠이지만
오래 떨어져 있었기에 알고 지낸 시간에 비해 같이 찍은 사진은 터무니없이 적지만 앞으로는 이별 대신 함께할 일만 남았으니까 이 두꺼운 앨범을 둘만의 추억으로 꽉꽉 채워나갈 때까지 힘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