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뜨면 너랑 식물원에 가고 싶어 잘 자
해가 뜨면 너랑 식물원에 가고 싶어 잘 자

물줄기가 흐르는 소리와 방문객의 가만가만한 발걸음 선녹색으로 가득한 식물원은 수족관만큼이나 좋아하는 장소야 한 곳은 사방이 트인 구조에 채광이 좋은 반면 다른 쪽은 일렁이는 푸른빛으로 밀폐된 곳이지만 내 마음속에선 보테니컬 가든과 아쿠아리움 모두 고요하고 안정적인 분위기가 똑 닮은걸
입구에서 나눠주는 팜플렛과 곳곳에 비치된 나무 표지판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면 두 발짝씩 내디딜 때마다 난생처음 보는 신기한 식물들이 시야에 가득 들어와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다는 건 이런 걸까? 요슈아도 나도 평소 식물에 열광하는 사람은 아닌데 녹음 가득한 길을 걷는 순간 동안은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는 눈으로 잎사귀부터 뿌리까지 면밀히 관찰하고 처음으로 식물원에 온 아이들처럼 즐거워해
같은 길을 몇 바퀴씩 빙글빙글 돌던 중 연리지라도 마주하면 내심 저 맞붙은 나뭇가지처럼 우리 또한 오래도록 단단히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

기대어 잠드는 밤은 애틋하고요
기대어 잠드는 밤은 애틋하고요

한밤중 마주누워 손깍지를 낀 채로 도란도란 담화를 주고받을 때 둘 중에서 먼저 꿈속으로 빠져드는 사람은 나야 그래서 요슈아가 주로 보는 내 얼굴은 졸음이 가득한 탓에 금방이라도 수면 아래 가라앉을듯한 벙한 표정이겠지

속눈썹 한 올 한 올에 무게추를 단 듯 눈꺼풀이 느릿하게 깜빡이면 그 애는 말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는 유쾌한 이야기를 나누길 멈추고 내게 잘 자, 내일 다시 보자. 라는 상냥한 인사를 건네줘

뒤늦게 잠들었으니 느지막한 시간에 일어나는 건 당연한 일, 그래서 요슈아는 먼저 깨어나 아침볕을 바라보며 멍하니 아침 식사를 생각하다가 옆에서 곤히 잠든 제가 일어나기 전에 부스스한 머리를 조금이라도 정돈해보겠다며 애를 쓰는 내 모습 또한 잘 몰라 다정한 밤인사의 답례로 내가 자신의 귓가에 잘 자, 오늘도 좋아해. 라는 말을 소곤거린 것도

서투른 진심을 담아서 널 쉬게 할 수 있다면
서투른 진심을 담아서 널 쉬게 할 수 있다면

마음이 불안정해질 땐 붙어오는 거리가 평소보다 가까워질 것 같지 평소 피우지 않던 어리광도 슬쩍 꺼내들 거야 스스럽게 손가락을 하나둘씩 얽다가 반대쪽 손으로 달아오른 볼을 살짝 건드려봐 그래서 시선이 마주치면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입을 맞춰
숨이 부족할 때까지 맞붙어있던 입술을 뗀 후에는 꽉 끌어안고 같은 박동으로 뛰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태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사람처럼 가만히 불안을 흘려보내…. 요슈아의 등에 팔을 두르고 어깨에 얼굴을 파묻으면 은은한 체향이 맡아지거든 마주 안아주는 품에 안겨 그 냄새를 맡을 때면 초조함도 두려움도 흩어지고 안심돼

한번 출발한 눈길은 돌아오지 못하고 다른 이의 외계를 떠도니
한번 출발한 눈길은 돌아오지 못하고 다른 이의 외계를 떠도니

소꿉친구가 집으로 놀러 왔던 언젠가의 밤 동네 전체가 정전된 적이 있어 팟 하고 갑작스레 꺼진 플로어 스탠드 때문에 순간 당황했지만 둘 다 저녁을 먹고 샤워도 마친 후라 다행이었지 양파를 썰거나 파스타라도 삶고 있는 도중이었다면 난감했을 거야
부엌에서 급히 나오려다 식탁 모서리에 옆구리를 부딪치는 나를 대신해 소파에 앉아있던 그 애가 사물의 윤곽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더듬어가며 커튼을 젖히면 거실 창으로 흑색 잉크를 엎지른 듯 암막한 동네의 모습과 드문드문 비치는 작은 섬광 위로 내려앉은 옅고 흰 달빛이 침입하는데 그 광경이 우주선의 창문 너머로 바라보는 아득한 우주처럼 보여서 짝꿍과 나 둘 다 탄성이 새어 나왔어
달님에게 홀린 듯 한 발짝씩 다가가는 소꿉친구 그의 촘촘하고도 반짝이는 은색 속눈썹에 월광이 드는 걸 보며 나는 이 아름다움을 잊을 수 없이 평생 기억한 채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당신 집에서 잘 수 있나요 오늘 밤
당신 집에서 잘 수 있나요 오늘 밤

온돌에 익숙한 내게 팬 히터는 목을 건조하게 만드는 주문 같은 거라서 추운 날은 난방을 틀지 않고 소파에 웅크린 채 정수리부터 발바닥까지 담요를 뒤집어써 얇은 폴리에스터 한 겹을 둘렀을 뿐인데 세상과 단절된 것처럼 아늑하고 고요한 나머지 까무룩 잠들어버리는데 고의는 아냐 
요슈아가 처음으로 그 모습을 봤을 땐 담요 더미를 비집고 들어간 고양이, 고치 안에 들어가 나비가 되길 기다리는 애벌레 같다며 장난스레 놀리기도 했지만 이젠 익숙해졌는지 소파 위에 발효되는 빵 반죽처럼 부풀어 오른 형체가 보이면 조심스레 담요를 들어서 내가 자고 있는지 확인해 
만약 눈이 완전히 감기기 전이라면 침대로 가서 편히 눕자며 살살 달래 이끌어주고 곤히 잠들었다면 잠을 깨우지 않게 조심히 곁을 지켜주는 상냥한 짝꿍이자 연인 그리고 소꿉친구

함께 웃었다면 그 시간만큼은 전부 우리들의 것
함께 웃었다면 그 시간만큼은 전부 우리들의 것

신나게 카트를 끌고 새로 들어온 아이스크림 세일 상품 매대 장난감 코너를 차례대로 구경하는 게 대형 마트에 가는 날 우리의 루틴 
이거 맛있어 보여 저것도 사자, 요슈아와 내가 한 마디씩 주고받으면서 콘플레이크와 대용량 우유 링귀니 오레오 도리토스와 프링글스 등을 신나게 담다 보면 널찍했던 쇼핑 카트가 금세 꽉 차
자동차도 안 끌고 왔는데 이걸 다 어떻게 들고 가지 욕심이 너무 과했나 먹을 수 있는 것보다 많이 담은 건 아닐까 잠시 걱정하지만 간과하게 있다면 요슈아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식욕이 좋다는 것…. 격주 분의 음식을 나흘 만에 해치워서 얼마 뒤 다시 마트로 오게 되네

돌아가자 길었던 꿈의 반대편으로
돌아가자 길었던 꿈의 반대편으로

요슈아의 집에서 자고 가는 날 포근한 이불 속에 먼저 머리끝까지 파묻은 채 그 애가 곁에 눕길 기다리다 보면 어릴 적 의자와 담요를 잔뜩 끌어와 비밀 요새를 지어놓고 그 폐쇄적이고도 아늑한 내부에서 함께 마주 보며 미소 지었던 추억이 생각나 그때도 세상에 너만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다 생각했는데

몇 번을 다시 태어나고서야 완성되는 장면들이 있어서
몇 번을 다시 태어나고서야 완성되는 장면들이 있어서

등불이자 신성처럼 밝게 타오르는 작은 불꽃 요슈아 
현재는 새벽의 혈맹과 함께 활동하는 빛의 전사이자 모험가이며 본인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제7 재해 이전에는 암흑기사로서 흑색 머리 미코테 치유사와 고정 파티를 맺어 대륙 각지를 함께 돌아다녔어 사시사철 설원을 품은 산맥과 끝없이 펼쳐진 대초원까지 

달라가브가 카르테노 평원에 추락하며 안에 봉인되었던 바하무트가 풀려난 때 최전선에 있던 둘 다 치명상을 입었지만 숨이 끊어지기 직전 치유사는 요슈아가 살아가기를 강하게 소망했고 간절한 마음에 어떤 힘이 반응해서 그 애만은 살아남아 다른 모험가들과 함께 5년 후의 미래로 보내져

자신의 이름과 비에라 족이라는 것 외엔 이전에 무슨 삶을 살았는지 기억나는 게 없지만 우연히 방문한 그리다니아의 환술사 길드에서 그리움을 느끼고 그렇게 누군가의 마음을 짊어진 채 미래로 가게 된 요슈아의 첫 직업은 백마도사가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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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시절 요슈아와 치유사의 관계는 14인 위원회의 아젬과 아모로트에 살던 시민 및 서로를 오래 알아 온 친우 그 당시에도 종종 요슈아의 기상천외한 여정에 치유사가 동행했어
조디아크와 하이델린 두 신 중 어느 쪽의 소환에도 가담하지 않았고 하나의 세계가 14개로 쪼개질 때 영혼도 함께 작은 조각으로 나뉘어서 수많은 만남 그리고 이별을 순환해 

순간이라고 칭할 만큼 짧은 생애 중 상대를 영영 만나지 못하고 눈을 감을 때도 있지만 서로를 만날 경우 자신의 의지로 그와 여행하길 택하는 것은 언제나 같아…. 몇 번이고 반복되더라도 이 마음은 변하지 않을 거야 너는 내가 무엇을 하든지 함께해 주었으니까 나 또한 너를 만날 때마다 상황을 막론하고 분명히 좋아하게 될 거야

널 감싼 모든 것들이 네 사랑으로 좀 더 빛나 보이니까
널 감싼 모든 것들이 네 사랑으로 좀 더 빛나 보이니까

블루투스 이어폰이 대중화되지 않았을 아날로그 시절 아이팟에 담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요슈아와 줄이어폰을 한 짝씩 나눠 낀 채 곁에 붙어있는 시간이 좋았어 혼자 사용할 때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엉킨 줄을 풀어내는 게 성가셨지만 둘이 있을 땐 짧은 선 길이를 핑계로 가까이 붙을 수 있었으니까….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노랫소리가 걷잡을 수 없이 두근거리는 내 심장박동을 가려주기만을 바란 채 이 순간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어느 후덥지근한 여름

나의 오른손 네 왼손을 살며시 이어서
나의 오른손 네 왼손을 살며시 이어서

함께 시부야의 게임 센터에 가면 댄스 댄스 레볼루션이나 태고의 달인 유비트처럼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야 하는 역동적인 리듬 게임을 자주 골라

최악의 몸치이자 끔찍한 박자 실력을 가진 사람으로서 쉬운 모드를 택하는 게 맞지만 그 애가 어려움을 고르면 괜히 호승심이 불타올라서 소꿉친구와 같은 난이도를 선택한 뒤… 판이 끝나고 나서는 태풍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가지처럼 의지와 정반대로 바들바들 떨리는 팔다리를 갈무리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다 이젠 이 게임이 해보고 싶다며 능란하게 크레인 뽑기나 마리오 카트 기기로 이끄는 요슈아에게선 나를 쉬게 하고 싶다는 의도가 빤히 보이지만 그 살가운 마음씨가 기꺼우니 아무것도 못 알아챈 척 내민 손을 잡고 이끄는 대로 따라가

공기 속으로 스며드는 하얀 꽃가루 다음엔 오후 두시의 햇빛
공기 속으로 스며드는 하얀 꽃가루 다음엔 오후 두시의 햇빛

퍼퓸과 디퓨저, 캔들, 인센스 스틱은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해야 구매하지만 샴푸나 로션처럼 기능이 중시되는 제품은 우리 둘 다 향에 크게 개의치 않고 무던히 사용하는 편이라 서로의 집에 하루 이상 머물다 가는 날이면 상대와 같은 향이 나
요슈아가 섬유 유연제로 허거블 선샤인을 장만하면 며칠 후 내 원피스에서도 선연한 볕 아래서 바짝 말려 뽀송한 빨래 냄새가 나고 본가로부터 시트러스 노트의 헤어 에센스를 배송 받으면 그 애의 곱슬거리는 머리카락 끝에선 흐릿하게 레몬 향이 맡아져

오늘을 위해 그저 견뎌줘서 고마워
오늘을 위해 그저 견뎌줘서 고마워

앨범 커버 촬영 날짜가 다가오면 사진을 찍히는 당사자 요슈아보다 내가 더더욱 긴장해 보름 전부터 아침저녁마다 콜라겐 가득한 마스크팩을 챱챱 붙여주고 평소엔 먹지도 않는 오이를 얇게 썰어 연분홍빛 볼에 올린 다음 효과가 좋다는 앰플은 어떻게든 구해서 발라주는데 요슈아의 얼굴이 보송해질수록 내 낯빛은 초췌해져가

바르기 전과 후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것 같아 보이는데…. 이게 맞아? 원래도 요슈아는 충분할 정도로 사랑스러운 얼굴인데 헛고생하고 있는 거 아닐까? 스스로를 의심해가며 피부 관리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마지막 며칠간은 스트레스받은 백상아리처럼 눈을 부릅뜨고 다녀서 소꿉친구뿐만 아니라 상황을 모르는 주변 모두의 걱정을 사버리고

그래도 촬영 당일 요슈아에게 평소보다 화장이 잘 됐어! Thanks 😈🎶💞 라는 라인을 받으면 그간의 노력에 의미가 없는 건 아니었다는 생각에 금세 생기가 돌고 얼굴이 환해져

정말로 닿았으면 하는 말은 언젠가 도착할거야
정말로 닿았으면 하는 말은 언젠가 도착할거야

침실 천장에 옅게 빛나는 야광별을 붙이고 잠들었던 시절, 열기가 감도는 손을 맞잡고 새로운 곳을 탐험하러 나서던 나이엔 서로의 등에 손가락을 뻗어 글자를 적고 무엇을 썼는지 알아맞추는 놀이를 자주 했는데 요슈아는 매번 정답을 말한 반면 나는 간지러움을 참지 못하고 몸을 뒤트느라 꼭 한 글자씩 틀리기 일쑤였어

어느 날은 한글을 적었는데 이번엔 맞출 수 없을 거라고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그 애는 뒤돌아보지 않고도 내가 제 이름을 적었단 걸 알아챘고 자기 차례가 왔을 때는 간지러워도 잠시만 참아달라며 작게 웃으면서 목덜미에 愛してる를 적어주었던

모두 좋아해 네가 모르는 네 모습까지도
모두 좋아해 네가 모르는 네 모습까지도

이번 달 내내 여행을 다니느라 연인의 얼굴을 보기는커녕 집에도 제대로 못 들어갔는데 긴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는 날 밤늦게 도착해 문을 열었더니 아무도 없어야 할 거실 소파에 익숙한 인영이 앉아 꾸벅꾸벅 잠들어 있는 걸 발견하고 놀랐어
차가 막혀서 예정돼있던 시각보다 훨씬 늦어졌는데 넌 어떤 마음으로 날 기다렸을까 위에 성냥개비를 여럿 올려도 될 정도로 풍성히 뻗은 속눈썹은 굳게 맞물려있고 항상 곡선을 그리는 눈가는 거무스름해서 미안함을 담고 볼을 살살 쓸어주면 차가운 손에 달아오른 열기가 닿아
조용히 샤워를 마치고 나온 뒤에도 여전히 꿈나라에 가 있는 요슈아를 보며 소파는 불편할 텐데 생각하지만 잠든 사람을 깨우고 싶진 않아서 잠시 고민하다 침대에서 이불과 베개를 잔뜩 끌어온 다음 그 애를 누이고 나는 품에 파고들어
일어나면 짐을 풀고 빨래를 돌려야지 그래도 역시 다녀왔다는 인사를 하는 게 제일 먼저야 라는 다짐과 함께

나 어릴 적 함께한 너에게
나 어릴 적 함께한 너에게

음과 박자가 금세 엇나가는 지금과 달리 어릴 때는 노래 부르는 걸 잘했어 아기 시절부터 음악에 두각을 드러낸 소꿉친구에 비하면 까마득히 뒤떨어지는 수준이었지만 즐거움이 부족함을 메꿔주었고

요슈아가 캐롤의 피아노 반주를 맡아주면 옆에서 빙글빙글 돌며 뜻도 제대로 모르는 가사를 흥얼거렸고 친구끼리 모이면 유행하는 TV 애니메이션의 오프닝이나 차트에 올라온 가요를 따라 불렀기에 캘리포니아에서 돌아온 뒤 요슈아가 내게 가장 충격받았던 건 더는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을 거야

꿈꾸는 이들과 같이 별에게 소원을 빈다면
꿈꾸는 이들과 같이 별에게 소원을 빈다면

유성우를 보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들 하잖아 처음에는 떨어지는 별을 향해 요슈아가 행복하게 해줘, 라고 빌었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나선 내용이 조금씩 바뀌었어 사람은 살면서 이백 개의 소원을 가지지만 누군가가 나를 위해 몰래 빌어주기도 하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건 삼백 가지라고 해 그렇기에 나의 바람은 요슈아의 꿈과 요슈아를 위해 빌어주는 꿈 삼백 가지가 전부 이뤄지는 것

소꿉친구는 어떤 소망을 담고 별똥별을 바라봤을까 네 생각 속에 내가 없더래도 좋아 무엇이든 네가 원하는 것이 전부 그게 곧 내 소원이고 행복이야